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무슨 육아 관련 책이 유행하나 싶어 검색하다가 어떤 맘카페에 들어가본 적 있다. 누군가 육아서를 추천해 달라는 글에 <엄마 자격증이 필요해요>, <엄마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결정적 시기> 등등의 책을 소개한 걸 봤다. 그때 '거 참... 엄마는 자격증도 필요하고 자녀들을 위해 어떤 결정적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되는구나, 정말 고달픈 자리구나' 싶었다.
실제로 많은 육아서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잘' 키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만 고민을 한다. 이상적인 육아법을 상정해두고, 거기서 벗어나면 아이가 잘못 자라는 것인양 말한다. 육아서는 부모들의 자기계발서로 작용하고 있는 중이다.
신간 <엄마의 독서>를 펴낸 정아은 작가 또한 그런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 같다. 엄마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 너무 부족하다는.
육아지침서 말고, 엄마지침서
"엄마라는 막중한 타이틀을 달게 되면서 나는 늘 그런 책을 읽고 싶었다. '엄친아'를 키워낸 완벽한 엄마가 다른 이들에게 비법을 전수해주는 책이 아닌, 어떻게 해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전문가들의 책이 아닌, 당사자의 경험이 새겨진 진솔한 책. 자신이 했던 실수와 못난 성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경험에서 얻은 깨달음을 아낌없이 공유해주는 책."
이 책의 저자는 소설가이면서 엄마다. 두 개 모두 본인을 강력하게 묶고 있는 사회적 정체성이다. 하지만 글을 잘 쓰는 법에 대한 책은 범람하는데 엄마 당사자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책은 드물다.
아이를 키우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만 어쨌거나 경험치가 쌓이기 마련인데, 과연 그 자리에 '나'란 존재는 있을까. 우리나라는 유독 엄마에게 의무를 많이 지우는 사회다.
그렇다고 그 의무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는 것도 아니다. 엄마는 조금만 실수해도 '맘충'이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고, 조금이라도 감정을 솔직하게 표출하면 '가족 생각은 않는 이기적인 여자' 취급을 받는다.
세상을 예리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작가에게도 이런 고민은 당연히 예외가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정아은 작가는 책을 통해 위로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엄마의 독서>는 작가가 엄마로 살면서 읽었던 30여 권의 책에 대한 에세이다. 결국 저자가 여성으로서 느꼈던 차별에서 근원하는 고민들이 독서에 녹아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략) 여자는 너무 투명해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나 투명해서, 그게 너무나 자명하고 익숙해서, 누구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 이를 께닫게 되자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던 뉴스 속 언어나 생활 규범, 서사 속 인물들이 얼마나 남성 위주로 짜여 있는지를 인식하게 되었다."
시중에 나와있는 육아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담겨있다. 부모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육아가 과연 가능키나 한가.
"육아서 읽기에 한계를 느끼고 있던 시점이었다. 육아서를 읽어도 그 효과가 며칠 못 가는 데다가, 내용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읽었던 육아서들은 대부분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행동하기를 주문했다. (중략) (<부모로 산다는 것>을 읽으면서) 그동안 훈계와 과장과 비현실적인 요구로 뒤범벅된 육아서들을 읽으며 마음에 가득 찼던 상처와 죄책감과 부담감이 깨끗하게 씻겨나가는 듯 했다.('아이가 아닌, 부모 입장에서 쓴 책 - <부모로 산다는 것>, 제니퍼 시니어' p. 100)
"엄마됨을 후회하는 감정을 못 가지게 하는 게 문제에요"
책을 읽고, 2월 28일 북콘서트에 당첨되어 다녀왔다.
일단 이 책의 메시지와 관련하여 내가 마포도서관 세미나실 문을 열었을 때 들었던 느낌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문을 열고 앉아있는 청중들 면면을 보는데, 다 여자였고 모두 나이가 좀 되어 보이는 중년의 엄마들 같아보였다. 그날 남자는 '말 그대로' 나 혼자였다.
대형 인터넷 서점과 SNS를 통해서 신청을 받았는데도 이런 성비를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엄마됨'의 문제는 사회 전체가 관심있게 바라봐야 할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별 관심을 못받은 것 같아 굉장히 씁쓸했다. '엄마됨'과 '모성애 신화'는 결국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아은 작가와 양선아 <한겨레> 기자는 토크 내내 '엄마인 우리가 이 문제를 직시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했는데, 이 부분이 살짝 아쉬웠다. 다른 가족 구성원이 엄마도 주체적인 개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엄마가 가정을 바꾸어 나가는 일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물론 콘서트는 '엄마됨'과 '모성애'를 사회적으로 학습 받아오던 그 당사자들이 문제를 깨닫게 만드는 과정이었다는 점은 의미가 있는 부분이긴 했다.
"제일 쉬운 게 내 탓하는 거예요. 육아서들은 엄마들에게 겁을 주면서 내 탓을 해야 마땅한 것인양 만들어버리죠.""엄마가 된 걸 후회하세요? 어떻게 감히 후회한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우리도 사람이잖아요. 살다보면 후회 한 번 할 수 있는건데 그렇게 말하면 엄청 욕 먹을 거예요.""출판사 서평을 보고, 바로 달려가서 <엄마됨을 후회함>을 샀어요. 근데 돌아오는 길에 저도 모르게 자꾸 제목을 가리게 되더라구요. 책 제목을 보면 누가 뭐라고 할 것 같아서."저자가 많은 책을 읽었지만 '엄마의 독서'라는 콘셉트에 가장 걸맞는 책은 <엄마됨을 후회함>이라고 생각한다. 후회라는 감정에 대해 그것은 잘못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모든 논의의 시작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아이를 낳고 갑자기 변화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하는 여성들에게 '우울증'이라는 이름을 건넨다. 원래 엄마됨을 감사해하고 행복해하는 게 자연스러운 건데 우울해하다니 너는 참 이상하구나.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나 보다. 빨리 치료를 받아 '정상'으로 돌아와라. 이렇게 말하며 상담 기관으로 보낸다. 그러면 상담 기관들은 이 모든 것을 내방한 여성의 '개인적 기질' 혹은 '가족사에서 기원한 문제'로 취급한다. (중략) 결국 여성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배출구를 찾지 못한 채, 자신이 정신적으로 이상하거나 나약하다고 자책하며 육아의 첫 시기를 건너게 된다. -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시 엄마가 될 것인가, <엄마됨을 후회함>, 오니 도나스' p.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