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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아니신 거 같은데…."

육아휴직을 쓰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만난 경비 어르신께서 제게 한 말입니다. 저를 주로 낮에 자주 보게 된다는 말에서,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 하시는 게 역력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제가 육아휴직 중이라고 하자, 웃으면서 세상이 바뀌긴 바뀐 거 같다고 하시더군요.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만나는 이웃집 할머니나 어린이집 선생님 등 주변 사람들 대다수가 제가 육아휴직 중이라고 하면 처음에는 의아한 반응을 보입니다. 언론을 통해 육아대디에 대한 소식을 몇 번 접하긴 했지만, 실제 가까이에서 접한 사례가 없었나 봅니다. 저는 그분들의 의아한 시선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이내 저를 부러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전남 모 지역에서 농업연구사로 일하는 공무원 친구는 저보다 1년 일찍 육아휴직을 신청한 케이스입니다. 저보다 딱 1년 앞서 딸을 낳은 친구는 육아휴직을 신청하려는데, 상사가 승진에 불리할 수 있다며 대놓고 만류한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놓더군요.

제 친구는 고민 끝에 1년 4개월 동안 육아휴직을 썼습니다.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처럼 여러 계단으로 나누어져 있는 일반 회사와 달리, 연구직 공무원은 올라갈 직급이 많지 않답니다. 그래서 상사의 만류에도 용기를 내서 육아휴직을 신청했다더군요. 매일 딸과 함께 있는 사진으로 메신저의 프로필 사진을 바꾸던 그 친구가, 저 역시 그 당시에는 너무도 부러웠습니다.

육아휴직 공무원 중 남성 비율이 5년간 2배나 늘고, 쉰 살이 넘은 팀장급 남성 공무원이 육아휴직을 냈다는 내용의 기사가 저는 너무도 반갑습니다. 하지만, 제 주변 사람들을 통해 느끼는 한국 사회는, 제도가 잘 자리 잡힌 공무원들조차 육아휴직을 쓰기 힘든 사회가 분명합니다. 농업연구사인 제 친구는 육아휴직 소식이 알려진 후, 회식 자리에서 성차별적인 욕설을 듣고도 가만히 참아야 했습니다. 남성 육아휴직이 아직 보편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육아대디에 대한 통계나 사례들이 기사화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육아휴직을 쓴 저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멋있다. 진짜 용기 있으시네요."
"진짜 좋은 회사에 다니시나 봐요."


육아휴직을 내고 집에서 며칠 쉬는 동안, 거래처 관계자로부터 두세 차례 전화를 받았습니다. 육아휴직 중이라는 말에 전화한 걸 미안해 하시더니, 저를 용감하고, 멋진 남편이라고 좋게 말씀해주시더군요. 제가 다니는 회사가 진짜 좋은 회사인 것 같다고, 제 회사를 좋게 이야기해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저는 광주 금호터미널에 몸담고 있는 6년차 대리입니다. 회사에 다니던 도중, 중요한 분과의 저녁 약속을 앞두고 하필 딸과 와이프가 심하게 아픈 일이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날은 저녁 약속을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종일 고민을 했죠. 그분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마음이 심란했겠다고, 빨리 집에 들어가서 식솔들 잘 챙기라고 오히려 제게 미안해하시더군요. 그때 식솔이란 단어를 듣고, '아, 그래. 내가 가장이었구나. 나한테도 챙겨야할 식솔들이 있었구나'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페이스북의 CEO인 마크 저커버그처럼, 일단 두 달만이라도 먼저 쉬어야겠다 싶어 육아휴직을 신청했습니다.

