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허락도 안 받고... <오마이뉴스>가 왜 이렇게 무례하게 됐나? 내가 공인인데, 카메라를 이렇게 들이대면..."사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잠깐만 시간을 내어달라는 오마이TV 다큐 제작팀의 인터뷰 요청을 번번이 뿌리쳤다. 3번째 요청할 때에는 그의 집 앞에 있었다. 집으로 들어올 때까지 버티려 했지만, 그의 말처럼 무례할 것 같았다. 골목길 가로등 아래서 그에게 예의를 갖춰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또 거절했다.
"<오마이뉴스>는 이제 4대강을 그만 우려먹지.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그렇게 우려먹었잖아. 난 이제 할 말이 없어. 그러지 말고 자전거나 한번 타자고."지난 2월 8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늘푸른한국당 당사 앞에서 4차 시도를 했다. '당사 앞에 있는데 잠깐이라도 만나 달라'고 했다. 그는 "다른 곳에 있다"며 거절했다. 곧바로 사무실이 있는 23층으로 올라갔다. 복도 끝으로 나와 전화통화를 하는 그를 봤다. 다큐 제작팀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렸다. 그의 말처럼 공인이었기 부득이하게 택한 '디밀어 취재'였다.
여기서 '그'는 최근 한 방송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잡아가려고 하면 전쟁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재오 늘푸른한국당 공동대표이다. 다스(DAS)를 수사하는 검찰 칼끝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정조준하자, 그는 적극적으로 언론에 나와 육탄 방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오던 이 대표는 오마이TV를 보자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9년 전] '경부운하 전도사' 자전거 추격
9년 전에도 이 대표 얼굴에 허락 없이 카메라를 들이민 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지지도는 50%에 육박했지만, 제1 공약이었던 '경부운하' 찬성 여론은 10%대 늪에서 허우적댈 때였다. 그는 2007년 9월 22일부터 '한반도 큰 물결 자전거 탐방' 간판을 내걸고 4박 5일 동안 560km를 달렸다. 부산 을숙도에서 시작해 한강까지 질주하면서 경부운하를 홍보했다.
<오마이뉴스>는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의원 사무실에 동행취재를 요청했지만, 정색하면서 "오지 말라"고 했다. 그때도 무작정 들이댔다. 유력 대선 후보의 공약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를 검증하는 게 언론이다. 하지만 만만치는 않았다. 하루 전날 자전거를 사서 부산으로 내려갔던 <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의 마무리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새벽,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뜰 때마다 그를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화장실로 들어가 찬물로 졸음을 쫓을 때면 그의 이름을 부르며 한숨을 토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이미 다 까져 쓰라린 사타구니를 다시 자전거 안장에 얹을 때마다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고 한탄했다." (관련 기사:
이 사진을 '넘버2' 이재오 의원에게 드립니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은 추석 연휴를 반납한 채 자전거 안장 위에서 캠코더를 돌렸다. 비를 맞으며 페달을 밟았고, 핸드폰 문자로 기사를 송고했다. 새벽까지 기사를 쓰고 영상을 다듬었다. 만신창이 몸으로 한 시골 모텔의 따뜻한 욕조에 들어갔다가 차가운 물 속에서 깬 날도 있었다. 박 기자는 하루 2~3시간씩 자면서 강행군했다.
자전거 추격 이틀째 되던 날, 대구 달성군 도동서원 위쪽은 가파른 비포장 길이었다. '쫄바지'에 붉은 헬멧을 쓴 이 대표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해발 250m 높이의 다람재에 올랐다. 고개 정상의 정자에 오르니 도동서원을 끼고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의 모습이 보였다. 이 대표는 호기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저기, 경부운하를 타고 물길을 거슬러 올라오는 바지선이 보인다. 정말 장관이야..."실제 바지선이 나타난 게 아니라 경부운하 공약이 실현됐을 때를 상상해서 한 말이었다. 다람재에서 내려와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변을 질주하던 이 대표를 따라붙었다. 페달을 밟던 이 대표가 내게 말했다.
