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대학입시와 중고교 교육현장에서 '평가혁명'에 착수했다. ①대학입학 공통시험(일본 수능)의 일부 문제를 논술형으로 출제하고 ②공교육에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 교육과정을 도입했다. ③대입 논술 문제를 좀 더 수준 높게 출제하라고 각 대학에 지침을 내렸다.반면에 한국은 ①대입수학능력시험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문제를 놓고 갈등하고 ②대입전형에서 일부 대학은 논술고사를 전면 폐지하거나 축소했으며 ③질 낮은 암기식 내신 문제로 소모적인 경쟁을 부추기고 공정성마저 상실한 학생부종합전형을 확대했다. 한국과 일본의 교육은 마치 정반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 교육을 이대로 방치하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고까지 걱정한다.한국 교육의 혁신을 위해 '일본교육혁명, 그 현장을 찾아서'를 주제로 기획 취재를 시작한다. 일본의 일선 학교들과 교육 전문가들을 취재하여 일본교육 평가혁명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그 첫 단계로 홋카이도에 있는 '시립 삿포로(札幌) 가이세이(開成) 중등교육학교'를 현장 탐방했다. 이 학교는 삿포로시에서 운영하는 공립학교로 IB 논술형 교육과정을 4년째 모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국제학교'가 아니라 '공립학교'에서 바칼로레아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한국 공교육이 본보기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문재인 정부의 국가교육회의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는 IB 교육과정을 한국 공교육에 적용하는 게 좋겠는지 토론해 보면 좋겠다. 한국은 일본보다 교육자치가 잘 되어 있어 교육부 승인 없이 시도교육청 수준에서 IB를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다는 분석도 있다. - 기자 말
"교육재건은 경제회생과 함께 일본의 최우선 당면과제입니다. '강한 일본(strong Japan)'을 회복하기 위해 미래를 견인할 아이들의 교육을 재건하는 일은 필수입니다. 교육재건의 궁극적 목적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에 눈을 뜨고 학업역량을 기를 기회를 확보하는 데 있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3년 1월 24일 총리관저에서 열린 총리 산하 교육재건실행위원회 회의에서 교육혁신으로 일본을 재건하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아베 신조 총리는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당시 문부과학성 대신에게 전권을 주면서 내각 전체가 교육재건에 참여하도록 촉구했다.
"나는 시모무라 하쿠분 선생을 문부과학성 대신으로 임명했습니다. 그에게 교육재건위원회 장관까지 맡겼습니다. 내각 전체가 교육재건에 힘쓰도록 제도도 만들었습니다. 교육재건실행위원회에서 국민과 함께 강력하게 교육을 재건하고자 합니다."
"강한 일본 만들자" 객관식서 논술형으로 평가 혁신시모무라 전 문부과학성 대신은 재임 기간(2012년 12월 26일~2015년 10월 7일)에 교육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이것은 고대접속개혁(高大接続改革), 곧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일체가 된 교육개혁을 포함한다. 대학입학시험을 지식 이해에 편중된 객관식 형태에서 논리적 사고력과 판단력, 표현력을 중시하는 논술형으로 바꾸고 이를 통해 수업 방식도 혁신하고자 했다.
그는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에게 IB 교육과정을 공교육에 들여와야 한다고 설득했다. 마침내 IB 교육과정은 2013년 6월 '각의결정'에서 공교육 도입이 결정됐다. IB를 일본어로 번역해 2018년까지 200개 학교에 보급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에서는 수상 및 모든 각료의 의사결정수단 중 가장 위치가 높은 것이 '각의결정'이다. '각의결정'에서 확정한 정책은 국가 차원의 중대한 목표가 된다. 문부과학성 대신이 바뀌어도 IB 교육과정을 공교육에 계속 확대 적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한국에선 "공정하고 단순한 대입" 객관식 수능에 미련 반면, 한국은 교육 정책에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하반기 정책 여론조사 평가에서 35%로 최하위 지지율을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의 높은 지지율을 김상곤 교육부총리가 다 까먹는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교육 혁신을 위해 만들었다는 '국가교육회의'는 주체가 어정쩡한 상태다. 청와대나 교육부가 주도하지도 않는다. 얼마나 효율적인 정책으로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청와대와 교육부는 대입 정책에서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실상 '수능 확대'를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교육회의에 전한 첫 번째 공식 당부에서 "학부모와 학생이 알기 쉽게 공정하고 단순한 대입정책을 만들어 보라"고 했다. 이것은 노골적으로 객관식인 '수능 정시 전형 확대'를 촉구한 것이다. 국민에게 표를 얻기 위해 나라의 미래에 눈을 감겠다는 것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
'강한 일본' 목표로 사고력 향상에 초점 맞춰 교육하는 일본김상곤 교육부총리는 '학종 유지'를 방향으로 잡고 학종 옹호론자들을 주위에 배치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은 그 취지가 좋다고 하더라도 공정성과 거리가 있고, 소모적인 주입식 암기식 객관식 내신 경쟁을 부채질한다. 결국 4차 산업혁명시대에 주입식, 암기식 평가방식에 머문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강한 일본'을 목표로 사고력, 창의력 향상에 초점을 맞춘 아베 신조 총리의 2013년 첫 교육정책과 대비된다.
