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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26일 안희정 충남지사가 충남인권조례 폐지조례안에 대한 재의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월 26일 안희정 충남지사가 충남인권조례 폐지조례안에 대한 재의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 이재환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난 2월 26일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에 재의를 요구했다. 안 지사는 재의를 요구하면서 "인권 도정은 민주주의자로서 저의 소신이며 신념"이라며 "그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인권조례를 지켜내겠다"고 선언했다.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은 도의회 다수당인 자유한국당이 충남도민 인권선언 중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 조항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폐지안을 발의했고, 지역 개신교계가 이들에게 맞장구 치면서 관철됐었다.

이러자 자연스럽게 관심은 안 지사가 폐지안의 재의를 요구할 것인가로 쏠렸다. 현행 법상 자치단체의 장은 재의요구권을 갖고 있다. 재의요구권이란 지방의회의 의결사항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거부권을 말한다. 중앙 정치에서 의회가 의결한 법률안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안 지사는 재의를 요구하기 전인 지난 19일 자신의 SNS에 "도지사로서 재의 요구를 결정하기 전까지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겠다"며 다소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적어 재의 요구에 나설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주장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도 인권은 차별받을 수 없다.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주장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도 인권은 차별받을 수 없다. 충남인권조례는 모든 차별에 반대하고 민주주의 사회의 최고·최선의 가치인 인권 증진을 위해 도정 업무가 나아갈 바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안 지사는 재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거듭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도 헌법으로 보호받고 있다. 차별과 배제를 목적으로 발의된 폐지조례안은 헌법과 국내법, 국제인권법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인권은 정치가 실현해야 할 궁극의 목표 

안 지사의 재의 요구를 진심으로 환영한다.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인권증진이다. 중앙·지방 할 것 없이 모든 정치행위는 인권의 존엄성과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라야 한다는 의미다. 안 지사도 "지방정부는 주민 삶과 가장 가까이 있는 국가의 일부로, 지방정부가 인권행정을 외면한다면 많은 도민들이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게 된다"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이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을 발의하고, 일사천리로 관철시킨 건 6월 지방선거를 노린 포석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즉 인권조례를 쟁점화시켜 보수 진영, 특히 인권조례에 민감한 보수 개신교 진영의 표를 얻으려는 심산이라는 말이다.

정당이 선거를 앞두고 특정 쟁점을 부각시키는 행위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특정 세력을 겨냥해 인권을 정치 쟁점으로 끌어들인 건 부적절했다고 밖엔 달리 할 말이 없다.

이 지점에서 보수 개신교 세력에게 쓴소리 한 마디 남기고 싶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아우르는 그리스도교의 기본 정신은 생명 존중이다. 이 같은 정신은 인권 사상에도 영향을 미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보수 개신교 세력은 '인권'이라는 말만 나오면 이를 곧장 '동성애'로 연결시켜 극력 반대한다.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동성애자 인권은 가짜 인권'이라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으며 정부나 정치권을 향해 집단행동을 일삼아 왔다.

이들의 활동역량은 실로 가공할만한 수준이다. 관련 정부부처나 국회의원에게 항의전화와 '문자폭탄'을 보내는가 하면, 보수 개신교의 주장을 검증하거나 성소수자에 연대를 표시하는 언론 보도에 대해선 악성 댓글로 공격한다. 반동성애 진영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어느 목회자는 2018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현장으로 달려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이들을 쉽게 무시할 수 없다. 바로 표 결집력 때문이다. 담임 목회자가 특정 후보에 지지를 보내면 몰표가 쏟아지곤 한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로선 간단히 지나칠 일이 아니다.

종교세력 표 결집력에 저자세 보이지 말아야 

그러나 근본적으로 성소수자를 겨냥한 차별과 배제는 그리스도교 정신에 어긋난다. 만에 하나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워 성소수자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한다면 얼른 그 사람의 신앙관부터 따져 볼 일이다. 더구나 일그러진 신앙관으로 뭉친 종교집단이 표 결집력을 무기로 중앙 혹은 지방정부의 정책에 개입하곤 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정신을 왜곡하는 심각한 행위다. 

정치 지망생들도 종교단체에 기대 몰표를 얻으려는 얄팍한 시도에서 벗어나야 할 일이다. 차별과 배제를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집단행동을 일삼는 종교 집단의 표를 얻어 당선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과연 이렇게 당선된 정치인이 지역 주민들의 인권과 복지 증진을 위해 발 벗고 나설 수 있을까?

안 지사가 재의를 요구한 만큼, 인권조례 폐지에 찬성표를 던진 도의회 의원들은 자신들의 결정을 되돌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이 바람이 실현될 것 같지는 않다. 폐지안에 찬성표를 던진 김용필 바른미래당 도의원이 2월 28일 기자회견을 갖고 "인권조례 폐지안 재의 요구는 충남도민을 대변하는 도의회의 의사결정을 무시한 독선적이고 오만한 권력 남용에 다름아니다"고 규탄했으니 말이다.

더 긴 말이 필요 없겠다. 충남지역 유권자들이 인권을 정쟁거리로 전락시킨 도의원들을 심판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선동하는 종교인이 있다면 멀리하기 바란다. 이들은 가짜 뉴스로 이웃을 비방하는 무리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정치인들에게도 경고한다. 특정 세력의 표를 구걸하기 위해 저자세를 보이지 말았으면 한다. 보수 개신교 혐오세력이 바로 이 점을 노린다는 걸 명심하라.

다행히 건전한 상식이 거짓 선전을 이기고 있다. 아산시의회가 2월 28일 제200회 임시회 2차 본회의에서 '아산시 인권 기본조례 주민폐지 청구 조례안'을 부결시킨 것이다. 폐지안에 반대하는 시의원들은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옹호·조장한다는 주장은 근거도 없고 논리적이지도 않다"며 "일부 기독교 단체가 헌법의 본질에 속하는 인권을 부정하고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디 다가올 지방선거 선거에서 시민들이 건전한 상식에 따라 올바른 정치인을 선택하고, 정치인들 역시 시민들의 건전한 상식에 기대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이런 의미에서 상식에 호소한 안 지사의 인권조례 폐지안 재의 요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시 한 번 안 지사의 조치에 환영의 뜻을 밝힌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충남인권조례#성소수자 #보수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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