"낙동강은 버려진 강이야. 왜 이런 엄청난 강을 그냥 버려두고 놀게 하는지 모르겠어. 저기 바지선 보이지? 지금도 모래를 채취하고 있는데, 왜 우리가 경부운하 건설을 위해 모래를 파낸다고 하면 환경파괴라고 비판하는지, 빨리 낙동강을 인간적으로 만들어야 해!" 3달 뒤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전 대통령은 한반도대운하의 명칭을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바꿔서 다람재 아래쪽의 강바닥도 팠다. '버려진 강'에 바지선을 띄울 수 있는 수심 6m를 확보했다. 그때 이재오 대표는 청와대로 들어가 대통령 특임장관을 지냈다. 배만 띄우지 않았을 뿐, 이 대표의 소망이 절반 이상 실현된 셈이다.
4대강 사업 반대여론은 잦아지지 않자, 그는 자기 묘비석에 "4대강 잘했다"라고 써달라고 말할 정도로 '4대강 사업 전도사'를 자처했다. 4대강 사업을 "천지개벽, 상전벽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때마다 9년 전 자기 허벅지를 탁탁 치면서 "이 정도는 해야 국민들이 우리를 믿고 정권을 맡기지 않겠어?"라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탄압] 고난의 라이딩
이재오 대표의 자전거는 멈췄지만, <오마이뉴스>의 추격전은 계속됐다. 4대강 사업이 완공된 뒤에도 매년 탐사취재단을 꾸려 다람재에 올랐다. 비포장 길은 왕복 2차선 아스팔트 길로 바뀌었다. 이 대표와 함께 바라보았던 도동서원 앞의 도도한 강물은 합천 창녕보에 가로막혀 흐름을 멈췄다. 이 대표는 '인간적인 낙동강'을 희망했지만, 도동나루터는 비인간적인 강으로 변했다.
지난 2015년 8월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 탐사보도팀이 도동나루터에 갔을 때였다. 고기잡이를 그만둔 늙은 어부는 수자원공사에 고용돼 녹조 제거 작업을 벌였다. 수십 년 동안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을 낡은 배의 스크루를 돌릴 때마다 녹색 물보라가 일었다. 아래는 당시 이희훈 기자가 찍은 영상이다.
이런 낙동강의 변화된 모습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는 이가 있다. <오마이뉴스>와 함께 이재오 추격전에 나섰던 환경운동연합 염형철 사무총장이다. 그는 9년 전처럼 '고난의 라이딩'을 계속했다. 염 총장이 사령탑을 맡았던 환경운동연합은 이재오 대표를 '4대강 부역자 S급'(스페셜급) 인사로 발표했다. 오마이TV 다큐 제작팀은 지난해 11월 30일 그를 만났다.
"2008년 9월, 이재오 추격전이 끝나고 1년 뒤였죠. 이명박 대통령이 광우병 사태를 사과하면서 대운하 포기 선언을 하고 2~3개월 흘렀을 때였습니다. 제가 출근했는데, 양복 입은 사람들이 사무실 앞에 잔뜩 와 있더라고요. 검사와 수사관들이었습니다. 변호사 자문을 구한 뒤에 그들을 사무실로 들였습니다. 50박스가 넘는 자료를 싹 털어갔죠. 이게 환경운동연합 역사에서 가장 아픈 장면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시민사회단체의 압수수색은 헌정 사상 최초였다. MB 정부가 한반도대운하를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이름만 바꿔서 추진할 때였다. 당시 환경운동연합 고문이었던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을 옥죄기 위한 청와대 하명 수사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관련 기사 :
대운하 반대했다 옥살이 최열 "MB와 임무 교대해야" ).
