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명의 희생자를 비롯해 수많은 이들의 삶이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서 있다. <오마이뉴스>는 유가족과 생존자, 단원고 교직원, 민간잠수사, 진도 어민 등 아직도 세월호에서 내리지 못한 사람들의 숨죽인 이야기를 전한다. 두 번째로 세월호참사 생존자의 아버지, 장동원 4.16가족협의회 사무처 팀장 글을 싣는다. [편집자말] |
저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SP1 호실에서 마지막으로 탈출한 단원고 생존학생 2학년 1반 장애진양 아빠 장동원입니다. 현재 저는 (사)4.16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 사무처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우선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법> 개정을 위한 피해자 지원 실태를 생존학생의 부모로서 증언을 한다는 것이, 미수습자 분들과 유가족 분들에게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분들의 조속한 수습을 바라며, 아이들을 잃고 시름에 빠진 유가족 분들께 다 시 한 번 죄송스러움을 전합니다. 또한 지난 3년 10개월 동안 세월호에 대한 어떠한 진상규명도 밝혀지지 못함이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죄스러움을 금치 못합니다.
지난 3년 10개월 동안 생존학생의 부모로서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2014년 그날, 아침 일찍 아이의 밝은 목소리에 잠을 깨었고 귀찮은 듯이 아이와의 통화를 끊었습니다. 그로부터 1시간 후 전화벨이 다시 울리고, "아빠 배가 이상해, 아빠 배에 물이 들어와요"라는 절규에 망연자실했습니다.
그렇게 큰 배가 한순간에 침몰될 거라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이의 다급한 목소리에, "구명조끼 입었니? 입었으면, 친구들 데리고 빨리 밖으로 나가!"라고 했던, 저의 그 말이 지금도 유가족 분들에게는 가슴 아픈 말로 전달되고 있습니다. 유가족 분들 누구나. 나는 왜! 내 아이한테 그런 소리를 못 했을까라는 죄책감이 있는 것입니다.
아이 엄마와 함께 진도로 향하는 길, 오직 아이가 살아있기만을 바라며 서해안 고속도로를 얼마나 과속 질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도착 후에, 탈출했다던 아이의 명단은 희생자 명단에 있었습니다. 저희 집에 자주오던 아이들의 이름 또한 사망자 명단에 있는 걸 보면서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30-40분 만에 생존자 명단이 바뀌고, 희생자 명단이 바뀌고, 어느 누구도 어떠한 상황이라고 대답해주는 사람 없는 진도체육관은, 정말이지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마지막 차량으로 진도체육관에 도착한 아이와의 만남은 기자들의 취재로 인해 손도 잡아보지 못한 채, 함께 진도체육관 안으로 밀려들어갔습니다.
친구들의 소식을 알길 없이,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아이를 안고 어찌할 도리가 없어 아이와 안산 고대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곳 또한 기자들의 무분별한 취재가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전원구조라는 거짓 보도로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언론에게 또다시 고통을 받아야했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중, 한 아이의 자살 시도 소식을 들었습니다. 간신히 아이를 찾아, 설득하고, 안정시키는 과정 속에, 누구하나 병원 아이들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세월호의 소식, 친구들의 죽음 소식이 언론에 나올 때마다, 아이들은 두려움과 공포뿐만이 아닌 분노로 표출되어, 부모들조차도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살아나온 저희 아이의 첫 마디는 "아빠는 진상규명 할 거지"란 말이었습니다. 아이가 도대체 무엇을 봤기에, 그 배 안에서 어떠한 상황이었기에 아빠한테 진상규명 할 거지란 말을 전할까요? 부끄럽고 창피하고,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아빠가 얘기 했잖아 사람이 소중하다고, 근데 그 사람이 이젠 나한테 없다고..."
이후 저는 유가족 분들과 함께하면서 2014년 10월에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협의회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얘기합니다. 무엇을 바라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협의회에서 일하는 거 아니냐, 무슨 불순한 의도가 있는 거 아니냐, 유가족들이 보상을 많이 받았으니까 돈 많이 받고 일하는 거 아니냐 등, 말도 안 되고 가슴을 후벼 파는 말들을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아이의 물음을 생각합니다. 아이가 살아왔다고 편하게 살 수 없는 것이 저의 마음입니다. 지난 27년의 직장 생활로 모아뒀던 돈과 퇴직금, 아이 엄마의 퇴직금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습니다.
돈이야 다시 벌면 되지만, 아이의 아픈 상처와 아이의 미래는 무엇으로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진상규명을 위해 300Km 넘는 도보행진을 하는 아이, 자기보다 힘든 아이들을 위해서 언론 인터뷰와 각종 집회를 나가고, 피켓 시위와 서명 작업을 받는 이 아이들을 어른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생존학생들의 치유와 회복은 진상규명입니다세월호 참사로 살아나온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월호 침몰의 원인과 '왜' 구조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덮으려는지 알아야 합니다. 세월호의 올바른 진상규명과 잘못한 책임자들은 그에 따른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고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아이들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내가 나올 때 너한테 전화라도 했으면, 너는 죽지 않았을 텐데"라는 아이의 죄책감은 그 무엇으로도 치유될 수 없습니다.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과 함께 피해자 의료지원과 심리적 치료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두컴컴한 세월호 속에서, 누구도 구조해주지 않고, 아이들의 힘으로만, 탈출했습니다. 바다에 빠진 아이한테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로 아이를 끌어올리고, 너까지 타면 고무보트가 침몰하니까 고무보트 밧줄을 잡은 손을 놓으라고 했던 해경. "아저씨 저 안에 친구들이 있어요"라는 간절한 애원에도 "너가 마지막이야"라는 대답을 한 해경. 탈출 과정에서 외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아이에게 강제로 진술 받고, 손가락을 잡아 지장을 찍게 한 해경. 이것이 국가가 한 일입니다.
3년 동안 친구들을 잃은 아픔 속에 자살을 시도한 학생이 5명입니다. 언론에 주목이 될까봐, 유가족 부모가 아파할까봐 말하지 못하는, 이 부모들의 아픔을 아시는지요.
다 큰 아이들이 욕실 문을 열어놓고 씻고, 가위에 눌려 펑펑 웁니다. 잠을 못자면 수면 안정제를 처방받아 먹어야지만 안정되고, 스트레스로 인해 각종 피부병과 소화장애에 시달리는 아이들입니다. 생존학생 부모들은 유가족들에게 죄송함에도 말씀드립니다. 세월호 피해자들의 의료지원은 국가가 책임져주시기를 간곡히 호소 드립니다. 아픈 기억이 평생 남을 아이들입니다. 완전하게 치료는 될 수 없지만, 국가의 재난과 참사는 국가가 나서서 생의 전주기 치료를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더 이상 이런 아픔의 상처가 대한민국의 역사의 기록에 남지 않길 바라면서,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4.16세월호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법 개정안>이 국회에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의원님과 국민 여러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전 기사]☞ [① 오지원(前세월호특조위 피해지원점검과장] 세월호에서 제천까지...'사람'이 없는 국가재난매뉴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세월호참사 생존자의 아버지, 장동원 4.16가족협의회 사무처 팀장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