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얘들아 이제 가자."
"아~ 왜요, 싫어요~"
"우리 이제 밥먹을 시간이야. 밥상선생님이 기다리셔."
"그럼 우리 내일 또 와요."
"그래, 내일 또 와서 재미나게 놀자!"

도토리집에서는 매일 오전마다 숲으로 산책을 갑니다. 특별히 재미난 놀잇감이 있는 곳이 아닌데도, 아이들의 발길이 멈춰서는 순간 즐거운 놀이터가 펼쳐집니다. 주변의 낙엽·나뭇가지·꽃잎·열매 등 흔하게 보이는 모든 것들이 장난감이 되고요, 특히 물과 흙처럼 형태가 고정되지 않을수록 아이들에겐 훨씬 재미난 놀이감이 됩니다.

걷다가 바위를 만나면 비행기 놀이나 우주선 놀이 등 다른 세계로 떠날 수 있는 터전이 되고요. 기울어진 벤치나 가파른 언덕길은 재미난 미끄럼틀이 됩니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이나 터전과의 만남 속에서 새로운 상상이 마구 샘솟아나고, 그렇게 펼쳐진 새로운 세계에서 아이들은 항상 주인공이 됩니다.

 계곡은 상상력이 무궁무진하게 샘솟는 놀이터에요. 물에서 놀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게 되지요.
계곡은 상상력이 무궁무진하게 샘솟는 놀이터에요. 물에서 놀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게 되지요. ⓒ 신진영

도토리집에는 종이 재활용 상자가 있어요. 다 본 생협 소식지, 구겨진 이면지, 다 쓴 휴지심, 때에 따라 생겨나는 종이 상자 등 그날 그날 생겨나는 폐지를 재활용 상자에 모아두었다가, 하루를 마무리 할 때 한 번에 내다버리곤 하지요.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가 아이들이 종이 재활용 상자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어요. 선생님이 버려놓은 종이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거에요! 분명히 방금 전에 버렸는데, 뭔가를 확인 할게 있어서 다시 상자 안을 들여다 봤다가 텅 빈 상자만 마주하게 될 때도 있지요.

없어진 것들이 어디로 갔을까 둘러보면, 아이들 손에서 또 다른 창작물로 재탄생되는 광경을 마주하곤 합니다. 마음에 드는 예쁜 그림이라도 발견하면 오려서 카드처럼 모아두기도 하고, 크고 작은 종이들로 종이접기를 하기도 하지요. 휴지심이 망원경이 되어있기도 하고, 종이상자는 자동차나 비행기가 되기도 하고, 조각난 지끈이 예쁜 팔찌가 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한복디자인을 했던 마을 이모로부터 한복 도안이 인쇄된 종이를 이면지로 받은 일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한창 종이인형 놀이에 빠져있던 시기였는데요, 너나 할 것 없이 한복 도안을 자기만의 색깔로 예쁘게 색칠하고, 선따라 오려서 종이인형에 한복을 입히며 놀기도 했지요. 원래는 인쇄물 뒷면에 그림 그리라고 나눔 받은 것인데요, 아이들은 인쇄물 자체를 활용해서 훨씬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에서 재미를 발견하며 그 안에 흠뻑 빠져 노는 아이들을 볼 때면, 창의력이라는 것이 연결짓는 능력과 맞닿아 있음을 느낍니다. 나와 전혀 관계없는 대상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그 대상이 나와 연결되는 순간 엄청난 기쁨을 누리는 것이지요. 한편 어른들에 의해 완벽하게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나 장난감은 한 순간 흥미를 끌 수는 있어도, 아이들의 사고력과 창의력을 끌어내기는 어렵습니다. 아이들 스스로의 주도적인 생각이 들어갈 틈이 거의 없으니까요.

 도토리 깍지에 꽃잎과 나뭇잎을 넣어 반짝이는 밥상을 차려냅니다. 어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예쁘게 꾸며낼 줄 알지요.
도토리 깍지에 꽃잎과 나뭇잎을 넣어 반짝이는 밥상을 차려냅니다. 어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예쁘게 꾸며낼 줄 알지요. ⓒ 신진영

아이들은 모든 감각을 열고 세상과 온몸으로 만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생각이 싹트고 연결짓는 힘이 솟아납니다. 당연히 처음부터 잘하는 것은 아니지요. 낯선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어디 쉽고 즐겁기만 하겠어요. 하지만 실수하고, 속상하고, 당황스럽고, 화나는 과정까지도 직접 겪어나가며 어떻게 세상을 만나가야 하는지 배워나가는 과정임을 기억한다면, 아이들이 겪는 시행착오 옆에서도 좀 더 여유를 갖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감각을 다양하게 느끼게 되고, 그렇게 쌓이는 자신의 감각을 믿으며 세상을 향해 더욱 넓고 깊게 뻗어나가게 되지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게 되거나 아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함께 만들다보면, 아이들이 지닌 다양한 상상력과 거침없는 자유로움에 놀랄 때가 많아요. 그리고 이런 것이 진정한 창의력임을 깨닫게 됩니다. 창의력이라고 하는 것을 단순히 성공하는 인생을 위해 필요한 요구조건 정도로만 본다면, 생명이 지닌 엄청난 가능성을 가둬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 안에 어른이 원하는 틀을 설정해두고, 목표를 도출해내기 위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아이들 안에 깃든 힘을 발견하기 어렵거든요.

창의력이라고 하는 힘은, 단절되고 분열된 것에 자신을 열어 다가가며 끝없이 연결 짓고 틀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 길을 열어 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길러집니다. 이런 힘이 쌓이다보면 훗날 삶에서 어려움을 맞딱뜨렸을 때 섣불리 체념하지 않고 넘어설 줄도 알게 되고, 한계를 넘어설 줄 아는 유연함도 생기게 되겠지요. 생명이 지닌 경이로운 힘입니다.


#공동육아#도토리집#숲산책#자람새#어린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