임진왜란 전과 구한말, 일본이 강한 나라로 도약하며 국력을 신장하는 동안 우리나라 지도부는 미래를 내다보고 경쟁력을 기를 생각은 못하고 나라를 도탄에 빠뜨렸다. 그때도 정치권은 백성의 안위와 국가의 미래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만을 위해 곧 닥칠 지진해일(쓰나미)을 백성들에게 알리지 않고 당장의 모면만을 선택해서 결국은 백성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안겼다.
"미래 사회엔 논술형 문제로 평가 받는 능력 중요" 와세다대학 교육학부 출신인 시모무라 하쿠분 전 대신은 지난해 10월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도쿄도 제11구 선거구에 자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했다. 문부과학성 대신 사무관, 내각 관방 부장관, 문부과학성 대신, 자민당 총재 특별보좌, 자민당 간사장 대행 등을 맡았다. 시모무라 전 대신을 20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시모무라 하쿠분 전 대신은 "새로운 사회에서는 사고력과 판단력, 의사소통능력 등 인간적인 능력이 중요하다"면서 "이것을 키우는 교육의 상징으로서 국제 바칼로레아가 있다"고 강조했다.
"IB 방식으로 교육을 혁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뿐만이 아니라 미래 세계에서까지 살아갈 수 있는 인재를 키우려면 교육을 바꿔야 합니다."시모무라 전 대신은 "시험 공정성에만 몰두해 IB와 같은 논술형 교육을 모두 부인하면 큰 손실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과목 논서술형 평가방식은 객관식 문제처럼 기계적으로 채점 결과가 점수로 나오지 않으므로 평가에서 있어서 불공정하다는 의견이 있다"면서 "그러나 논문이나 논술형 문제로 평가받는 능력이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데 중요하므로 채점 공정성만 너무 걱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미 영국의 대입시험인 에이레벨, 프랑스의 대입시험인 바칼로레아, 독일의 대입시험인 아비투어는 IB처럼 전과목 논서술형 시험이지만 수십년간 채점의 공정성 문제 없이 대입시험의 역할을 무리 없이 해왔다. 한국도 이와 같은 채점방식을 참고하면 된다. - 기자 말) 시모무라 전 대신은 "좋은 내용이 교육 정책에 들어있으면 국민의 공감을 얻을 것"이라며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정책의 내용을 중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반대가 있어도 국민들을 설득하고 공감대를 확산하면서 어떻게든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교육정책 개혁은 비판 받기 마련이지만 국민도 기업도 개혁 원할 것"시모무라 전 대신은 "한국에서 국제 바칼로레아를 도입한다면 정부에서 무리하게 강요하기보다는 이 교육과정에 의욕을 갖는 학교에서 먼저 도입해 보도록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가의 역할이란, 학교가 국제 바칼로레아를 쉽게 도입하도록 그 기반을 정비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도입 여부는 각 학교가 판단하면 됩니다."시모무라 전 대신은 "국제 바칼로레아 도입에 필요한 경비는 국가가 기반을 마련하는 지원을 하고 운영 경비는 각 지자체가 부담한다"면서 "일본에서 IB 교육과정을 도입하는 학교가 증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민간에서 그 필요성을 실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모무라 전 대신은 한국의 교육혁신에 관해서도 조언을 했다.
"한국에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방안을 내놓아도) 교육 정책의 개혁은 반드시 비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국민도 기업도 교육의 개혁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교육은 한사람 한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교육 정책을 뒤흔들지 않는 선에서 어떤 정책이 아이들을 위하는 것인지 고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대변화 외면한 객관식 고집 땐 세계의 낙오자 전락"시모무라 전 대신은 기존 일본의 수능시험에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험평가를 혁신하게 된 동기가 여기에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하나는 고대 중국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과거 제도입니다. 이 제도가 지금도 일본의 대학 입시에 짙게 남아 있어 암기 위주의 객관식 시험이 출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는 가운데, 그러한 방식은 낡은 방식이 되었습니다. 기존 방식을 고집한다면 일본도 한국도 세계에서 낙오자가 될 것이라고 염려하는 목소리가 큽니다."그는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 객관식 시험은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새로운 사회(Society5.0)를 맞아, 개개인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변화하고 있어 기존의 평가방식은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시모무라 전 대신은 "수렵 사회(Society 1.0), 농경 사회(Society 2.0), 공업 사회(Society 3.0), 정보 사회(Society 4.0)에 이어 새로운 사회가 왔다"면서 "사물 인터넷(IoT)의 발달로 사람과 물건이 연결되어, 인공지능(AI)과 로봇, 자동 주행 차를 활용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중시한 지식이나 업무가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워주는 교육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게 시모무라 하쿠분 전 대신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