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개막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언론들 역시 올림픽이 다가옴에 따라 분주해지고 있다. 연일 올림픽과 관련된 소식들이 쏟아지고, 포털 사이트들은 평창올림픽을 위한 화면을 따로 만들 정도다.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두 번째 올림픽이자 첫 동계올림픽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다뤄지는 뉴스들을 자세히 보면 국민들이 올림픽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조금 이상하다. 며칠 사이 여러 매체들은 '올림픽 기간 콘돔 배포'를 소재로 많은 양의 기사를 쏟아냈다. 스포츠 관련 언론들은 물론이고, 중앙일보와 같은 대형언론들과 강원도민일보와 같은 지역신문까지 평창올림픽에 배포되는 콘돔을 기사화했다.
콘돔 배포에 집착하는 언론
언론들이 다룬 주요 내용은 '평창올림픽에 콘돔이 11만개 배포되며, 이 수치는 동계올림픽 사상 최고치'라는 것이다. 이외의 내용을 다룬 기사들은 같은 소재의 다른 이야기들이다. 이들이 이렇게 콘돔 배포에 집착하는 이유는 평창올림픽이 특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결론만 말하자면 평창올림픽은 콘돔 배포와 관련해 특이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올림픽 기간의 콘돔 배포는 이미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시작했던 일이고, 매번 올림픽이 치러질 때마다 언론이 다뤄왔던 주제다. 가장 가까운 2016년 리우올림픽 기간에도 언론은 콘돔 배포를 이용한 뉴스들을 왕창 내보냈다.
리우올림픽 전에는 콘돔 배포를 소재로 한 기사들이 없었을까?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이 치러질 때도, 2012년 런던올림픽이 치러질때도 콘돔 배포를 소재로 한 기사들은 나왔다. 심지어 배포량에 대해서도 리우올림픽에서는 45만 개, 소치올림픽에서는 10만 개 등 숫자만 다를 뿐 유사한 기사들이 등장했다.
올림픽 기간에 콘돔이 배포되는 것은 이미 수 차례 보도된 내용이고, 이제는 2년 간격으로 비슷한 기사가 나올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또 다시 등장했다. '올림픽 기간 콘돔 배포'에 대한 기사는 식상할 뿐만 아니라 어떠한 유익함도 없다.
콘돔 배포 말고는 올림픽을 소재로 쓸 기사가 없나요?언론이 올림픽을 앞두고 해야 할 일은 국민들이 올림픽을 즐길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 선수들이 참가하는 종목이 워낙 많고, 선수단도 대규모이기 때문에 전체를 다 다룰 수는 없다. 하지만 비인기종목의 선수들을 다뤄 국민들이 더 많은 종목에서 올림픽을 즐길 수 있게 하거나, 선수가 가진 이야기를 다뤄 감동을 줄 기사들을 만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소치올림픽에서 쇼트트랙 대표로 2관왕에 오른 박승희 선수가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옮겨 메달에 도전하는 이야기나,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 노진규 선수의 꿈을 이어가는 누나 노선영 선수, 노진규 선수의 동갑내기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서이라 선수의 이야기 등을 다루는 언론은 많지 않았다. 노선영 선수의 경우는 빙상연맹의 안일한 행정으로 올림픽 출전이 위태로워지자 그제서야 주목을 받았다.
노선영 선수의 올림픽 출전 문제뿐만 아니라 스키 대표팀의 선발 논란에서는 언론의 역할을 의심할 정도였다. 논란의 시작점은 언론의 취재가 아니라 해당 선수가 올린 SNS 글이었다. 기자들이 발로 뛰어 문제점을 찾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가 문제를 참다 못해 개인 SNS를 통해 알리면 그제서야 SNS 글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식이었다.
자극적인 뉴스만 보도하는 언론을 아무도 꼬집지 않는다올림픽과 관련된 보도방식에 이런 문제점이 보였지만 어떠한 언론도 이런 태도를 문제삼지 않았다. 문제삼기는커녕 대부분의 언론이 이런 자극적 소재를 주고받으며 비슷한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보도방식이 지속되는 것은 언론 자체를 넘어 사회에 악영향을끼친다.
'언론의 수준은 그 사회의 수준을 대변한다'는 말이 있다. 언론이 보는 문제는 사회가 가진 문제가 되고, 언론이 주목하는 것이 사회가 관심을 가지는 사안이 되기 때문이다. 이 말을 두고 '우리 언론은 사회의 수준을 대변하고 있는지' 묻고싶다. 자극적인 소재를 가지고 기사를 쓰고, 이런 잘못된 방식이 지속되고 있지만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의 언론은 사회를 대변할 수 없다.
또한 언론의 이런 태도는 사회에 자연스레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지금 언론들은 대중에게 있어 현실적 문제와 정보가 아닌 자극적 소재만을 보게 하고 있다. 정보의 전달보다는 이슈와 소재만을 이야기하는 글들로 인해 세부적인 내용보다 외부적인 모양만을 인식하게 된다. 이번 올림픽에 어떤 선수들이 대표로 나오는지가 아니라 콘돔이 얼마나 배포되는지만을 기억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많은 언론이 비슷한 방식으로 보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문제 삼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자각해야 한다. 하지만 누구도 꼬집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이 문제파악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는 이런 잘못된 보도방식에 대해 꼬집을 필요가 있다.
언론은 국민의 눈과 귀다언론을 대표하는 말은 '국민의 눈과 귀'다. 그 말인즉슨 언론의 취재와 보도를 통해 국민들은 정보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언론은 국민과 사회에 큰 역할을 한다.
역할이 큰 만큼 책임감이 필요하다. 기자가 쓰는 작은 글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정보를 얻는다. 또한 기사를 통한 문제 제기를 통해 사회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사회의 변화가 하나의 문화를 만들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줄여 말한다면 작은 글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네이버 easteminence의 초저녁의 스포일러에도 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