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보도에서 피해자에 대한 정보 노출은 최소화되어야 합니다. 피해자가 미투 운동에 참가하면서 자신의 신상을 스스로 공개했다고 해도, 본인의 과거 사진이나 영상 등을 들추어 언론이 마구잡이로 활용하는데 동의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서지현 검사 사례와 마찬가지로 지난 5일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정무비서 김지은씨가 JTBC에 출연해 안 지사의 성폭행을 폭로한 이후, 김 씨의 모습을 활용한 보도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피해 사실 폭로 인터뷰'를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 김지은씨의 '과거 안 전 지사 수행 당시의 모습'을 경쟁적으로 발굴하여 소개하는 참담한 보도 행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JTBC부터 TV조선까지. 7개 방송사 중 단 한 곳도 예외가 없습니다.
'문제의 영상' 공개한다며 별도 보도까지 내놓은 SBS7개 방송사는 단순히 김지은씨의 이미지를 사용하거나, 과거 안 전 지사 수행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않고, 붉은 동그라미 표시나 밝기 조절 등을 통해 김 씨의 과거 모습, 특히 얼굴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SBS의 <"진실 규명하는 게 최선"...신변보호 요청>(3/6 https://goo.gl/GKjZpx)입니다.
앵커는 먼저 "김씨는 안 전 지사가 공식 해외 출장 업무 중에도 성폭행을 가했다고 폭로했는데 문제의 출장 영상을 전해드립니다"라는 멘트를 내놓았고요. 여기에 이어 SBS는 기자 멘트와 함께 과거 안희정씨의 해외 일정 영상을 뒤져 수행비서 김씨가 찍힌 장면을 찾아낸 뒤, '붉은 원' 혹은 '밝게 처리된 원'으로 부각해 거듭 보여주었습니다.
그 외 SBS <검찰 "직접 수사"...피해자 "적극 협조">(3/7 https://goo.gl/uzG6EP), <피해자 고소장 제출...본격 수사>(3/6 https://goo.gl/JbNHzb), <서둘러 제명했지만...민주당 '전전긍긍'>(3/6 https://goo.gl/YGTB2p)에서도 굳이 '피해자가 가해자와 함께 과거 근무하던 시기'의 영상과 사진을 발굴해, 이를 부각하는 '스토커스러운' 행태는 반복되었습니다.
방송 보도의 특성상 상황을 설명하면서 보여줄 '그림'이 필요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가해자로 지목된 이의 해외일정을 뒤져 그 속에서 '피해자가 어딘가 구석에서 어떤 표정으로 있었는지'를 찾아내 이를 보여주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태입니다.
통상적으로 성폭력이나 범죄 피해자의 과거 사진이나 영상, 일기장 등을 촬영해서 보여주는 것은, 부득이하게 성폭력을 입증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모두 '사생활 침해'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안희정 전 지사의 해외 일정 영상이 공식적인 행사였다고 해도, 안 지사를 제외한 영상에 담긴 인물들의 이미지를 '마음대로 활용하는 것' 역시 적절한 행태는 아닙니다.
이걸 알기에 SBS도 김지은씨 이외의 모든 인물들에 대해서는 블러 처리를 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 와중 유독 김지은씨만은 '성폭력을 폭로한 인물'이라는 이유만으로 별도의 표시까지 해 가며 부각하고 거듭 반복해서 노출시킨 겁니다.
성폭력이 발생한 문제의 출장이기 때문에 보여줬을 뿐이라는 변명도 현 상황에서는 무의미해 보입니다. 이런 영상을 '입수'해 공개하지 않더라도 피해자가 가해자의 수행 비서였다는 사실, 함께 해외 출장을 갔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입증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런 영상은 안희정 성폭력을 하나의 '드라마'처럼 느끼게 하는 효과를 줍니다. 일부러 악의를 갖지 않더라도 시청자는 안희정 해외순방 영상 속에 작게 비춰지는 김지은씨의 모습을 보면서 '저 당시에도 성폭력이 있었겠구나'라고 계속 인식하게 됩니다.
한국여성민우회의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에서 '폭력의 성애화'를 우려하면서 "폭력인 사건을 연애, 성적인 관계로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성폭력을 폭로하면 그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초점을 맞추면 됩니다. 폭력 당시 그들이 어떤 표정이었는지 찾아내서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은 모두 과도한 관심이자 사생활 침해이며,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를 성애화 할 우려가 있는 행태입니다.
