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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여정, 손 흔들며 방남 예술단 배웅  북한 조선중앙TV는 6일 오후 5시 30분께 남쪽을 방문하는 북한 예술단이 전날 평양을 출발하는 모습의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부부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손을 흔들며 예술단을 배웅하는 모습
북한 김여정, 손 흔들며 방남 예술단 배웅 북한 조선중앙TV는 6일 오후 5시 30분께 남쪽을 방문하는 북한 예술단이 전날 평양을 출발하는 모습의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부부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손을 흔들며 예술단을 배웅하는 모습 ⓒ 연합뉴스

이번 평창겨울올림픽은 북한 참가와 관련해 많은 화제를 낳고 있다.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남북단일팀이 결성됐고, 예술단과 응원단이 방남해 짐을 풀었다. 예술단 공연과 관련해 무수한 화제를 낳았고, 서울공연 관람 경쟁률이 234대 1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올해 90세의 외교관 김영남은 생애 첫 방남을 앞두고 있다. 이에 더해 김정은 제1비서의 동생 김여정 당중앙위 제1부부장이 고위급 대표단으로 오는 9일 서울에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언론은 이른바 '백두혈통'의 첫 방남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북한은 연일 예상을 뛰어넘는 전향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혈육을 통해 자신의 의중을 남측에 전달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황병서와 최룡해, 김양건 등 최고 실세 3인방을 내려 보냈지만, 김여정의 방남은 이를 뛰어넘는 것이다. 김여정이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들고 올 가능성도 주목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정은이 동생 김여정을 고위급 대표단에 포함시킨 것은 그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그만큼 진정성이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남한의 발전상 및 남한과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정성장 실장은 "지난해 10월에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김여정(1987년생)은 만 30세의 젊은 나이에 당중앙위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돼 북한을 이끌어가는 30명 내외의 핵심 그룹에 공식적으로 포함됐다"면서 "김정일의 동생 김경희(1946년생)보다 훨씬 빠른 승진 속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김경희도 만 30세에 당중앙위 국제부 부부장이라는 차관급 직책에 임명됐기 때문에 매우 젊은 나이에 중책을 맡기는 했지만, 김여정은 그보다 빠른 만 27세에 당중앙위 부부장 직책에 올랐다.

또 김경희가 남한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직에 선출된 것은 44세 때였지만 김여정은 27세에 대의원에 선출됐다. 김경희가 당중앙위 위원직에 보선돼 북한을 이끌어가는 약 100명 내외의 핵심 엘리트 그룹에 들어간 것은 42세 때였는데, 김여정은 불과 29세에 당중앙위 위원에 선출됐다.

또 김여정이 제1부부장에 임명된 것은 최룡해를 견제하고 통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일 사망 이후 공석이었던 당중앙위 조직지도부장에 지난해 10월, 최룡해가 임명됐다. 김정일은 1973년 조직지도부장에 올라 사망 때까지 해당 직위를 놓지 않고 겸직했다. 그만큼 핵심 요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최룡해에게 힘을 실어주면서도 혈육인 김여정을 제1부부장에 임명해 그를 견제토록 한 것이다. 과거 장성택, 리제강 등이 제1부부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으며, 조연준이 제1부부장이 돼 장성택 처형을 주도한 바 있다.

정성장 실장은 "당중앙위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되기 전까지만 해도 김여정은 각종 공식행사에서 김정은이 수상자들에게 수여할 메달을 옆에서 전달하거나 김정은이 받은 꽃다발을 건네받는 등 보조적인 역할들을 주로 수행했다"면서 "정치국 후보위원이 된 후 김여정은 김정은과 나란히 서서 대화하며 걷거나 주석단의 맨 앞줄에 앉는 등 현저하게 높아진 위상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남북 관계 개선 의지는 그의 어린시절 놀이 상대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씨의 진술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후지모토는 1988~2001년까지 13년간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이자 정철-정은 형제의 놀이 상대로 북한에 머물렀다. 이때 후지모토는 로열패밀리와 고위 간부의 비밀스런 생활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었다. 정 실장은 "일본에 가서 후지모토를 2차례 직접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면서 "후지모토는 남한의 북한 연구자가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은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더 많은 연구자들이 그를 만날 필요가 있다"면서 그가 김정일 가족을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믿을 만한 인물임을 시사했다. 

