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을역 2박 3일 농성을 마무리하며 장애인과 활동가들이 단체 사진을 찍었다.
서을역 2박 3일 농성을 마무리하며장애인과 활동가들이 단체 사진을 찍었다. ⓒ 이명옥

서울역 역사의 차가운 바닥을 휠체어에서 구르듯 내려온 한 장애인이 힘겹게 기어가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다. 지켜보던 다른 장애인이 휠체어에서 내리며 함께 기어가자고 제안한다.

명절에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이 만일 버스가 없어서 고향의 부모와 형제 자매, 벗들을 만나고 싶어도 갈 수 없다면 어떨까.

"장애인도 시민들과 함께 살고 싶다. 우리는 대단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장애인도 자유롭게 버스 타고 고향도 가고 올림픽이 열리는 평창도 가고 싶다. 우리 땅에서 열리고 있는 올림픽 개막식에 우리도 참여하고 싶다. 장애인도 함께 살고 싶다."

15일 2박 3일간의 서울역 노숙 농성을 기어가는 것으로 마무리하며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한 말이다.

농성장을 찾은 더불어 민주당 의원들 추미애 , 우원식 대표가 장애인들과 악수하고 있다.
농성장을 찾은 더불어 민주당 의원들추미애 , 우원식 대표가 장애인들과 악수하고 있다. ⓒ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그들의 요구는 소박했다.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실제로 실행되도록 장애인을 위한 버스를 마련해 줄 것, 약속한 장애인등급제 폐지와 실질적인 복지가 가능하도록 5월 정부 부처 예산안이 편성될 때 책임지고 실질적 예산 편성을 해 달라는 것이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은 2005년 제정되어 몇 차례의 개정을 거쳤다. 시도별 저상버스 도입과 장애인 콜 택시 등이 운영되고 있으나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더군다나 장시간 이동을 위한 고속버스의 경우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탑승이 가능한 버스는 한 대도 없는 상태다.

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요구가 이어지는 이유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교통 약자들이 교통 시설을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제반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 이동을 방해하는 장벽은 거두어지지 않은 상태다.

앞서 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1870일 동안 광화문에서 장애인등급제와 부양 의무제 폐지를 위한 투쟁을 벌여왔다. 2017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장애인복지법ㆍ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ㆍ장애인연금법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장애인 등급제는 2019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다시 농성을 시작했을까. 박경석 대표에 따르면 '담당 부처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법의 시행을 미루고 있고, 기준을 더욱 까다롭게 만들어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1870일의 노숙 농성을 마무리한 후 85일의 농성에 이어 설날을 앞두고 2박 3일간 서울역 역사에서 노숙 농성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차가운 역사 바닥을 기어서 대형 현수막이 걸린 곳까지 힘겹게 다가간 박경석 대표는 김영주 고용노동부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과의 면담이 이루어져 3월 9일 모두가 바닥을 기어가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정치인들이 왔다 갔어요. 저랑 사진도 찍었어요. 그러면 뭘해요. 예전에 유시민씨도 같이 사진을 찍었어요. 하지만 약속한 정책을 지키지 않더라고요. 사진을 찍고 사진 값도 안 하는 거죠."

각 당에서 정치인이 다녀가면서 사진을 찍으며 문제 해결을 약속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약속을 책임질 부처 장관들은 아직 면담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바람대로 3월 9일 장애인이 다시 차가운 바닥을 기어가면서 면담을 요청해야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장애등급제 폐지#장애인 복지 실현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이 기자의 최신기사살아있음이 주는 희망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