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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와 걷기의 진보

 워싱턴 D.C. 출신 맥스
워싱턴 D.C. 출신 맥스 ⓒ 차노휘

"어떻게 하지, 맥스? 기다려야하지 않을까?"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지나온 길은 수풀에 가려 어두웠고 정적만 흘렀다. 먼 산등성이로 희미한 빛이 겨우 새어나왔지만 여전히 어둠을 몰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 말에 앞서 가던 맥스가 멈췄다. 헤드랜턴 불빛이 내 얼굴을 비추다가 어두운 숲길로 향했다. 그 빛을 의지하며 한 시간 동안 정신없이 걸어왔다. 정신없이 걷다보니 출발했을 때는 셋이었던 일행이 지금은 둘이었다. 눈치도 채지 못했다.

알베르게에 들어서면 다들 걷는 힘듦을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럽게 내일 더 뜨거운 날씨를 걱정하며 몇 시에 출발할까를 말한다. 언덕 위에 형성된 토레스 델 리오에 도착해서 알베르게 2층에 여정을 풀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샤워와 빨래를 하고 나오자 그곳에 있던 순례자들이 내일 여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워싱턴 D.C. 출신인 맥스가 내게 몇 시에 출발할 것인지를 묻기에 '되도록 일찍'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물었다. "정확히 몇 시?" "4시 30분이나 5시?" "그럼, 5시에  출발하는 것이 어때?" 라고 그가 물었다.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순례자(오스트리아 출신인데 이름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부담스럽게 친절하며 내게 무슨 가수를 닮았다고 했다)가 그녀도 5시에 출발할 거라고 하면서 불평스러운 애교를 떨었다.

"내일 일요일이야. 집이었으면 늦잠 자고 실컷 잤을 텐데, 오, 마이 갓!"

연석이도 같은 알베르게에 묵었다. 그는 내가 걸어올 때 동네 어귀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혼자 출발하기를 원했다. 

이렇게 셋은 다섯 시에 토레스 델 리고를 떠났다. 뜨거운 햇살 아래 질긴 땡볕 길을 걸었던 고통을 경험한 공통분모가 있었다. 다섯 시, 헤드랜턴이 필요했다. 맥스한테만 있었다. 해가 뜰 때까지는 그한테 의지해야 했다.

 새벽 5시의 토레스 델 리고 골목
새벽 5시의 토레스 델 리고 골목 ⓒ 차노휘

"거기 아무도 없어요?"

수풀을 향해서 내가 다시 외쳤다.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아마, 이십분 전, 얕은 고개 넘기 전에 말이야, 의자가 있었잖아? 거기서 멈춰버린 것 같은데? 우리는 그냥 출발하면 안될까? 그녀는 로그로뇨(Logrono)가 종점이야."

맥스는 다시 걷기 위해 몸을 돌렸다. 나는 망설였다. 그녀를 기다리느냐, 아니면 다시 되돌아가느냐, 맥스를 따라 가느냐.

걸음을 멈추면 물집이 잡혔던 곳이 다시 신경쓰일 것이다. 한시간 정도 걸으면 발에 감각이 없어져서 물집 잡힌 곳도 무감각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햇볕은 강해질 것이다. 맥스와 나는 로그로뇨를 지나 13km를 더 걸어가야 도착할 수 있는, 나바레떼(Navarette) 알베르게에서 묵는다. 나는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듯이 뒤를 돌아보고는 맥스를 따라 길을 나섰다.

걷기는 단순히 신체적인 운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각자의 리듬을 존중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일행이 있다는 것은 서로를 기다려 주고, 함께 휴식을 취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를 돕고 서로에게 관심을 갖는다.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 침묵도 필요하다.

하지만 일행도 그 사람의 성향과 걸음걸이 속도에 따라 편이 갈라지기 마련이다. 첫날, 생장피드포르에서 함께 잤던 야니라. 그녀는 무릎이 좋지 않다고 했다. 내 걸음이 늦어질까봐 자연스럽게 그녀와 헤어졌다. 그녀는 다섯째 날 푸엔테 라 레이나 알베르게에서 만났다. 볶음밥을 해서 아는 일행들과 나눠먹은 뒤 먼저 침대로 올라가던 때였다. 입구에서 하도 소란스럽게 도착한 것을 축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봤더니 잔뜩 상기된 야니라가 맥주를 한 손에 들고 마시고 있었다.

나는 반갑게 아는 체를 하며 무릎은 좀 어떠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주 유쾌한 목소리로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일행을 내게 소개시켜주었다. 한국인 여자였다. 나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거의 굶다시피 걸었다. 더군다나 물집 때문에 의기소침해져 있었는데 무릎이 좋지 않다던 그녀는 건강하고 유쾌하게 길을 걷고 있었다. 오래 있지 못하고 침대로 올라와야 했다. 