첫 보도 내놓은 JTBC와 타 방송사들 모두 마찬가지SBS 뿐 아니라 다른 지상파 KBS도 <안희정 지사직 사임...검찰에 고소장>(3/6 https://goo.gl/9YFU7z)에서, MBC도 <변호사 선임 "내일 입장 발표">(3/7 https://goo.gl/aKfDsE), <14시간 만에 사퇴 도정 '마비'>(3/6 https://goo.gl/Zh3MrE), <"피해자 더 있다" 강제수사 불가피>(3/6 https://goo.gl/L3i3ny)에서 피해자 과거 모습을 담은 영상을 자료화면으로 활용했습니다. 피해자의 모습에 별도의 표시를 하는 행태도 비슷했습니다.
종편도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김지은 씨의 폭로를 가장 먼저 전달한 JTBC 조차 후속 보도 <"도움 못 줘 자책...수사 받겠다">(3/6 https://goo.gl/zg4WDe)와 <검사 4명 투입...안희정 내일 '회견'>(3/7 https://goo.gl/Th7Ki4)에서 피해자의 과거 안 전 지사 수행 모습을 '별도로 밝게' 처리해 자료화면으로 활용했습니다.
특히 <"도움 못 줘 자책...수사 받겠다">는 '알면서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나섰다는 안 전 지사의 전직 수행비서 신용우 씨와의 인터뷰 보도'인데요. 인터뷰 과정에서 신 씨의 발언 한 마디가 끝나고 기자의 설명 멘트가 나올 때 마다 이러한 과거 영상을 보여주는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TV조선, 채널A, MBN도 마찬가지입니다.
TV조선은 6일 하루에만 <"정치인 안희정 존경해서 갔는데...">(3/6 https://goo.gl/L3etcE), <"SOS 여러 번 보냈지만 도움 못 받아">(3/6 https://goo.gl/bmEpFd), <포커스/'미투'지지 외치던 날...추락한 안희정>(3/6 https://goo.gl/1sVzGJ) 3건에서 피해자가 안희정 전 지사와 근무하던 시기의 모습을 자료화면으로 사용하고 별도 표시로 부각했습니다. 다음날에도 <'위계 간음' 혐의 수사 착수...곧 소환>(3/7 https://goo.gl/WPRgNk)에서 같은 행태를 반복했고요.
채널A는 <성폭행 폭로...경찰 내사 착수>(3/6 https://goo.gl/sK3WJM), <잠적 나흘 만에...내일 기자회견>(3/7 https://goo.gl/fqn6TF), <사과 후 법적 대응>(3/7 https://goo.gl/gBzo7w)에서, MBN은 <검찰 수사 착수>(3/7 https://goo.gl/4bKmCg), <있다? 없다?>(3/7 https://goo.gl/9wKHXs), <경선캠프서 첫 인연...비극적 결말>(3/6 https://goo.gl/5W6txT), <도움 요청 묵살>(3/6 https://goo.gl/XJ5bs5) 등의 보도에서 집요하게 피해자 과거 직무 수행 모습을 부각하여 보여주었습니다.
MBN은 '징역형 불가피' 제목 위에 피해자 이미지 사용이와 별개로 MBN은 <징역형 불가피>(3/6 https://goo.gl/Roai6Y) 보도에서, '징역형이 불가피하다'는 이 제목과 함께 피해자 사진을 첫 화면 이미지로 사용했는데요. 피해자 얼굴 부각이라는 문제 이전에, '징역형'의 주체가 김지은씨인지 안희정 전 지사인지 혼동을 유발하는, 매우 부적절한 화면 구성으로 보입니다.
동아·조선은 신문 지면에서 유사 행태 반복덧붙여 신문 지면에서 이와 유사한 행태를 보인 것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입니다.
<동아일보>는 8면 톱보도 <성범죄 저지르고 피해자에 "잊어라"... 권력형 나르시시즘>(3/7 https://goo.gl/Wwx1KJ)에서 "지난해 7월 4일 충남 홍성군 충남도청 앞에서 진행된 동아일보와 채널A 공동 인터뷰" 당시 얼굴에 번진 화장을 손수건으로 닦고 있는 안 전 지사 앞에 "김지은씨가 넥타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는 사진을 기사에 사용했습니다.
<조선일보> <"안희정, 호텔로 불러 자기 지위가 버겁다며 성폭행">(3/8 https://goo.gl/aQXBru) 역시 '작년 12월의 안희정과 비서'라는 제목을 달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근무하던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 사진이 없어도, 혹은 안 전 지사의 사진만을 넣어도 기사 내용을 전달하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는데 말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3월 5~7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