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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대입구와 강변 사이, 구의동
건대입구와 강변 사이, 구의동 ⓒ 황은주

구의동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동서울터미널이 있는 강변역과, 먹자거리로 유명한 건대입구역 사이에 있는 이 조그마한 동네가 알려진 건 2016년. 스크린도어 참사를 당한 김군 사건으로 '구의역'이 세간에 오르내리면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실리는 동네 이름을 보는 게 그리 낯설 수가 없었다.

나는 구의동에서 태어나 27년간 살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 그 집을 짓기 시작해 들어가 살았고, 우리가 나오던 날 허물었으니 그 집을 기억하는 것도, 그 집에서 산 것도 우리 가족밖에는 없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겨왔지만 구의동은 나의 고향이자 삶터다. 존재의 뼈대가 만들어지고 살이 붙은 곳이라면 삶터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 글은 오랜만에 다시 찾은 '고향 방문기'이자 평범한 동네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웃들의 이야기다.

낯설고 낯익은

새로운 무언가를 접할 때면 기존에 인식된 정보를 불러와 대조하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동네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초행길에 보이는 요소들에 이건 망원동 같고 저건 서촌 같다며 비슷한 구석을 끌어내 갖다붙인다. 구의동 방문날 동행인은 연신 이곳은 부평 같다, 저곳은 신도림 같다고 중얼거렸다.

스무 해를 넘게 살아온 동네였기에, 이곳은 내게 그냥 처음부터 이렇게 생긴 곳이었다. 저 건물은 왜 저렇게 생겼는지, 슈퍼는 왜 그 자리에 있는지 한 번도 궁금한 적 없었다. 누군가의 입으로 들으니 아,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의 학교.
나의 학교. ⓒ 황은주

오랜만에 중고등학교에 들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한 울타리 안에 있다. 학교의 모습은 동네를 막론하고 사실 비슷하다. 우중충한 페인트칠에 낡은 게시판, 녹슨 골대와 벤치들… 그걸 '우리' 학교로 만드는 건 거기 다니며 쌓인 시간과 추억들 때문일 테다.

우리 학교는 등나무가 참 예뻤다. 여학교라 그런지 체육시간이 줄곧 쉬는 시간이 되곤 했다. 실기평가 기간을 제하면 쉬자고 선생님께 조르는 게 일이었다. 선생님이 마지못해 허락하면 우르르 등나무 밑 벤치로 달려가 그곳에 누웠다.

지금처럼 편안한 벤치도 아니었고 조금만 누워도 등이 배겼는데도 거기 누워 등나무의 구불구불한 줄기를 보는 게 그렇게 좋았다. 여름이면 등나무 그늘은 세상에서 제일 시원한 휴식처였다.

6년 내내 들락거렸던 곳을, 손님이 되어 쭈뼛거리며 들어섰다. 교무실을 기웃거리다 교무조직도에서 고3때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서른 몇 살, 당시 막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던 선생님이 이제 부장님이 되어 계셨다.

누구나 한번쯤 선생님이 되어보고 싶은 꿈을 꾸었을 것이다. 내가 그 길을 택하지 않은 건, 선생님은 누군가의 등을 보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떠난 제자들에게 학교는 과거의 정거장이다. 그들은 잠시 머물러 재잘거리다 떠나고, 그리고 곧 학교를 잊는다. 잊히는 건 교사의 숙명이다. 과거를 잊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정을 준 존재에게 잊히는 게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모여 만든 일상의 숭고함

학교 앞이자 우리 집 옆엔 꽃집이 하나 있다. 아주머니 아저씨 부부가 매일 새벽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닫지 않고 일하시는 곳이다. 꽃집 둘째딸 언니 이름이 나와 같아서, 그 앞을 지날 때면 아주머니 아저씨가 정답게 이름을 불러주셨다.

내가 유치원에 들어가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을 졸업할 때, 인생의 길목마다 아저씨 아주머니의 마음을 얹어 축하를 받았다. 그 앞을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서 비타오백 한 박스를 사들고 꽃집에 들어서는데, 들어서자마자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저 은주예요, 라며 인사를 드리자 아주머니께서도 눈가를 계속 훔치셨는데, 자세히 보니 백내장인지 눈이 많이 흐릿하셨다. 그런 손으로 나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꽃 다듬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다.

좀 쉬셔야 할 것 같아요, 건넨 말에도 그래 쉬어야지, 근데 그게 말처럼 잘 안 돼. 라고.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셨다.

은주는 지금 어디까지 왔을까? 어디에 있을까?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내게, 은주는 지금 인생의 어디까지 온 걸까? 라고 다시 한번 물으셨다.

 예기치 않은 질문을 받았던 구의동의 꽃집.
예기치 않은 질문을 받았던 구의동의 꽃집. ⓒ 황은주

오늘, 다시 찾은 고향의 꽃집에서 들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질문이었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며 나는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지고 받았던 걸까? 그 질문에서 너무 멀어져버린 건 아닐까?

한 학교에서 수십 해를 보내시는 나의 선생님, 그리고 삼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아침저녁으로 꽃을 돌보는 생활을 하루하루 이어간 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한 매일매일이 어쩌면 우리 길의 전부라고.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돌아볼 때 그 매일의 숭고함이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라고. 걱정하고 두려워하기보다 그저 매일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나도 나 자신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겠지. 너는 지금 어디쯤에 와 있느냐고.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느냐고.

이곳에서 보낸 하루가 모여 지금까지 흘러왔다. 이 동네는 내게 무엇을 남겼을까. 사람을 환대하는 법, 일상을 아끼는 법,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해내는 법. 떠난 다음에 느껴지는 사람의 흔적처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구의동에 와서야 깨닫는다.

이곳에서 자라며 내게 새겨진 태도들을 잃지 않으려 한다. 하루하루 성실히 질문을 던지고 받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게, 구의동에서 보낸 하루가 내게 준 선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계간 <딴짓>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구의동#구의역#평범한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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