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육아휴직 두 달차에 접어든 육아 대디입니다. 아직은 육아휴직 경력이 짧아 저만의 육아 철학이나 남다른 육아 노하우랄 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조금 우습지만 저는 스스로를 '특별한' 육아대디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육아휴직을 보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아빠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육아 휴직 중인 남성을 평범하게 바라보지 않습니다. 사례가 드물기 때문인지, 간간히 육아휴직을 신청한 남성이 얼마나 늘었는지에 대한 통계와 함께 육아대디의 일상이 생활일기 형식의 기사로 실리기도 합니다. 아직 직장 내에서는 남성 육아휴직자에 대한 삐딱한 시선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제 주변에도 인사 불이익을 당할까봐 회사에 말하지 못하고, 육아휴직을 속으로만 삼켰던 지인이 상당수 있으니까요.
저는 2018년 1월, 2월 두 달간 육아휴직을 쓰게 됐고, 곧 다가오는 3월에는 다시 회사에 복직할 예정입니다. 회사에 복직하기 전, 어떤 형식으로든 육아휴직 동안 느낀 바를 글로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자라 아빠의 글을 이해할 수 있게 될 딸을 위해 젊은 시절 아빠가 너를 키우며 무척 행복했었다고, 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는 것을 기록해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육아에 전념했던 짧은 시간은, 딸아이와의 추억을 쌓는 것 이외에도, 인생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육아와 관련된 우리 사회의 불합리한 시선과 문화, 현실적이지 못한 제도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하루에 한 편씩, 총 여섯 편의 연재 글을 통해 독자 분들과 저의 고민을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산후조리원, 왜 한국에만 있을까?
응애. 유리창 너머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간호사가 예쁜 공주랍니다. 재작년 5월 제 딸 윤별이가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윤별이를 한동안 집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윤별이는 태어나자마자 3개월간 광주광역시에 있던 저와 떨어져 멀리 강원도 속초에서 길러졌으니까요. 육아 경험이 부족한 아내 혼자서는 도저히 핏덩이 같은 딸아이를 돌보기가 힘들 것 같다고 판단해 속초에 있는 장인, 장모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업무 상 저녁 술자리가 잦아 집에 늦게 들어가는 날이 많았던 저로서는, 현실적으로 아내의 육아에 별 도움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를 곁에서 지켜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지만, 현실적으로 판단했을 때 오히려 육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장인 장모님이라도 계셔 다행이다 싶더군요.
"여보, 나 조리원에는 안 가도 될 거 같아."
"정말, 괜찮겠어…?"출산 후 제 아내는 산후조리원으로 가는 대신, 바로 친정으로 갔습니다. 장모님이 청소, 세탁, 아기 돌보기 등을 대신 해줄 수 있어 산후조리원보다 더욱 마음 편하게 회복에 집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당시 산후조리원을 이용하는 게 좋을지 아내와 의논하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사실 산후조리원에 대한 시각은 조금 갈리는 편입니다. 산후조리원을 필수라고 보는 시각은 산후조리원의 장점을 내세웁니다. 산후조리원에서는 산모가 식사나 육아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고, 감염 예방, 모유 수유, 마사지 교육도 받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같은 또래의 산모들과 정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며 친구도 사귀고,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산후에 필요한 노동을 도저히 산모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기능을 가진 산후조리원은 요즘 시대에 필수라고 보는 것이죠.
