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대회를 개최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함께 했다. 세 차례에 걸친 도전 끝에 얻어낸 평창 올림픽 개최 기회를 통해 대한민국은 30여 년 전 올림픽을 개최할 때보다 훨씬 발전되고 개선된 국격을 국내외에 보여주고자 했다.
그 소망은 분명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제한된 예산으로도 화제성과 기술력 모두에서 찬사를 받은 훌륭한 개회식을 보여주었고,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빙질에서 알 수 있듯이 대회 환경에 대한 준비 역시 훌륭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기대만큼이나 실망을 안겨둔 점들도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정적인 사건들이 모두 '사람'에서 시작된 것이기에, 이들을 되돌아보면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다 준 평창의 모습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단일팀'부터 '박영선'까지
올림픽 시작 이전부터 뜨거운 감자로 부각된 사건은 누가 뭐래도 '남북 단일팀' 이슈일 것이다. 과거 탁구팀에서 남북 단일팀을 결성했던 것을 본보기로, 여성 아이스하키팀에서 남북 단일팀 '코리아'를 결성하는 방안이 추진되었다. 새 정권의 출범과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 시작을 계기로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런데 이를 둘러싸고 정부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강력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우리 선수들이 따낸 출전권에 왜 북한 선수들을 합치느냐'라는 항변이었다. 대회 개최가 채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북한팀 선수들을 기존팀에 합류시킴으로써 경기력 저하는 물론이고 애써 출전권을 따낸 우리 선수들이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느냐는 주장들이 나왔다.
그런데 이를 대하는 정부, 혹은 기성세대의 반응은 20대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너무나도 의외였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남북 단일팀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메달권에 있는 팀도 아니"라고 반응했다. 한 두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목표이기에 단일팀을 만드는 것이 문제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다른 담당자들의 입장 역시 큰 차이가 없었다.
2030의 지지율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본래 문재인 정부 지지층 중 핵심으로 여겨지던 것이 2030세대였으나, 단일팀 이슈에서는 50%를 훌쩍 웃도는 반대 입장을 보여주었다. 정부와 현 정부를 지지하는 기성세대는 당혹감을 드러내었다.
유시민 작가가 <썰전>에서 진단했듯, 2030세대의 단일팀을 향한 '분노'는 '사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에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살아온 어른들에게는 '국가'적 과제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 '민족'의 평화로 하루빨리 다가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러한 거대담론이 지지를 받기 힘들어지는 시대가 왔다. '전체'를 위해서 '개인'이 희생당해야 하는 상황이 공정한 것인지에 대해 시민들은 물음표를 던졌고, 가장 순수해야 할 스포츠의 영역에 앞선 상의도 없이 윗선의 의지에 따라 정치 논리가 갑자기 끼어드는 것에도 거부감을 느꼈다.
남북 단일팀 이슈는 이후 벌어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경기장 방문을 둘러싼 논란과도 통하는 측면이 있다. 윤성빈 선수가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무대에서 스켈레톤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룬 날, 박영선 의원은 경기장을 찾아 함께 화면에 얼굴을 비추었다. 그런데 해당 장소는 사전 허락 없이는 들어갈 수 없었음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에 한 선수의 성공을 홍보의 기회로 이용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거센 비판이 박영선 의원에게 가해졌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정치 권력'이 스포츠에 함부로 개입하거나 모습을 비추려 하는 것 자체에 국민들은 이제 염증을 느끼는 것이다. 그만큼 정치 논리에서 해방된 순수한 올림픽에 대한 갈망이자 기존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의 반영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꼰대'는 가라한편 위의 이슈들과는 다른 측면에서 훨씬 더 큰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인물이 있었다. 바로 대한체육회 회장과 빙상연맹의 '한 임원'이다.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이 자원봉사자를 상대로 '갑질'과 '막말'을 자행했다는 보도가 17일 터져 나왔다.
뒤이어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이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 선수의 경기 당일 일찍부터 선수촌에 방문했고 이 때문에 그녀가 잠을 자는 데에 방해받아 컨디션에 지장이 있었다는 의혹도 보도되었다(이와 관련, 이상화 선수는 19일 강릉 올림픽파크 코리아하우스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제 긴장감을 없애 주려고 방문하신 것 같고, 이른 시각도 아니었고 저는 깨 있었다, 이것을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 빙상연맹 등의 단체는 올림픽을 개최하고 이끌어 나가는 데에 분명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단체이다. 이 단체의 고위 관계자인 두 사람도 많은 수고를 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올림픽이 개최되었을 때, 그곳의 주인공은 그들이 아닌 선수들과 시민들이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국가 행사의 성공을 위해 시간을 내어 준 봉사자들이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직함을 내세워 진짜 주인공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언
론 보도 이후 국민들은 분노했다. 지위만 내세우며 온당치 못한 언행을 펼치는 것, 우리 일상에서 많이 마주해온 부정적 '꼰대'의 모습 자체이기 때문이다.높은 자리의 사람이 조금만 더 타인을 배려하고 겸손해졌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들이 연이어 터져 나온 데서, 아직 우리 사회에 진정한 배려의 정신이나 존중의 마음이 정착하지 못했음을 느끼게 된다.
1등이 아니어도 괜찮아, 중요한 건 '올림픽 정신'
가장 최근에는 스피드스케이팅의 노선영 선수와 김보름 선수를 둘러싸고 전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일이 발생했다. 이미 과거 빙상연맹을 중심으로 파벌 이슈가 크게 불거진 적이 있기에 국민들의 실망감은 더욱 빠르게 반응했다.
김보름 선수의 인터뷰 직후 그녀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기준선인 20만 명을 넘어섰다. 역대 최단기간 기록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무렵에는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해당 청원란에 이름을 올렸다. 김보름 선수와 팀 감독의 인터뷰가 있었지만, 오히려 분노를 더욱 키우고 만 것이다. 노선영 선수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는 결여된 채 면피성 발언과 '눈물' 신파극만 벌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빙상연맹의 파벌, 혹은 선수 차별은 본질적으로 성적 지상주의에 크게 기인하고 있다. 이는 사건 다음날 해명 인터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민들이 듣고 싶었던 것은 왜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납득할만 한 설명과 합당한 사과였다. 그런데 답변이 돌아온 것은 왜 늦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과, 그것에 대한 사과가 중심이었다.
언제나 대형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 언론에서는 '1등에 목매는 사회가 되지 말자'고 외쳐왔다. 그런데 그것을 먼저 인식하고 받아들인 것은 선수나 연맹이 아닌 오히려 국민들이었다. 한국 팀은 이번 올림픽에서 성적 상으로 다른 팀보다 뛰어나지 못했으나, 국민들은 자신의 모든 노력과 재능을 쏟아낸 선수들에게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었고, 경기장을 찾아가 환호해 주었다.
그러나 금메달이 유력한 사람이라도 동료를 무시하는 비신사적 행위를 벌인다면 받아들이지 않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진짜 순수한, 열정적인 '올림픽 정신'에 가까워진 것이다. 여전히 성적에만 매몰되어 선수 간 분열을 초래한 연맹과 다르게 말이다.
평창 올림픽을 통해 우리는 한 세대 동안 더욱 화려해진 대한민국을 국제무대에 자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에게 정신적으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나아가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 되새겨 볼 만한 일들을 겪었다.
이러한 사건들을 그저 한때의 일들로 묻지 않고 다 함께 반성하고 반복되지 않도록 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올림픽 개최가 단순한 순간의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큰 자산이 된 시기로 기억에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올림픽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