 해뜨기 전 풍경
해뜨기 전 풍경 ⓒ 차노휘

 포도밭
포도밭 ⓒ 차노휘

그리고 지금, 빠름을 좇는다. 뒤처지고 싶지 않다. 가능하면 빨리 멀리 가고 싶다. 누구보다 더 먼저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해서 뒤늦게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싶다. 몇 킬로미터를 최단 거리에 완주했다면서 은근히 자랑하고 싶다. 진보가 지향하는 것은 언제나, '빨리 그리고 멀리'였던가. 컨디션이 서서히 회복되어가자 나는 또 '빠름'에 매달렸다. 

맥스는 나보다 하루 늦게 순례길로 들어섰다. 연석과 같았다. 26일에 완주할 계획이었다. 그는 스펜서와 곧잘 어울렸다. 스펜서는 누구나 상관하지 않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토리스 델 리고에 도착하기 전, 미루나무가 있는 간이 매점에서 유일하게 노골적인 주인장 장삿치 인사에 반응하지 않은 사람이 맥스였다. 그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양말을 벗어서 그늘에서 발을 말리고는 다시 순례길로 나섰다. 그의 뻔뻔스러움(?)이 내게 퍽 인상적이었다.  

그는 말을 할 때 아주 독특한 발성을 했다. 모든 사람이 상대방을 배려하며 한국에서 근무하는 영어 선생처럼 친절하지는 않다. 그는 발음을 입안에서만 굴렀다. 바닥을 쓸고 가는 대빗자루질 발음이라고 할까. 그의 말을 알아듣는 데에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일의 만족도를 조사한 다음 수치로 계산하는 연구원이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단다. 일이 많기도 했지만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ph.D 과정을 밟기 전에 시간이 나서 이 길을 걷는다고 했다. 

한 시간을 더 걷자 들판 너머에서 여명이 밝아왔다. 먼 곳은 사위가 밝았지만 가까운 곳은 시원한 잿빛이었다. 이런 시간에 좀 더 걸어야했다. 앞서가던 맥스가 쉬어가자고 했다. 우리는 길섶에 나란히 앉았다. 그도 나도 신발을 벗은 다음 양말을 벗었다. 건물 하나 보이지 않은 광활한 평야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었다. 길은 하얀색 흙돌길이었는데 지루함에 포인트를 주듯 200미터 앞에 마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길섶의 이름모를 꽃
길섶의 이름모를 꽃 ⓒ 차노휘

"맥스, 너는 26일 계획으로 왔는데, 그 안에 도착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예를 들어, 아주 아프거나 그럴 일은 없지만 사고가 나거나. 그럴 때는 어떻게 할 거니?"

맥스는 배낭에서 사과를 꺼내 깨물었다. 우적우적 씹으면서 대답했다.

"어떻게 하든 가야지. 나는 '실패'라는 단어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

"나폴레옹이군, 그래."

나는 그의 자신만만함에 약간 비꼬는 투로 대꾸했다. 내 말투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더 정확하게 말해볼까? 저 나무 보이지? 저기까지 가는 데에 너는 몇 가지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맥스는 200미터 앞에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단순한 답을 원한 것 같지는 않은데? 분명한 것은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야."

"맞아, 수없이 많은 방법이 있어. 걸어서도 뛰어서도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있어. 더 쉬운 방법도 더 어려운 방법도 있지. 나는 그 여러 방법 중에서 선택할 수 있어."

"그럼, 네 목적을 위해서 남을 기꺼이 희생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니?"

"그렇지 않아. 그렇게 한다면 목적지에 도달하는 의미가 없잖아. 더군다나 여기는 순례길이야."

그는 기지개를 켜며 양쪽 어깨를 올렸다내렸다 했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해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건데? 너 자신을 위해? 아니면 다른 사람 누구?"

그는 내 눈을 뚫어져라 봤다.

"둘 다겠지."

"설명해줄 수 있니?"

"내가 목표했으니 도달하면 내가 만족하겠지. 모든 행위는 나를 위한 거야. 설렁 남을 위한 거라고 해도 내 자신의 성취감을 위한 거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 나를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을 위한 것일지라도. 그러나저러나 '너'도 좋고 '나'도 좋다면 '둘 다'를 위한 거겠지. 궁극적으로는 '나'를 위한 것이지만."

"그렇다면 오늘 아침, 뒤에 남겨두고 온 그녀를 어떻게 생각해? 우리가 기다려줄 수도 있었잖아?"

