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권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아베 총리 부부가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학재단에 정부 소유의 국유지를 헐값에 매각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른바 '사학 스캔들'이 문서 조작 의혹으로 번졌다. 야권은 철저한 진상 조사를 요구하며 국회 일정을 거부하고 있다.
국유지를 매입한 사학재단은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명예 교장을 지냈던 모리토모학원이다. 지난 2017년 초등학교 부지로 사용하겠다며 국유지를 감정가 9억 3400만 엔(약 94억 원)보다 훨씬 낮은 1억 3400만 엔(약 13억 원)에 사들였다.
매각을 진행한 재무성은 해당 부지에 쓰레기가 매립되어 있어 철거비를 고려해 적정 가격에 매각한 것이며 특혜를 주거나 아베 총리 부부가 압력을 행사한 것은 전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국회 요청에 따라 토지 매각 과정을 담은 내부 결재 문서를 제출했지만, 지난 2일 <아사히신문>이 원본의 특정 문구를 삭제하거나 수정한 '조작 문서'를 제출했다는 의혹을 추가로 보도하며 사태가 더 심각해졌다.
보도에 따르면 원본에는 '특례적인 사항', '본건의 특수성' 등 재무성이 모리모토학원을 특별히 배려했다는 의혹을 받을 만한 문구가 있었으나 재무성이 국회에 제출한 문서에는 이런 내용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다.
재무성의 미심쩍은 대응은 의혹을 더 키웠다. 앞서 관련 문서를 모두 폐기했다고 밝혔다가 검찰 조사가 시작되자 "관련 문서를 검찰에 다 보내서 제출할 수 없다"라고 말을 바꾼 것이다. 또한 문서 조작 여부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오른팔'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도 국회 예산위원회에서 "검찰이 이번 사건의 배임 및 증거 인멸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답변하지 않겠다"라고 버텼다.
야권 "조작 사실이면 내각 총사퇴해야"... 여당도 '다급'
야권은 총공세에 나섰다. 일본 NHK에 따르면 7일 입헌민주당, 희망의당 등 6개 야당 지도부는 긴급 회의를 열고 모든 국회 일정을 거부하며 '국정조사권' 행사를 집권 자민당에 제의하기로 했다.
국정조사권은 국회가 정부의 문서 제출, 증인의 출석과 증언 등을 요구할 수 있도록 헌법으로 보장하는 권리다. 정부가 국회의 모든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구속력은 없지만 정당한 해명을 할 의무가 있다.
야권은 만약 문서 조작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아베 내각이 총사퇴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지난해 사학 스캔들이 처음 불거졌을 때 기록적인 지지율 추락을 경험했던 아베 총리로서는 3연임 도전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후쿠야마 데쓰로 간사장은 "정부의 대응이 매우 불성실하다"라며 "신속하게 원본 문서를 제출하고, 만약 조작이 있으면 누가 지시했고 어떤 의도로 그랬는지 밝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자민당도 나섰다.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은 "재무성이 국회가 요구하는 자료를 내놓지 않는 것은 나도 이해할 수 없다"라며 "만약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정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니카이 간사장은 "검찰 수사에 지장을 줄 수 있다"라며 국정조사권 발동은 난색을 표하면서도 "정부가 국민에게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아소 부총리의 사퇴시켜 조기 수습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본 언론에서는 아베 총리가 집권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며 3연임은 물론 '숙원'인 개헌 추진을 위한 국정 장악력도 약해질 것으로 전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