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입양 부모들은 왜 국회로 갔나?"제발 입양 부모들이 입양특례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을 이기심 때문이라고 오해 하지 말아주세요!"지난달 13일 국회의원회관 제8 간담회의실에서 진행된 '입양 특례법 전부개정안 관련 입양 부모 의견 청취 간담회'에서 입양부모들이 애끓는 심정으로 마지막 발언을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미혼모나 원가정에서 기를 수 있는 아이를 빼앗아서 기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가정이 키우지 못해 유기되는 아이들과 시설 아동들이 안타까워서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가 떠나왔던 시설에, 입양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입니다."입양을 더 까다롭고 어렵게 만들게 될 입양법 개정안이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에 입양부모들은 애가 탔다. 이 법이 통과되면, 시설에서 성년이 되도록 홀로 커야 할 아동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전국의 입양 부모들은 '전국입양가족연대'를 결성해 이 법안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남인순 의원의 '입양 특례법 개정안' 준비의 중심에는 2016년 대구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이 있다. 당시 사망한 5살 은비(가명)는 입양 전 위탁 단계에 있었다. 이 사건 이후 남인순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법조인 등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고, 이후 이 개정안이 나왔다. 그러나 이 법안은, 현재에도 사회적 편견과 제도적 난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입양을 더 위축시킬 것으로 예견된다.
대구 입양 아동 사망 사건의 '진상'은 무엇이었나?1년간의 진상 조사 결과 나온 중요한 해결 방안의 하나가 '입양 특례법' 전부 개정안이라는데 입양부모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진상'이란, 겉으로 보이는 표면적 사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사건의 이면에 있는 '왜?'를 묻고 그에 답하는 것이 '진상 조사'이다.
사망한 은비의 생모는 2012년 17세 때 은비를 낳았고,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2년간 은비를 홀로 키웠다. 생계를 꾸리며 고졸 검정고시까지 준비해야 했던 생모에게서 크는 동안 은비는 24시간 보육시설을 전전해야 했다. 결국 생모는 2014년 은비의 입양을 결정했다. 그러나 은비를 키워줄 부모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입양을 기다리는 아동보다 입양하기 위해 대기하는 부모들이 더 많은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입양을 원하는 예비 부모가 드물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비밀 입양이 공개 입양의 두 배 이상 된다. 비밀로 해야 할 만큼 입양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는 얘기다.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을 오갈 정도로 잘 살게 되었는데, 여전히 '고아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은비가 입양 전 위탁된 과정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여건상 망설이는 예비 입양부모에게 기관장이 '부탁'하여 위탁이 진행되었다. 입양 편견이 없고 입양이 활성화된 사회였다면, 은비는 '부탁받은' 부모가 아닌 '준비하고 기다린' 부모와 만났을 것이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또 하나 있다. 은비 사망 이후, 법원에서는 은비에 대한 입양 허가 판결이 났다. 은비의 입양부모는 모든 서류상, 재산상의 조건에서 결격 사유가 없었던 것이다. 법이 정하는 서류와 면접으로 '아동학대 가능성' 있는 부모를 감별할 수 있다는 것은 합리적인 발상이 아니다. 법은 '범죄'를 예방할 수 있지만, '범죄 가능성 있는 인물'을 미리 가려낼 수 는 없다.
2011년 입양특례법 개정으로 국내 입양이 급속히 줄어들었다. 2017년 보건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보호가 필요한 아동 중 가정중심 보호율이 2012년 55.4%에서 16년 40%로 계속 감소했다. 입양되지 못한 채 시설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에 보태어 더욱 입양을 어렵게 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 남인순 의원의 이번 개정안이다.
입양이 어려워 발생한 사건을 입양을 더욱 어렵게 하는 법으로 예방할 수 있다는 발상은 대한민국 국회의 현실인식을 보여준다. 학대와 죽음이라는 표면적 사실 이외에 어떤 조사가 있었는지, 아이가 놓인 현실에 대한 사회 시스템적 조망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복지 사각지대, 끊이지 않는 친생부모의 영아 살해지난해 12월 31일 광주에서 23살의 엄마의 방화로 4세, 2세 아들과 15개월의 딸 삼남매가 사망했다. 어머니 정씨는 나흘 전 남편(22세)과 이혼했고, 생활고에 찌들려 이혼한 남편과 연락을 시도하고 불화를 겪는 도중 이런 일을 저질렀다. 이들은 고등학생이던 18세에 첫 아이를 가졌고, 불이 났을 때 아빠는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고 엄마는 술에 취해 있었다. 그보다 앞선 12월 22일에는 36세 미혼모 김모 씨가 미혼모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싫어 출산한 영아를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발각되었다.
2017년 금태섭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분만 직후 유기되는 아이가 한 해 평균 100건에 달하며, 한 달에 한 명꼴로 영아 살해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입양법을 까다롭게 하면 미혼모 양육이 장려되고, 원가정 지원이 활성화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혈연은 본능이어서 경제적 지원만 있으면 대부분의 미혼모가 아이를 기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엘리자베트 바댕테르는 자신의 저서 <만들어진 모성>에서 '모성애'는 18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17~18세기 프랑스 상류사회에는 여성들이 자신의 아기를 돌보지 않고 멀리 떨어진 농가에 보내는 관행이 있었다. 많은 아기들이 농가에서 사망하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고 이런 관행들은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모성'과 '혈연'의 신성함을 강조하고자 한다면, 입양법을 들여다보기 전에 육아는커녕 자립도 힘든 한국의 10대, 20대의 현실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또한 홀로 아이를 낳고 부모와 학교와 사회로부터 내쳐지는 미혼모를 지원하기 위한 강력하고도 구체적인 제도와 법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모르쇠'로 일관해온 미혼부의 양육책임에 대해서도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 캐나다와 미국, 유럽 여러 나라들은 미혼모가 낙태, 양육, 입양 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양육을 결정할 경우 바로 미혼부에게 양육비 지급의 책임을 부여한다. 그러나 우리는 벼랑 끝에 서 있는 미혼모에게 모성애만을 강요하고 있다. 외국처럼 '미혼부법' 도입이 시급한 이유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입양법 개정을 준비하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다음과 같은 안이한 답변을 되풀이한다.
"현재 시설 아동의 증가나 미혼모의 열악한 상황은 과도기적인 것으로서 당장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다. 입양법을 개정하고 나면 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서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 인권과 존엄성에 '과도기'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인식은 안이하다 못해 폭력적이다. 우리는 답한다. 입양을 까다롭게 하여 시설에 아동을 방치하기 전에 입양가족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라고. 입양법을 손보기 전에 먼저 미혼모 지원을 위한 제도와 법을 마련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