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한 사건들이 좌파진영에서만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박수 부탁드립니다.) 좀 더 가열차게 좌파들이 더 걸려들면 좋겠습니다.(함성과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3월 6일 자유한국당의 '여자만세'라는 전국여성대회 행사에서 홍준표 대표가 한 말이라고 한다(관련기사 :
"미투는 좌파에서만" 홍준표의 그 말, 피눈물 난다). 눈과 귀가 의심스럽지만, 이것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 제로인 대한민국 제1야당 대표의 민낯이다.
홍준표 대표에게 '미투운동'이란 불합리한 여성차별과 억압에 대한 사회변혁의 피나는 노력이 아니라, 그저 좌파를 깎아내리기 위한 정치적 구실이자 낄낄거리며 박수치는 오락거리로밖에 인식되지 않은 것이다. '여자만세'라면서 여성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한 공감 따윈 안중에도 없고, 그저 남을 깔아뭉개고라도 내가 잘 되면 된다는 저급한 수준의 사고만이 엿보일 뿐이다.
이러한 공감능력 제로의 홍준표 대표를 수전 손택이 만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심히 궁금해진다.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라 불린 미국 최고의 에세이 작가이자 소설가, 예술평론가인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뉴스가 오락으로 뒤바뀌어 버린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극소수의 교육받은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해버린다'고 말한다.
전혀 진지하지 않을 뿐더러 괴팍하기 그지없는 이들의 방식으로 본다면 이 세상에는 현실적인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수전 손택의 분석이다. 이런 이들에게 타인의 고통은 하룻밤의 진부한 유흥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그 사람들은 타인이 겪은 고통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도 그 참상에 정통해지고, 그러면서 진지하지 않게 그 고통을 다룬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보내는 연민은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린다고 수전 손택은 일갈한다.
<타인의 고통>은 사진이란 매체를 통해 이미지화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사유와 통찰을 담고 있는 책이다.
수전 손택은 책의 첫 장에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개입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즉 타자와 나 사이에 공유할 수 없는 고통을 어떻게 볼 것인지,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의 의미를 묻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세계가 다 엮여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고통스럽게 된 데에는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으며, 그 고통이 내 것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진중권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야기한다.
수전 손택은 어떤 곳을 지옥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사람들을 그 지옥에서 어떻게 빼내올 수 있는지, 그 지옥의 불길을 어떻게 사그라지게 만들 수 있는지 까지 대답해야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대신 우리가 타인과 공유하는 이 세상에 인간의 사악함이 빚어낸 고통이 얼마나 많은지를 인정하고, 그런 자각을 넓혀나가는 것 그 자체로도 훌륭한 일이라는 거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The New Yorker>지에 게재한 칼럼에서 수전 손택은 미국 사회를 향해 "부디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역사를 조금이라고 알고 있다면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여성들의 아픔과 상처, 고통은 외면한 채 미투운동을 그저 정략의 도구와 유희 거리로만 삼는 홍준표 대표에게 110주년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공감능력을 조금이라도 갖추고 여성을 대하기를 바라며,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의 일독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이후 펴냄, 253쪽, 200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