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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통령은 "83년도에 내가 버마에서 그 일을 당하고 왔을 때 군에서는 전쟁계획을 수립해서…계획이야 다 되어 있었지만, 이거는 전쟁이다.…그래서 내가 군지휘관들을 불러 가지고 전방을 전부 순시했어요 나에 대한 충성심은 고맙다. 그런데 전쟁을 해야 할 시기를 누가 더 잘 알겠느냐? 여러분들보다는 내가 더 잘 알 것 아니냐. 내가 명령할 때 해라. …그만큼 군대라는 것은 과격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그래서 또 군대하는 거지…"라며… (박철언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176쪽)

1983년 10월 9일 북이 버마 아웅산 묘역에서 자행한 테러에서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건졌던 전두환은 2년 뒤인 1985년 9월 5일, 김일성이 특사로 보낸 대남비서 허담을 비밀리에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은 무력 보복 계획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당하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반발에 그는 직접 전방 부대를 찾아다니며 지휘관들을 설득 내지 위협했다고 한다. '내 명령 없이 한 사람이라도 움직였다간 반역으로 간주하겠다.' …사실상 무력 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대내외에 밝힌 것이다." (함규진, 1910~2010년 가상역사 '만약에' : 아웅산 테러가 '성공'했다면, 한겨레21, 2010. 5. 6)

전두환, '아웅산 테러' 보복 중단 지시... 2년 뒤에 정상회담 추진도

전두환은 김일성의 인사를 전하는 허담에게 이런 말도 했다.

"주석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경청해보니 내용 하나 하나가 내 생각과 거의 동일합니다. 김 주석께서는 공개적으로 말씀이 계셨지만 40년 전에는 민족해방 투쟁으로, 그리고 평생을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애써오신 충정이 넘치는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종북성'이 워낙 강해, 도대체 왜 이런 말까지 했을까 싶지만, 아무튼 이런 말을 했다.

군인 출신인 전두환은 왜, 자신을 죽이려 했고 자신의 부하들을 떼죽음시킨 김일성에게 보복하지 않는 것은 물론,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특사에게 이런 '황당한 덕담'까지 했을까. 그가 타고난 '대인배'여서였을까.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집권한 군사 정권의 정당성과 정통성 확보를 위해서는, 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성공시켜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조용히 있어줘야 했기 때문이다.

MB, 천안함 사건 3개월 뒤 남북 비밀 접촉 시작... 정상회담 추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일행 방남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통일선전부장)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천해성 통일부 차관의 안내를 받으며 25일 오전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입경하고 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일행 방남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통일선전부장)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천해성 통일부 차관의 안내를 받으며 25일 오전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입경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대통령은 어땠을까. 2010년 3월에 천안함 사건이 터진 지 3개월 뒤, 5.24조치 2개월 뒤인 6월 북측에서 모종의 메시지가 오자, MB는 다음 달인 7월 국정원 고위급 인사를 북에 보냈다.

4개월 뒤인 11월 북측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한 뒤에도 정상회담을 위한 남북간 접촉은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남측이 제발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을 만들자고 했으며,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 '돈봉투'를 주려는 것을 거절했다"는 등의 북측 '폭로'를 둘러싸고 진실게임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진위와는 별도로 하여튼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또 어떤가. 2014년 10월 15일 김영철 당시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을 군사회담 북측대표로 인정하고 그를 만나 회담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당시 직책인 정찰총국장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였다.

박근혜 정부는 교체를 요구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했다. 사병수에 비해 장성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북한 군에 군사회담에 나설 장성이 그 뿐이었을까. 당시 새누리당은 대변인 명의로 군사회담 환영논평까지 냈다.

당시 남북군사회담은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가운데, 서해상에서 함정간 교전 사태(10월 7일)까지 벌어졌기 때문에 만들어진 자리였다.

사흘 전인 10월 4일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북한군 1인자인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룡해 비서 등 등 최고위급 3인방 방문을 수용했는데, 김영철을 거부하기는 어렵기도 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자신은 이미, 야당 의원 시절에 방북해 김정일을 만났고, 김정일로부터 1968년에 박정희를 죽이기 위한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했던 '1.21'사건에 대한 사과를 받기도 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자유한국당이 지금 청와대 주인으로서, 미국이 계속 북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언급하고 북도 이에 정면으로 맞서는 상황에서 이명박이 유치한 평창 동계올림픽을 평화적으로 성공시켜야 하는 입장이었다면,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남을 거부했을까.

<조선> 2014년 10월 사설... '천안함 도발 주역' 내보낸 북과 대화해야 하는 현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 김무성 의원 등이 26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북한 김영철 방남 규탄대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 김무성 의원 등이 26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북한 김영철 방남 규탄대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남소연

미래를 예측하기도, 가정에 대해 답하기도 어렵지만, 우리는 과거를 통해 그 실마리는 짚어 볼 수 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됐을 경우, 자유한국당이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글을 하나 소개한다.

"김(영철)은 우리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폭침(爆沈) 도발의 주역이다. 우리 입장에서 그는 전범(戰犯)이다. 그런 인물까지 상대해야 하는 것이 남북 회담의 어려움이고 현실이다.…이런 북한과 마주 앉아 대화하고 합의를 일궈내는 것은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북한과의 대화를 피할 이유도 없다. 긴 호흡으로 남북 대화를 이어 갈 원칙과 분명한 방향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천안함 도발 주역' 내보낸 북과 대화해야 하는 현실'>이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2014년 10월 16일자 사설이다.


#김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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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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