사장님께서는 잘 쉬고 오라고 저를 격려해주셨고, 회사 동료들에게는 육아휴직 중인 사람이 정말 육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자고도 하셨습니다. 인사팀장님은 혹시나 제가 육아휴직을 썼다는 이유로 승진이나 다른 것에 불이익을 받거나 차별을 당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앞장서서 막아주겠다고 하시더군요. 회사에 있을 당시 팀원들 도움 없이 저와만 함께 담당 업무를 진행했던 팀장님은 업무상 공백이 컸음에도, 육아휴직 동안 편히 쉴 수 있도록 제게 업무적인 일로는 단 한 번도 전화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재직 중인 지금의 회사에서는, 안타깝게도 임직원 수가 많지 않아 남성 직원이 육아휴직을 신청한 사례가 없습니다. 회사에서 육아휴직이 가능한 남성 임직원들에게 몇 번 육아휴직을 먼저 제안했음에도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제가 첫 선례를 남기게 되자 주변 동료들 모두가 저를 격려해주었습니다. 남성 육아휴직자를 늘리려면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단 육아휴직을 바라보는 팀장이나 오너의 의지, 그리고 이를 이해하는 기업 문화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배경입니다.

회사의 동료들 덕분에, 저는 큰 고민 없이 딸아이가 아빠의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에 옆에 있어줄 수 있게 됐습니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동안, 작은 목표도 하나 그리게 됐습니다. 언젠가 제가 일하는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클래식 공연장 금호아트홀에서, 저희 부모님과 제 딸, 그리고 저희 부부, 이렇게 3대가 나란히 앉아 함께 음악회를 감상하는 겁니다. 임직원들 모두가 육아에 관대한 회사의 문화와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해주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이룰 수 있는 목표라 생각합니다.
   

추억 ▲ 아이와 함께 크고 작은 추억을 쌓을 수 있어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추억▲ 아이와 함께 크고 작은 추억을 쌓을 수 있어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 나승완

   
육아휴직 이후 아이와 크고 작은 추억을 쌓으며, 하루하루 행복하고 감사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생긴 몇 가지 소소한 사연들을 바탕으로, 처음에는 복직하기 전 에세이 형식의 글을 쓰려 했습니다만 과거 기사를 찾아보고 마음을 고쳤습니다. 주로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소속된 아빠들을 대상으로 한 기사들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육아휴직을 쓴 이후 아이와 행복해하는 육아대디의 모습'만을 조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다수가 우리 사회에 남성 육아휴직자가 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작성된 기사들이겠죠. 기사에 소개된 육아대디들도 행복해하는 이면엔 걱정거리들을 만만치 않게 쌓아놨을 겁니다. 경제적인 형편, 인사고과상 불이익, 직장 복귀 후 업무 부적응 등에 대한 고민들이 육아휴직을 쓰기 전 분명 발목 잡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제가 작성하려고 했던 '육아휴직을 쓰고 보니 너무나 보람되고 좋더라'라는 육아일상을 소재로 한 기사가, 육아휴직을 도저히 쓸 수 없는 누군가에겐 부러움만을 불러일으키는 무의미한 기사가 되진 않을지 걱정됐습니다. 제 주위에 육아휴직은커녕 아이가 태어난 날 고작 하루의 휴가도 감지덕지 여길 수밖에 없던 제 친구가 있었으니까요.

육아휴직 도중 주위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 속에서 저는 '특별한' 육아대디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시선에는 잠재적인 많은 불이익을 포기하고 육아휴직을 쓸 만큼, 자상하며, 가정적이고, 용감한 아빠라는 편견이 숨어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특별한 육아대디가 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제가 육아휴직에 관대한 문화가 자리 잡힌, 규모도 나름 견실한 회사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아휴직을 쓰지 않아도, 멋진 아빠가 될 수 있는 세상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한다. 지금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중립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면, 그건 나의 현명함 때문이 아니라 나의 안온한 기득권 때문임을'

제가 좋아하는, 서울동부지방법원 문유석 부장판사님의 문장입니다. 비교적 별 고민 없이 육아휴직을 쓴 저의 입장에서, 남성 육아휴직자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나 제도를 이야기한다는 게 조금은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문유석 판사님의 글을 보고, 차라리 내가 속한 환경이 안온한 환경임을 인정하고, 주변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든 알려야겠다 싶어 글을 쓰게 됐습니다. 
 