"검찰은 압수수색한 자료를 왜곡하고, 짜깁기해서 언론에 흘렸습니다. 우리 조직은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생계비 정도의 월급을 받으면서도 자부심 하나로 버텼는데, 그게 무너진 거죠. 활동가들은 자괴감에 휩싸였습니다. 책임지겠다면서 대부분 그만뒀고, 중앙 환경운동연합은 붕괴되다시피 했습니다. 한반도대운하, 4대강 사업에 대한 싸움도 급격하게 약화됐죠."당시 대부분의 언론들은 검찰이 흘린 정보를 활용해 환경운동연합을 파렴치한 단체로 몰아붙였다. 시민들의 후원금을 횡령했다는 거짓 정보였다. 하지만 검찰의 대대적인 토끼몰이 수사에서 나온 결과는 허탈했다.
"산림청에서 지원을 받았던 2003년 어린이 뮤지컬 사업에 대한 회계처리가 미흡하다는 것, 이거 한 건이었어요."[고공농성] 41일간의 고립무원
염 총장은 2년 뒤인 2010년 8월 22일 새벽에 배낭을 메고 경기도 여주 이포보에 올랐다.
"환경운동연합은 검찰 수사로 쑥대밭이 된 상태였죠. 맨몸뚱이로 버티는 것, 그것 말고는 할 것이 없었습니다. 4대강 공사는 엄청난 속도로 진행됐고, 이를 비판하는 언론도 거의 없었으니까요." 4대강 예산이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된 뒤 MB 정부가 불도저처럼 공사를 강행할 때였다. 염 총장은 박평수, 장동빈 씨 등 2명의 지역 환경운동연합 간부와 함께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천둥과 번개가 치고 뙤약볕이 내리쬐는 27m 교각 위에서 '국민의 소리를 들으라'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며 버텼다.
교각 공사는 잠시 중단됐지만, 아래 쪽은 철근이 삐쭉하게 튀어나온 상태였다. 그곳을 내려 볼 때마다 아찔했단다. 올라간 지 보름 정도 지났을 때 먹을 게 떨어졌다. 사실상 고공 단식농성이었던 셈이다. 언론들이 침묵할 때였기에 핸드폰을 이용해 SNS와 오마이뉴스에 보내는 '농성 일기'로 4대강 사업 비판을 이어갔는데, 수동식으로 만든 전기 충전기도 고장 났다.
고립무원 상태였다.
"대부분의 언론은 4대강 사업에 눈을 감았죠. 22조 원이나 들이는 큰 사업인데 검증도 하지 않았습니다. 4대강 시설 안정성이나 생태계에 끼치는 악영향 등의 우려가 제기됐는데,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제 SNS로는 역부족이었지요. 언론이 역할을 했다면 황당한 사업이 추진될 수 있었을까요?"그가 최후의 보루로 선택한 고공농성이었지만, MB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뒤에도 국가 권력을 총동원해서 군사작전을 벌이듯이 4대강 사업을 밀어붙였다. 농성자들의 건강은 갈수록 악화됐다. 고공농성 41일째 되던 날, 그는 사회 원로들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이포보를 내려와야 했다.
[거짓말] 놀고 있는 강?
9년 전 이재오 대표는 낙동강을 '버려진 강' '놀고 있는 강'이라고 말했다. 염 총장의 생각은 달랐다. 1300만 명의 영남인들이 식수원으로 사용하기에 경제적 가치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는 것이다. 염 총장은 "낙동강은 4대강 사업을 한 뒤에 이 대표 말처럼 '버려진 강'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공업용수로도 쓸 수 없는 최악 수질 4급수 지표종인 붉은 깔따구와 실지렁이들이 창궐하고 있다.
"수돗물을 직접 먹는 국민은 2~3%에 불과합니다. 간접적으로 끊여 먹는 물을 합치더라도 30%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생수와 정수기 물을 씁니다. 정수기 사용량이 40%인 나라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밖에 없죠. 생수 시장이 우리처럼 급격하게 확대된 곳도 없습니다. 수돗물 원수에 대한 불신 때문입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원수 악화가 부지불식간에 국민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거죠. 여기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옵니다." 그는 4대강 사업이 생명수만 죽이고 있는 게 아니란다. 4대강 사업 때 쓴 세금 22조 원을 제외하더라도 매년 4대강 사업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세금도 많다.
