성수동 주민으로서, 오랜 동안 궁금했다. 성수동은 뉴욕의 브루클린하고 닮았다는데, 브루클린엘 가봤어야지?! 그 궁금증을 서수아 대표가 풀어주었다. 그는 지난해 초 붉은 벽돌 연립주택을 통째 빌려 오매갤러리를 열었다. 오매? '오매 단풍 들겄네'라고 김영랑이 썼던 그 감탄사 '오매'이기도 하겠고, 오매불망-깨어있으나 자나 잊지 않겠다는 그 오매이기도 할, '오매'의 정식 뜻은 이렇다.
Old to New 전통에서 현대로
Men & Women 모두를 위한
A to Z 모든 것을
E ast to West 동에서 서로
이 야심찬 계획을 꿈꾸고 실현할 곳 오매갤러리에서 서수아 대표를 지난 16일과 20일 두 차례에 걸쳐 만났다.
오래된 연립주택서 한국의 컬쳐허브 꿈꾼다
- 오래된 연립주택은 '낙후'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 곳에서 '성수 작가전'이 열렸고, '인형의집' 전시가 진행됐다. 공예품경매와 라이브공연까지 벌어졌다. 여기는 들어오기 전과 후가 확연히 달라지는 곳이라 놀랐다. "지금 2, 3층의 방에서는 <메시지 인 네온전>을 하고 있다. 작가들과 일반인들이 워크숍에서 만든 작품들이다. 마감 안 된 회벽돌과 콘크리트는 다른 느낌을 준다. 백색 배경 전시에 비해 새롭지 않은가. 이곳 성수동과 연립주택도 경험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 이곳 성수동에, 빨간 벽돌 다가구주택에 깃들게 된 사연이 궁금하다. "나도 아파트서만 거주했지만, 아파트는 몸에 맞지 않는다. 연립주택에 대한 편견은 없다. 나도 성수동에 8년여를 살았지만, 첫 인상은 딱딱함이었다. 수제화거리가 유명하다는데, 나의 미감과는 거리가 컸다. 더구나 공장지대라 가까워지기 어려웠다. 내가 일했던 곳은 규모가 큰 일을 하는 디자인 기업이었다. 몇십 억 규모의 대형 디자인프로젝트를 진행하던 곳. 바쁘고 힘들고 그렇지만 중독성 강하게 재미난 일을 3~5년 단위로 하다보니 한눈 팔 새도 없었다. 그러다 우리 회사로 김이숙 대표가 '오매갤러리'를 제안해 왔다. 그 제안이 날 여기에 있게 했다."
- '평생 여기 뿌리내려야겠다'고 생각했던 직장을 떠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오매갤러리는 어떤 '뿌리칠 수 없는 제안'을 했을까?"2014년에 세월호 사건이 있었다. 큰 프로젝트가 유예되거나 취소되었다. 회사엔 타격이 되었다. 내게는 '한국의 디자이너 살리기'라는 오매의 제안에서 절실함을 느꼈다. 한국은 유학을 해야 디자이너든 예술가든 '인정'을 해준다. 해외에에선 한국의 디자인 공예 예술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영문으로 소개된 작가들이 없으니까. 이건 시스템의 문제였다. 내가 그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일은 장기적인 비전과 사명감이 필요했는데, 내 나이나 시기도 도전에 맞는 때라고 판단했다."
- 처음엔 인사동길 인사동마루 3층에 오매갤러리를 열었다. "초기엔 온라인으로만 활동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예와 디자인의 특성상, 그걸 눈으로 보고 손으로 확인하는, 실체와 만나는 일이 필요했다. 그래서 1년 넘게 기획전시를 진행했다. 디자인 공예 예술 거의 모든 분야의 작가들과 협업했다. 인터뷰를 지속하면서 작가-작품 아카이브도 진행했다. 내용들은 번역해 전파하고 홍보했다."
그 기간 동안 서수아 대표는 '한국디자인의 실체'와 만났다고 했다. 오매갤러리는 2016년 10월엔 베이징 디자인위크 아트마켓에도 44명의 한국 작가와 참여했고, 최고인기상을 받았다. '메이드인차이나'의 고정관념이 깨진 일, 한국작가들이 심기일전하게 된 일 그리고 북유럽 일본처럼 자기 정체성을 가진 나라의 디자이너 등과 대화하게 된 것도 디자인위크서 얻은 성과였다.