또 후지모토가 2001년 북한을 탈출해 일본으로 돌아갔음에도 김 위원장의 신임을 회복, 지난해 초 평양에 일식요리점을 낼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 정 박사는 "많은 전문가들이 김정일의 후계자를 장남 김정남으로 지목할 때에도 일관되게 삼남인 정은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것을 김정은이 높이 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후지모토는 2010년 출판된 <북한의 후계자 왜 김정은인가>에서 "13년간 김정일이 주최하는 당과 군의 간부 파티에서 김정남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다"고 썼다. 조금이라도 후계구도에 있는 자녀라면 연회에 나오도록 해 간부들과 자연스럽게 안면을 익히고 어울리게 했을 거라는 것이다. 

같은 책에서 후지모토는 김정일-김정은 부자가 모두 강한 대미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1990년 김정일이 "'우리나라가 한국이나 일본을 뛰어 넘어 미국과 손을 잡으면 한국과 일본은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것은 대미관계 개선에 강한 의욕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서방세계를 피부로 체험해 알고 있는 정은 대장은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혹은 그 이상으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대해선 어린시절에 '남조선 놈'이라고 말하며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말했던 것은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한미합동 군사훈련'이 행해졌을 때였다. 그러나 스위스에 유학하고 나서는 그런 발언은 하지 않게 됐다. 시야가 넓어져서 같은 민족인 이웃나라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이 싹텄던 것일까. 지금은 보다 냉정한 눈으로 한국과의 관계 개선의 필요성도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여겨진다." 

북한이 주민들에겐 미국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도록 교육하지만 지도자의 의중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이 최근 남한에 먼저 손을 내민 것도 국제사회의 제재를 완화하고 궁극적으로 북미관계 개선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북한이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고 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계속해서 북이 핵을 가지되, 사용하진 않을 거라는 의견도 피력하고 있다.

"핵 보유는 북한이라는 나라를 존속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고방식이 김정일에게 강하다. 핵을 사용하는 것은, 한 발을 쏘면 열 배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핵을 사용하지는 않을 걸로 보이지만, 핵 보유 자체는 미국 등의 핵공격을 봉쇄하는 억제력이 되고 있다는 신념이 김정일에게 있다. 그런 사고방식은 정은 대장이 후계자가 되더라도 쉽게 버릴 수 없을 것이다."

후지모토에 따르면 그는 적국인 일본인으로 '이방인'이지만 김정일이나 그의 가족이 일본제품에 대해 강한 선호를 갖고 있고 일본의 부강함을 동경해 외국인인 자신도 경계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했다고 한다. 13년간 함께 지내면서 노동당에 입당하도록 허락하고, 북한 여성 가수와의 결혼도 주선했으며, 때로 흉금을 털어놓을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실제로 일개 요리사에 불과한 후지모토가 북한의 고위간부들과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이 여러 장 확인된다.

후지모토에 따르면 정철이 온화하고 남을 배려하는 성격으로 자기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다면, 정은은 승부욕이 강하고 응석기가 있었다. 김정은은 어린시절부터 리더십을 드러내 농구시합이 끝나면 잘한 것은 칭찬하고, 못한 것은 나무라는 방식으로 아랫사람이 자연스럽게 따르도록 만들었다. (김정일은 생전에 거의 매일 형제의 농구시합을 관람했다) 형과는 달리 일찍부터 사회적인 관심이 강해서 주민들의 생활상과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다만 그가 남보다 뛰어난 자질을 가졌음에도 '과격한' 성격을 드러낼 때가 종종 있고 성인이 된 현재, 이것을 통제할 사람이 없을 거라고 봤다.

또 후계자로 지목되기 전인 2000년부터 김충일 서기실 제1부장에게 영어를 배웠다. 김정은을 칭송하는 노래 <발걸음>이 발표된 1992년부터 군대장들과 회식을 하거나 오락을 즐기는 모습이 목격돼, 서로 신뢰관계가 형성된 것이 오래된 일이라고도 했다. 따라서 그가 군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는 일부 보도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후지모토는 요리사로서 가족의 생일파티를 준비했기 때문에 이들 남매의 정확한 생년월일도 알고 있다. 김정은은 1983년 1월8일생, 김여정은 1987년 9월26일생이라고 기록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해 김여정을 특별 제재대상 명단에 올리면서 1989년 9월26일생이라고 적시했으나 이것이 틀린 정보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정성장 실장은 "백두혈통 김여정이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은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고, 그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진행하는 데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할 걸로 예상된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김정은#김여정#백두혈통#후지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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