"MB 정부는 매년 4대강에 들어가는 비용이 5~7조 원이라고 했습니다. 22조 원을 한꺼번에 투입하면 그 뒤에는 들어갈 돈이 없다고 했죠. 하지만 예산은 줄지 않았습니다. 4대강 댐과 공원 등 유지관리비용이 추가됐죠. 4대강 사업 때 수자원공사에서 8조 원을 끌어다 썼는데, 이자만 해도 매년 국민 세금 3800억 원을 쓰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MB의 거짓말에 속았습니다."문재인 정부 들어서 4대강 수문을 일시 개방해 모니터링하고 있다. 수문 완전 개방을 결정한다면, 22조 원의 세금을 수장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는 이 일을 책임져야 한다.
[책임] 진상조사 때까지 '우려먹겠다'
2007년 추석날 저녁이었다. 오마이뉴스는 경기도 여주의 한 마을회관에 마련된 이부자리 위에서 이 대표와 인터뷰했다. 염형철 총장도 함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이 대표에게 자전거를 타고 경부운하 홍보에 나선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경부운하는 이명박 후보의 주 공약이다. 명색이 내가 이 후보 경선 캠프를 책임지고 있던 사람 아닌가. 이 후보의 주된 공약을 말이 아닌 직접 몸으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 경부운하에 대해서 물으면 자신 있게 말하고 싶었다. (중략)경부운하를 통해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국토 전반을 한번 손질하는 게 좋겠다. 큰 물줄기로 이어지는 지천, 샛강들이 어느 하나 깨끗한 게 없다. 전부 더럽거나, 풀이 우거져 있다. 이걸 다 한번 손질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서 나라의 기운을 다시 한 번 일으킬 필요가 있다. 나는 정치인으로서 국토를 리모델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9년이 흘렀다. 이 대표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함께 추진했던 국토 리모델링 사업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지 않고 침묵했다. 공인(公人)이었기에 더욱더 책임 있는 말을 해야 했지만, 그는 오마이TV 다큐 제작팀의 카메라를 '공인에 대한 무례함'이라고 말하며 내쳤다. 손으로 허벅지를 치며 버려진 강을 살리고 국운을 융성시키겠다고 말했던 당당함은 없었다.
염형철 사무총장은 최근 한강을 17일간 도보로 답사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2월 20일)은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된 독일 뮌헨의 이자르강에서 자전거를 타고 답사하고 있다. 그는 오는 2월 말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면 본격적으로 한강 복원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염형철 사무총장에게 4대강의 대안을 물었더니, 적폐 청산이 강 복원작업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9년 전 이재오 의원에게도 말했는데요, 경부운하 변종인 4대강 사업은 백해무익했다는 것이 확인됐어요. 이 전 대통령과 이 대표, 자유한국당은 지금도 감사원의 4대강 감사를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지요. 하지만 이런 일이 재연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조사해서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4대강 사업을 청산하는 첫 번째 대안입니다. 그 뒤에 문재인 정부는 선거 때 약속했던 대로 4대강 복원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갖고 실행해야겠지요."이 대표는 '더 이상 우려먹지 마라'고 말했지만, <오마이뉴스>는 철저한 진상조사가 진행될 때까지 4대강 사업을 질기게 '우려먹을' 예정이다. 오마이TV와
10만인클럽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4대강 부역자들의 민낯을 다큐멘터리로도 제작하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으로부터 4대강을 해방시키려고 노력해온 '4대강 독립군'들은 <오마이뉴스>가 만드는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자 조력자이다. MB와 부역자들에 저항하면서 10년의 삶을 희생해온 진실 고발자들을 응원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아래 영상은 시민들의 소중한 후원금으로 제작한 두 편의 미니 다큐이다. 3편은 다음 주 중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