- 성수동으로 오매갤러리를 터잡은 이유가 궁금하다. "기존의 전통적 전시와 유통의 구조를 깨고 싶었다. 식상해진 것은 더 이상 흥미를 끌 수 없으니까. 성수동은 대림창고, 자그마치, 오르에르 등 이미 선도적인 핫한 공간이 있었다. 서울숲이 있고, 홍대나 이태원처럼 유동인구가 많진 않지만, 배후지에 갤러리아포레, 트리마제 등 고급아파트와 지식산업센터 등도 수요자들도 꽤 있다. 강남과의 접근성도 높다. 건물을 보자마자 좋다고 했다. 건물 전체가 컬쳐허브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성수동은 서울의 브루클린 맞다, 오매도 그 일부- '성수동은 서울의 브루클린'이라는 말을 많이 하시더라. 어떤 점이 그런지 늘 궁금했다. "오매를 계약하고 뉴욕에 갔었다. 일단 성수동 지하철 2호선처럼 거기도 하늘로 기차가 다닌다. 땅은 넓고 평편하다. 공장도 물론 많은데, 공간 사이사이에 세련미 넘치는 카페와 리빙 편집숍, 꽃공방 등이 펼쳐진다. 정말 뜨문뜨문 있다. 예상 못한 곳에서 만난다. 낮엔 직장인이 밤엔 갤러리 공방을 연다, 지하방에서. 주말에만 여는 갤러리도 많다. 첼시마켓은 공장 콘셉트인데 러프하면서 곳곳에 숨겨진 디테일이 흥미롭다. 자유분방함과 질서가 공존한다. 7017같은 다리도 있다. 자연친화적인 공간에서 편안하게 벤치에 누울 곳도 있고다. 그리고 길거리 벽화가 정말 많고."
성수동 지하철 2호선 뚝섬역과 성수역은 모두 고가로 다닌다. 성수역 3번출구를 내려와 나타나는 오른편 길이 성수이로길, 한강으로 향한다. 두 블록을 걸으면 왼편에 대림창고가 나타난다. 길을 건너 조금 더 가면 험볼트 커피숍과 트로피온 골목. 왼편으로 돌면 정면에 경수중-경수초가 보이는 제법 넓은 길이 나온다. 걷다가 오른편에 오매갤러리가 있다. 다른 연립주택과 똑같은 외관. 하지만 변화는 골목을 들어가 만나는 현관부터 시작한다.
"1층에는 음식점을 들였다. 휘게라이프라고도 하는데, 먹을 게 빠질 수 없다. 갤러리야 가지 않아도 먹는 일은 누구나 다 하는 거니까. 이곳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첫 월급 타서 예술품을 사고. 내겐 그게 진짜 예술이다. 일상서 쓰고, 일상서 느낄 수 있는 것."
- 내부 공간 공사가 아직 안 끝난 건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 "무슨 얘긴지 알겠다.(웃음) 이곳을 만들고 꾸밀 때, 성수동 곳곳을 누볐다. 아파트 재활용장, 빌딩하치소, 공장, 창고, 골목골목까지. 버리는 가구나 물건을 일단 끌어모은 뒤에 그걸 재생했다. '밥그릇 비우기부터' 환경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웃음), 쓰레기 문제도 환기하고 싶었고. 낡은 것을 살려 세련되고 힙한 것으로 변화시키고 싶었다. 여기는 또한 25년 된 연립주택이니까, 그 느낌도 살리고. 여긴 온고잉프로젝트 공간이다."
1월 20일 '디얼라이브'가 오매에서 공연했고, 그 후 그 자리서 경매전이 열렸다. 참석자들이 각각 가져온 공예품을 팔고 사서(작가들의 작품도 역시) '다음에 있을 오매의 기획'의 비용을 마련한 것. 물건도 주고 돈도 주고온 자리지만, 동시에 공예품을 얻고 전시에 투자한 시간이기도 했다.
"작업에 일반인들이 참여하시도록 한다. 워크숍을 여는 이유다. 그래야 예술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지 않겠나. '어려운 작업이다, 가치가 있다' 이렇게 느끼실 때 작품 구매도 이루어지겠지! 이럴 바엔 차라리 사자고.(웃음)"
워크숍에선 어린이가 자신 안에 있는 예술의 씨앗을 발아시키고도 있었다. 일상의 바쁨과 혼돈에서 한 줄 인생의 이야기를 뽑아낸 직장인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처음 갤러리 벽에 걸었다.
성수작가전-인형의집-네온전으로 이어진 전시는 이전에 없던 것들을 세상에 내보였다. 낡은 것이 깨어지고 새로운 것이 세상에 머리를 내미는 순간이었다. 그건 사물로 있던 '그것'이 의미와 가치를 지닌 '어떤것'으로 변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문화와 예술 그리고 살고싶은 삶이 그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