 ▲ 아이들 또한 아빠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 합니다.
▲ 아이들 또한 아빠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 합니다. ⓒ 나승완

저와 아이를 낳은 제 친구들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모든 아빠들은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육아휴직조차 양극화되고, 모두가 저녁이나 주말을 누릴 수 없는 불평등 속에서 피해자는 온전히 우리 사회의 아이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개인에게만 육아의 책임을 지우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아빠들은 일상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 큰 용기를 내며, 무엇인가를 포기해야만 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제가 육아휴직을 누리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누군가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싶진 않았습니다. 오늘도, 제가 여전히 '평범한' 육아대디를 꿈꾸는 이유입니다.

우리 사회는 언제쯤이면, 육아휴직을 쓴 모든 아빠들을 특별하게가 아니라 평범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그런 사회가 온다면, 굳이 육아휴직을 쓰지 않아도 모두 멋진 아빠가 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회사에서 일이 끝나면 일찍 집에 돌아가 아이와 놀아주는 그런 멋진 아빠 말입니다.

스웨덴에서는 자녀의 양육을 위해 한 자녀 당 무려 480일의 유급 휴가가 제공됩니다. 그리고, 그 휴가 중 90일 이상은 무조건 아빠가 사용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라떼 한 잔 하는 일명 '라떼파파'들은 이런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습니다. 노르웨이에서는 총 49주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데, 이 중 10주는 반드시 아빠가 사용해야 합니다. NGO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세계 179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5년 어머니 보고서'에서 여성과 아동이 살기 가장 좋은 나라 1위를 차지한 것도 이런 법이 있었기 때문이죠.

지난 19대 대선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위 나라의 정책들과 비슷한 '아빠, 엄마 육아휴직 의무할당제'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사회의 제도와 국민 인식 간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좋은 공약, 좋은 정책이 나오더라도, 이를 바라보는 개인의 관점과 인식이 먼저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연장선상에서, '칼퇴근법', '퇴근 후 카톡 금지 법' 등이 제안되더라도, 개인의 열린 자세 없이는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금세 묻혀버리고 말테니까요.
  
연재를 마치며…

육아휴직을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한 아빠들과, 육아휴직을 쓴 이후 직장 내에서 여러 불이익을 감내하고 있는 수많은 아빠들을 응원합니다. 그런 아빠들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육아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더 많은 아빠들이 나의 행복과 가족의 행복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앞에서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개인의 시선과 관점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육아휴직을 쓴 아빠들을 모두가 특별하게가 아닌, 평범하게 대할 때 세상은 조금씩 바뀔 수 있습니다. 회사 내에서의 경력도 중요하지만, 가족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빠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회라면, 아이들과 부모를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더욱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육아대디의 대한민국 들여다보기]
[1편] 저는 대한민국의 '특별한' 육아대디입니다
[2편] 강제 야근과 폭탄 회식이 아내를 울립니다
[3편] 남성 육아휴직도 대기업-중소기업 '양극화'
[4편] 저녁 있는 삶을 위한 '워라벨'… 차별을 푸는 열쇠
[5편] 아이 키운 후 세상이 달라졌어요

덧붙이는 글 | 저희 회사의 수많은 동료와 선후배 분들이 저의 육아휴직을 격려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저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다들 조금씩은 고생하실 거라 생각하면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만큼 나중에 아빠가 될 저희 팀원이, 타 팀의 동료, 후배 분께서 저와 같은 이유로 휴직을 하게 된다면, 바톤을 이어 받아 제가 열심히 그 공백을 채우도록 하겠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저희 회사 동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육아휴직#육아대디#금호#금호터미널#금호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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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감성으로,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꿉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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