한편, 산후조리원을 출산 후 휴식을 원하는 산모들의 심리와 소비 경쟁을 앞세운 문화적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런 시각에는 산후조리원이 산모가 빠르게 회복할 수 있도록 신생아와 산모를 돌봐야 하나, 가격만 높을 뿐이지 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 모빌 만들기, 베이비 요가, 손발 조형 뜨기 등 대다수의 프로그램들이 산모 본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이들 프로그램은 자체로 운영하기 보단 외부에서 들여온 경우가 많았는데, 프로그램의 목적 상 영업이나 물건을 팔아 수입을 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했죠. 케어 요가나 필라테스 등 산모의 회복을 돕는 프로그램 강사들도, 사실 재활을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이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내와 산후조리원의 장단점에 대해 생각하다가, 본질은 산후조리가 필수이지, 결코 산후조리원이 필수가 아니라는 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가 산후조리원을 선택하지 않고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한 배경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산후조리원은 여전히 필수라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외국에도 산모들이 산후조리를 할 수 있는 비슷한 시설이 있긴 하지만, 유독 산후조리원이 성행하는 나라가 한국뿐이라는 게 좀 의아하기만 합니다. 가족 구성 형태가 대가족이었던 시기에는 산후조리원이 필요 없었습니다. 하지만 핵가족화에 따라 육아를 도와줄 가족과 주거 지역이 달라지기 시작하자 산후조리원이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죠. 출산 후 산모들이 곧바로 직장에 복귀하거나, 여가활동 즐기는 것을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게 되자, 이를 위한 산모의 건강 회복에 더욱 초점이 맞추어지게 됐습니다.
여기서 시사점은 우리 사회가 현재는 산모가 가족들에게 조차 건강 회복이나 육아에 대한 도움을 받기가 힘들게 됐다는 데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근로자의 배우자가 출산을 할 경우 강제로 근로자에게 한 달을 쉬게 하는 나라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런 나라에서도 지금의 한국사회처럼 산후조리원이 성행할 수 있을까요?
아이가 태어난 다음날, 출근을 강요하는 회사
"이야. 아빠된 거 축하한다."올 1월 중순경, 친한 친구로부터 갓 태어난 아이 사진이 한 장 날아왔습니다. 딸이었습니다. 아빠가 된 것을 축하해주려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친구와 함께 밥을 먹는 동안,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실은 전날 저녁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회사에는 오늘 태어난 것으로 거짓말을 했답니다. 회사에서는 직원의 아이가 태어나도,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당일만 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라네요.
"그러면 너 언제 출근하는데?"
"나 내일 일 나가야 해."태어난 아이를 두고, 내일 바로 출근해야 한다는 친구가 너무나 안쓰러웠습니다. 제 친구는 딸이 태어난 시간을 회사에 늦게 알렸기 때문에, 오늘이라도 편하게 쉰다며 스스로 애써 위로했습니다. 친구가 출산휴가를 신청했는데 거부당한 건지, 아니면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알게 된 회사의 문화에 순응하기 위해 애초에 휴가를 신청하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도 무의미합니다. 전 결국, 하루밖에 쉬지 못해 괴로워하는 친구에게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8조2항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배우자의 출산을 이유로 휴가를 청구하는 경우에 3일의 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단, 배우자가 출산한 날로부터 30일이 지나면 휴가를 청구할 수 없습니다. 추측컨대, 제 친구가 다니는 회사의 사업주는 법령을 알면서도 이를 지키지 않고 있을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근로자의 배우자가 자녀를 출산했는데, 고작 하루만 쉬게 한다니요? 이런 문화의 회사에서, 딸이 태어난 날 고작 하루를 쉰 제 친구는 법적으로 한 달 내에 나머지 출산 휴가를 편하게 신청할 수 있을까요?
집에 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둘러본 후, 근로자의 출산휴가에 박한 중소기업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습니다. 제 친구는 전남의 자그마한 중소기업을 다니고 있습니다. 늦은 나이에 입사해서인지 남들보다 회사에 애정이 컸던 제 친구는 아이가 태어난 날 하루치의 휴가를 받고는, 회사에 대한 모든 자부심이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제 친구는 아마,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 회사에 다니는 동안, 갓난아이를 키우는 아내에게는 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친구 부부가, 혹은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 부부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요? 제 아내와는 달리, 남편이나 가족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던 제 친구의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출산 후 산후조리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