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는 공기 중의 물방울에 태양광선이 굴절·반사되어 나타난다. 고대인들은 하늘과 땅을 잇는 무지개를 보며 인간과 신을 연결해주는 매개라고 생각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전령이다. 우리나라에도 천상에 사는 선녀들이 계곡에 목욕하러 무지개를 타고 내려온다는 전설이 있다. 성서에서는 무지개를 인간과 신이 맺은 언약의 증표로 여긴다.
<하룻밤에 읽는 색의 문화사>를 보면 교회 안에서 스테인드글라스가 만들어내는 무지개는 인간과 신의 화해, 신의 용서, 인간과 신의 영원한 언약을 상징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무지개가 함께하고 있다. 인간과 신의 화해·용서·언약을 상징하는 무지개와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가 그것이다. 성 소수자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은 예술가이자 동성애 인권운동가인 길버트 베이커가 디자인했다. 그가 만든 무지개 깃발은 다양성과 수용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무지개 깃발은 차별과 혐오로 짓밟힌다.
한국의 보수 기독교 세력은 성소수자 차별금지법이 성서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독교계 신문인 <국민일보>와 <크리스천투데이>는 이런 움직임을 두드러지게 보도한다. 성소수자 인권 문제는 대선 토론 당시 문재인 후보의 동성애 반대 발언으로 부각됐다. 기독교계의 표심을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본심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성소수자를 대하는 한국 주류사회의 생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심상정 후보의 말마따나 동성애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성 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사회적 배제는 사회의 공공선을 파괴하고 병들게 한다. 영화 <박열>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원래 국가나 민족이나 군주라 불리는 것은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보수 기독교 세력이 내세우는 성서의 교리도 개념에 불과하다. 성서의 교리가 인간보다 앞설 수는 없다. 성 소수자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며 인간이라는 자격 하나로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성 소수자는 틀린 것이 아닌 성적 지향이 다를 뿐이다. 다름이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지개가 때로는 쌍무지개로 걸릴 때가 있다. 빛이 두 번 굴절-반사되면서 생기는 것으로 2차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가 아니라 '보남파초노주빨'로 보인다. 빛의 순서가 다를 뿐 혐오의 대상이 될 리 만무하다. 쌍무지개는 함께 뜨기에 더욱 아름답게 하늘을 수놓는다. 인간과 신의 화해를 상징하는 무지개와 성 소수자의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도 함께 떠야 더 아름답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