나는 물어보고 싶은 것을 물었다. 하지만 빙빙 돌려서 묻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녀한테 더 다행한 일이야. 나는 목적지에 중점을 두었어. 거기까지 가는 여러 방법. 그녀는 목적지부터 우리와 달랐어. 출발은 같을지언정 결코 비슷할 수가 없다는 거야. 무엇보다도 그녀가 부담을 느낄 수가 있어. 앞서가는 사람이 기다려주는 것이. 일종의 빚이라고 생각해봐. 마음이 편치 않을 거잖아?"

의외로 맥스는 명쾌하게 답변했다.

맥스는 양말을 신었다. 나도 그를 따라 양말을 신었다. 발바닥에 붙여놓은 밴드가 반듯한지, 진물이 나왔는지 확인했다. 깔끔했다. 나는 걸으면서 맥스가 했던 말을 되새김질했다. 일종의 빚. 과연 그럴까. 그만의 개인주의 발상이 아닐까(하지만 내가 진정한 '혼자'가 되었을 때 맥스의 말을 어느정도 동의할 수 있었다). 그와 헤어질 날이, 정확히 말하면 아픈 발 때문에 내가 버림받을(?)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니, 오늘 당장일 수도 있었다. 달리 생각하면 서운하고 말 것도 없었다. 애초부터 나는 혼자였다. '쿨'한 그의 성격이 좋을 수도 있었다. 그는 감정의 찌꺼기를 남길 여지를 주지 않았다. 

길 위의 정

 길거리 양탄자를 수놓고 있는 로그로뇨
길거리 양탄자를 수놓고 있는 로그로뇨 ⓒ 차노휘

맥스와 나는 10시 조금 지나서 로그로뇨에 도착했다. 실은 이곳을 목적지로 잡으려고 했다. 큰도시였고 중국인 슈퍼마켓이 있어 라면을 살 수 있었다. 일요일이어선지 광장에 축제를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수녀를 중심으로 바닥에 무늬를 만들면서 그야말로 길 양탄자를 만들고 있었다.

또 다른 광장에서는 중고시장이 열렸다. 거리거리마다 활기가 넘쳤다. 이곳에서 여정을 풀고 일요일 밤을 길거리 카페에서 생맥주를 마셔도 되겠지 싶었다. 그저 바람일 뿐이었다. 맥스와 나는 야외 카페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샌드위치와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또 걷기 위해 일어섰다.

로그로뇨 외곽 공원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곳을 지나 저수지 둘레길을 걸었다. 정체된 공기와 더위에 그만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 더위 속에서도 끊임없이 조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옷차림도 다양했다. 비키니처럼 보이는 차림으로 뛰는 여자들과 겨우 운동복 삼각팬티만 걸친 남자가 지나갔다. 한쪽 길가에서는 전통의상을 입은 무리가 행진했다. 저수지 끝. 그늘 한점 없는 완만한 고개 하나를 넘어야 목적지인 나바레떼로 갈 수 있었다. 아, 그 끝없는 고갯길이라니. 손바닥만한 그늘만 보여도 숨고 싶어졌다.

하지만 혼자만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태양이 내 머리 위에만 온종일 머무르지 않았다. 징징 거릴 수도 없었다. 햇볕에 질질 끌려가듯 두어시간을 더 걸었다. 드디어 나바레떼 입구를 알리는 와인 제조장이 보였다. 맥스가 뒤돌아보며 내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 외쳤다.

"We did it!"(우리가 해냈어!)

알베르게에 여정을 풀었을 때 니콜라한테서 문자가 왔다. 로그로뇨로 되돌아오라고 했다. 이렇게 힘들게 걸어 왔는데 되돌아오라고? 흥! 콧방귀를 뀌어 주었지만 가슴 한쪽이 따뜻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니콜라는 '니콜라'였다. 맥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니콜라와는 점차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그는 14일만 걸을 수 있다고 했으니 이제 남은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내가 멈추지 않는 한 만날 일은 없었다. 나는 그에게 다소 감정적으로 답장을 했다.

'길 위의 '정'은 영원한 여정일 것이니 언젠가 또 이어지겠지. 니콜라, 그때 멋지게 보자!'

 앞서 간 순례자가 만들었을 재치있는 돌 얼굴
앞서 간 순례자가 만들었을 재치있는 돌 얼굴 ⓒ 차노휘

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2017년 6월 13일에 걷기 시작해서 7월 1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30일만의 완주였습니다. 그 다음 날,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100km)까지 내처 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4일 동안 900km 여정을 마쳤습니다. 몇 십 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34일의 여정은 짧을 수 있으나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은 제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다가왔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34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으면서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 길 #순례자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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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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