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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17년차, 엄마경력 8년차. 워킹맘 K에게 쓰는 편지는 아이와 일을 사랑하며,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완생을 꿈꾸는 미생 워킹맘의 이야기를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내려 합니다. [편집자말]
 출근길과 퇴근길의 반복, 일상이 열정이다
출근길과 퇴근길의 반복, 일상이 열정이다 ⓒ ⓒ loretask, 출처 Pixabay

K, 선뜻 봄이 다가와버렸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도 끝나가는데 일상을 이어가는 출근은 오늘도 계속이지. 가끔, 언제까지 이렇게 깜깜한 새벽에 출근을 해야 하나 싶었는데, 해가 길어졌는지 부쩍 날이 밝아오네.

오늘은 워킹맘의 일하는 자세에 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해. 사실, 이 주제를 고민하면서 좀 조심스럽더라. 나 또한 지금도 계속 흔들리고 있는 중이라, 이 주제를 생각하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어.

하루하루를 버티는 워킹맘에게 일하는 태도를 좀 열정적으로 하라거나,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라는 말은 독이지 싶어. 어떻게 일해야 정답인 걸까, 어떻게 살아야 옳은 걸까, 끊임없이 고민해도 답이 없는 게 일하는 태도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태도에 관해서 써야겠다고 결심을 한 건, 주말 낮에 있었던 일 때문이었어. 마트에서 쌀 20kg를 배달 주문했지. 배달 시간이 다 되어 현관 밖에 인기척이 나길래 문을 열었어. 배달원에게 '저희 집 것이죠?' 물었더니 대답이 없더라. 돌아오는 건 웃음기 없는 얼굴에 한숨뿐이었어.

내가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했지. 그런데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물건을 현관 밖에 내동댕이치듯 놓고 가더라고. 쌀 20kg을 집안으로 질질 끌며 생각했지. 혹시 나의 모습도 그와 같지 않을까? 억지로 버티며 마지못해 일하고 있는 모습 말이야.

열정에 관하여

직장인으로 살면서 나는 일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아. 돈 이외에도 나의 성장, 나의 경력, 사회에서의 지위, 특히 나의 열정에 많은 의미를 부여 했지.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서는 '열정'이란 단어 앞에서 죄책감을 갖게 되더라.

'열정적으로 일한다'라는 이미지는 퇴근시간에 상관없이 일하고, 시키지 않아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잖아.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서는 퇴근시간에 예민해지고, 시키는 일이라도 얼른 끝냈으면 하게 되더라고. 왜냐하면 또 퇴근 후에 또 다른 일을 해야 하니까.

단순히 집안일을 지칭하는 게 아니야. 일단 머리에 '아이'라는 단어가 박히면 회사 일에 대한 중요도는 떨어지더라고. 이게 바로 죄책감인 거지.

그래서 복직하고 나서 참 많이 아팠어. 몸이 힘든 건 둘째치고 마음이 아팠지. 지금 생각해보면 인정할 수 없었던 것 같아. 내가 일에 열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일인데, 몰입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했어.

자존심 강한 내가 퇴근시간마다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도 적응할 수가 없었지. 현실에 분노하고, 그러다가 죄책감으로 이어지고,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던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꼭 일을 열정적으로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일은 그냥 일로서 냉정하게 바라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꼭 일을 열정적으로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일은 그냥 일로서 냉정하게 바라보면 어떨까? ⓒ 한화 광고 캡처

시간이 흐르고 워킹맘 생활에 익숙해질 때쯤, 내 조직생활을 다시 객관적으로 보게 되더라. 사실, 열정이 야근의 또 다른 말은 아닌데, 나는 너무 일하는 시간에 집착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꼭 일을 열정적으로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일은 그냥 일로서 냉정하게 바라보면 어떨까?

만화 <미생>의 유명한 대사가 있지.

"일 하나 하면서 무슨 일씩이나 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을까..."

열정과 죄책감이라는 감정의 기복 안에서 나는 '일씩이나' 하려고 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일이라는 것은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돼. 열정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더라고. 그렇게 되면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지. 과거의 나를 바라보며 일을 일만으로 바라보아도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가끔 들어.

흔히들 워킹맘의 생활에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해. 그런데 그 선택과 집중이라는 것도 내가 통제 가능한 영역에서만 해당되는 것이지. 엄마가 되면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과 의무, 직장인으로 살면서 일해야 할 책임과 의무 앞에서 워킹맘이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은 많지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스스로 만들고 찾아야 해.

일을 빨리 끝낼 수 있는 방법,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지. 그 선택 안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나는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하겠어'라는 것이야. 사실 그런 말 하는 사람치고 회사 생활 18년동안 월급 받은 만큼 일을 몰입감 있게 해내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

사람의 기본 심리는 손해보기 싫어해.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하겠다는 것은 내가 절대로 손해 보며 일하지 않겠다는 심리이지. 즉, 늘 월급 받은 것보다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해. 그래서 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거지.

하지만 일이라는 것이 돈으로만 환산되는 것은 아니잖아. 프로젝트를 하면서 경력도 쌓고, 이력도 남고, 회사에서 알게 된 인맥, 성취감, 감동, 이런 것들은 돈으로 쉽게 환산 할 수 없는 것들이잖아. 돈이 가장 큰 의미이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야.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가끔 생각해. 내가 만약 워킹맘으로 살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을까? 아마 조금 더 독하게 워커홀릭으로 살았을지도 몰라. 그래서 난 행복했을까? 글쎄, 쉽게 대답할 수 없겠더라고. 난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하는 지금이 더할 나위 없이 좋거든. 물론 힘들어. 가끔 행복한 것 같고.

매일 새벽 출근길이 싫고, 새로운 임무가 주어지길 꺼려하고, 야근하게 될까봐 여전히 전전긍긍하지만 새로운 임무도 맡으면 하고, 야근도 필요하면 해. 결국 어느 임계치까지는 회사 일에 몰입해야 하는 순간이 있거든. 그럴때는 과감하게 해.

균형이라는 것은 시간을 칼같이 나눠서 쓰는게 아니야. 24시간을 중 8시간은 일하고, 8시간은 흘려 보내고, 8시간은 잠자고, 이럴 수 없는 거거든. 어느 날은 육아에 조금 더 집중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일에 좀 더 집중하기도 해. 어느 날은 잠을 좀 줄여서 해야할 일들을 하지.

다만, 그 가운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나'야. 나의 행복만을 따진다고 해서 엄마와 직장인의 역할을 버리는 것은 아니잖아? 그렇게 한 달, 1년을 살고 나서 총량을 따져봤을 때 그래도 잘해냈다 싶으면 된다고 봐.

앞에서 그 배달원 이야기했지?  억지로 일하고 있는 모습이 나와 같지 않을까, 고민했었잖아. 나도 어쩌면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을 거야. 그 누구에게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일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야. 어쨌든 일은 계속 해왔지. 그렇다면 그 순간에 조금 더 즐겁게 할 수는 없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아이 때문에 일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마인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좋지 않아. 그건 핑계거든. 핑계를 대면 답이 없어.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답이 나오도록 질문을 바꿔야 해.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질문을 하고, 답은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어. 답은 각자 다를 거야. 쉴 수도 있고, 몰입할 수도 있고, 다른 대안도 있겠지.

K, 일이 힘들어서 도저히 힘을 낼 수 없다면 이렇게 질문해보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 답은 구할 수 있어. 화이팅!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을 담아내다>(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렸습니다.



#워킹맘#에세이#편지#워킹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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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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