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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라면 119에 신고 돼 구급대원들이 출동하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 1980년대 초만 해도 112에 신고 돼 경찰들이 출동을 했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주변, 해안낭떠러지에 사람이 떨어져 죽어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자동차가 아닌 오토바이를 타고 출동을 하던 시대였습니다.

전투경찰로 파출소에 근무 중이던 필자는 오토바이를 타고 출동하는 경찰관을 따라 신고가 접수된 현장으로 출동을 하였습니다. 멀찍이서 봐도 낭떠러지아래 바닷가바위에 누군가가 떨어져 있는 게 보였습니다. 발걸음 더듬거리며 다가가니 부러진 팔뚝 뼈가 살 거죽을 찢고 밖으로 툭 튀어나와 있는 게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순간 욱하며 헛구역질이 났습니다.

목숨이 끊어진 지 꽤나 됐는지 주변에 떨어져 있는 피들은 이미 새까맣게 굳어 있었습니다. 경찰관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며, 주검을 편평한 곳으로 옮겨 반듯하게 눕혔습니다. 깨지고, 부러지고, 찢어지고, 터지고. 두 눈을 뜨고는 도저히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수습을 해 놔야 한다고 해 경찰관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신을 어느 정도 수습해 놓으니 경찰관이 가까이 있는 횟집으로 되려갔습니다. 횟집에서 된장 한 숟가락을 얻어주며 그 된장으로 손을 씻으라고 했습니다. 막걸리 한 병을 사오더니 그 막걸리로 다시 손을 씻으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주검을 만치고 나면 그런 방법으로 손 소독을 했습니다. 그리고 술을 사줬습니다. 실컷 마시고 한숨 푹 자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 어디에서도 그렇게 드러난 뼈를 본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내 몸 속에 있는 뼈도 그렇게 실감나게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보지 못하니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내 몸의 구조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게 대부분 아닐까 생각됩니다.

500년 전, 직접 해부하며 그린 <사람 몸의 구조>

 <사람 몸의 구조> / 지은이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 해설 엄창섭 / 펴낸곳 그림씨 / 2018년 1월 30일 / 값 11,900원
<사람 몸의 구조> / 지은이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 해설 엄창섭 / 펴낸곳 그림씨 / 2018년 1월 30일 / 값 11,900원 ⓒ 그림씨
<사람 몸의 구조>(지은이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해설 엄창섭, 펴낸곳 그림씨)는 500여 년 전, 대학교수이자 의사였던 저자,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해부학자로 손꼽히는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1514~1564)가 사람의 몸을 직접 해부하면서 그림으로 그려 출판한 해부도입니다.

베살리우스 이전, 기원전에도 해부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2세기 중반, 로마법에서 사람 해부를 금지하면서 사람 대신 동물을 해부하게 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다빈치가 인체비례도를 남긴 때는 이로로터 많은 세월이 흐른 12세기에 들어서입니다.

벨기에 브뤼셀의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베살리우스는 23살에 해부학 및 외과학를 가르치는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인체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장 빠르게 습득하는 방법은 시신을 직접 해부하는 것'임을 알고 있던 베살리우스는 해부학에 관한한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 만 못하다)을 실천으로 보였습니다.

"23세의 젊은 나이에 파도바대학에서 해부학 및 외과학 교수가 되면서 베살리우스는 해부학 교육 방식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당시 교수는 해부를 하지 않는다는 관례를 깨고 조수 대신 직접 사람의 시신을 해부하면서 가르쳤는데, 이는 많은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그는 일반 대중에게도 해부 시법을 보이면서 강의를 하였다. 이렇게 직접 해부를 한 이유는 사람의 구조는 갈레노스의 교고서가 아닌 '인간의 몸이라는 교과서'로부터 직접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 <사람 몸의 구조> 9쪽


베살리우스는 사람의 몸을 직접 낱낱이 해부해가며 살펴 그렸습니다. 그려진 해부도는 다시 살피어 수정하며 눈에 보이는 뼈와 관절은 물론 고도로 전문적인 지식,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를 아우르며 더듬어야만 그릴 수 있는 신경계통과 배안의 장기, 뇌까지를 그렸습니다.

사진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입체적 섬세함

광전자(photo)로 그려지는 사진은 눈에 보이는 것만 찍히게 됩니다. 찍는 사람이  미처 보지 못했다 해도 빛만 비추면 저절로 찍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손으로 그리는 그림은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그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그릴 수 있습니다.

베살리우스가 그린 한 장 한 장의 해부도는 광전자의 미세함을 초월하는 섬세함입니다. 뼈대를 그린 그림은 인체의 골격을 이루고 있고, 곳곳 근육을 그린 그림은 살아 움직이듯 울퉁불퉁 꿈틀댑니다. 신경계의 흐름을 그린 그림은 그동안 모르고 지내던 신경들이 저릿저릿하게 반응하고, 혈액의 흐름을 그린 그림은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는 심박동으로 느껴집니다. 
 
살 거죽을 뚫고 삐져나온 뼛조각만을 보고도 헛구역질을 해대던 필자가, 이 책이 나오기까지를 상상해보는 과정은 어떤 끔찍함도 넘어서는 지극한 연구로 맺어낸 위대하고 위대한 성과물입니다.

학구열이 아무리 대단해도 그림을 그리는 솜씨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이토록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한 해부도는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500년 전쯤, 베살리우스가 그린 해부도를 통해 살펴보는 <사람의 몸의 구조>는 내 몸임에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내던 내 몸을 좀 더 섬세하게 살피며 제대로 알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사람 몸의 구조> / 지은이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 해설 엄창섭 / 펴낸곳 그림씨 / 2018년 1월 30일 / 값 11,900원



사람 몸의 구조 - 베살리우스 해부도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지음, 엄창섭 해설, 그림씨(2018)


#사람 몸의 구조#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엄창섭#그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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