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이 나한테 아무도 그런(최순실) 얘기를 안 해줬을까'라며 안타까워했다. 몇 번이나 그런 얘기를 했다."국정농단과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뇌물로 상납받은 혐의 등으로 구치소에 수감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이 "최순실에게 속았다"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가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박 전 대통령과 인터뷰한 자리였다.
이 신문이 25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유 변호사는 지난 24일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기자와 만나 박 전 대통령의 근황 등을 털어놨다. 해당 인터뷰는 박 전 대통령의 승인 아래 진행됐다고 유 변호사는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16일 자신의 재판을 거부한 이후 단 한 번도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
박근혜 "최순실이 개인적 부탁한 딱 한 번 뿐"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은 최씨가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취하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최순실이 대통령 앞에선 다소곳했고 심부름도 잘했기 때문에 자기 앞에서 하는 행동과 밖에서 하는 게 완전히 달랐다는 걸 상상도 못 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박 전 대통령이 국정원·경찰·민정수석 등으로부터 단 한 번도 최씨 관련 보고를 받지 못했고, 국정농단의 전모는 2016년 9월 '비덱스포츠' 문제가 터졌을 때였다고 전했다. 이때 박 전 대통령이 독일에 있던 최씨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묻자 "비덱이 뭐예요"라며 잡아뗐다고도 주장했다. 유 변호사는 "하지만 그 뒤에 삼성 문제 등이 본격적으로 터지면서 박 전 대통령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최씨와 경제적 공동체라는 검찰 주장도 부인했다. 유 변호사는 최씨가 박 전 대통령에게 개인적 부탁을 한 건 딱 한 번뿐이라고 했다. 최씨 딸 정유라씨와 신주평씨 사이에 애가 생기자 둘을 떼어놓기 위해 신씨를 군대에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내가 그런 일을 어떻게 하냐'고 딱 잘랐다고 한다"면서 "그것 말고는 최순실이 개인적 청탁을 한 건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최근 새로 불거진 국정원 특수활동비 40억 원을 뇌물로 받고,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도 부인했다. 유 변호사는 "그러잖아도 1월 4일 면담 때 그것부터 여쭤봤다"면서 "집권 초에 '이전 정부에서도 청와대가 국정원 지원을 받아서 쓴 돈이 있고 우리가 써도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는 보고를 해서 박 전 대통령이 '그럼 그렇게 하시라'고 한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 돈을 어디다 어떻게 썼는지 보고받은 건 전혀 없다"라며 "박 전 대통령은 자기가 쓴 특활비는 국정원 특활비가 아니라 원래의 대통령 특활비로 알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의 근황과 건강 상태를 전하기도 했다. 유 변호사는 "허리에 디스크가 있고 왼쪽 무릎에 물이 차 다리를 잘 구부리지 못한다. 부신 기능이 나빠 얼굴도 많이 부었다"면서 "청와대 있을 땐 주사로 관리를 했는데 지금은 그게 안 된다. 지난 1월 4일 두 달 만에 면담했을 때 얼굴이 너무 부어서 깜짝 놀랐다"라고 전했다.
수감 특혜 의혹은 적극 반박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매트리스에서 자는데 허리가 아파서 밤에 한두 시간마다 잠을 깬다고 한다"면서 "내가 허리 때문에 구치소 측에 침대를 넣어 달라고 했는데 특혜라고 안 된단다. 병사(病舍)에 갈 수 없으니 대신 침대 좀 놔달라는 게 왜 특혜냐"라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이 수감된 방 자체가 특혜'라는 주장에도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미군 여군 군속들이 구속됐을 때 수감되는 방이라 샤워시설이 있는 것이지 박 전 대통령 때문에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구치소 나오시면" 덕담하자 "아휴 그런 날이 오겠어요"재판 거부 이후 박 전 대통령이 주로 지지자들에게 온 편지나 <지리산> <객주> <토지> 같은 소설을 주로 읽는다고도 전했다. 유 변호사는 특히 "지지자들이 구치소로 편지를 많이 보내는데 줄지 않고 계속 온다"라며 "배달된 편지는 다 읽으신다"라고 설명했다. 또 변호인단 외에 "동생이나 친지들, 정치인 등 다른 사람들은 일절 만난 적이 없다"라며 "옷 갈아입은 지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생각도 있는 것 같다"고도 밝혔다.
끝으로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의 최근 심경도 밝혔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은 관저에서 일할 때가 제일 좋았다고 하더라"라며 "'내가 임기를 못 마치고 나올 줄 알고 그렇게 휴일도 없이 일만 했나 하는 생각이 요즘엔 가끔씩 든다'고도 했다"라고 전했다. 또 지난 19일 마지막 면담 때 그가 "'나오시면 주문진에서 펄떡펄떡 뛰는 회를 모시겠습니다'라고 덕담을 하자 박 전 대통령은 '아휴 그런 날이 오겠어요'라며 씁쓸해했다"라고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