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낭트로 가는 길
유리 너머에 있는 경찰관(Police aux frontières)은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여권을 받아서 잠시 만지작거리더니 발급 받고 8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 깨끗한 내 여권에서 백지 몇 장을 대충 넘겨 첫 도장을 찍는다. 그리고 고개로 말한다.
통과!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냐? 왜 왔느냐? 왠지 내겐 쉽지 않은 질문에 마음속으로 뭐라고 할까 이런 저런 답을 궁리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나의 24년만의 두 번째 프랑스 여행이 시작되었다.
전에는 영국에서 프랑스로 배를 타고 들어와 유럽을 둘러보고 나갔기에 처음 와 본 드골공항. 내리기 전 비행기 안에서 본 일몰 후 파리의 모습은 왠지 바다에 뜬 섬 같아 보였다. 거기에 갑자기 눈에 들어온 에펠탑의 탐조등이 바다의 등대처럼 주위를 돌려 비추니 밤에 용눈이오름에서 본 우도의 등대가 떠올랐다. 입국장 문을 통과하자 짙은 남색 제복을 입은 사람이 다가와 묻는다.
"택시?"
"버스!"라 대답하니 "아, 부스!"라고 프랑스식 발음으로 교정해준다.
버스는 없다는 그의 말을 뒤로 한 채 바깥으로 나가니 한국의 공항보다 전체적으로 좀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나의 숙소는 파리 북동부 크리메(Crimée)에 있는 한인텔. 숙소에선 수도권고속전철(RER)이나 Roissy 버스와 같이 좀 더 빠르고 편리한 교통수단만을 안내했지만 나는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한 번만 갈아타면 되고 제일 저렴해서 공항 주변사람들의 삶의 모습도 볼 수 있는 350번 버스(6유로)를 타고 동역( Gare de l'est)에서 지하철 7호선(1.9유로)으로 갈아타는 방식을 선택했다.
도심 외곽에서 저녁 9시 경에 본 사람들은 좀 고단해보였지만 잠시 길을 물으면 물 기다린 화초처럼 생기를 찾아 대답하는 듯 했다. 저녁도 못 먹고 카메라에 삼각대 등 짐을 하영 들고 숙소에 10시가 다 되어 도착했지만 좀 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민박집 주인의 안내를 듣는 순간 산산이 깨지고 낭패다 싶었다. 아파트 수도관에 문제가 생겨 물이 안 나와 욕실은 물론 화장실도 쓸 수 없는 상태인데 다음날도 보장할 수가 없단다... 땀이 나고 피곤한 터라 잘못하면 금년 세 번째 감기에 걸릴 것 같아 걱정이 되어 그냥 자볼까 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도저히 다시 들 엄두가 나지 않아 짐도 놔두고 하루만 근처 다른 숙소에서 자기로...
길 맞은편 조선족 자치주에서 온 부부가 운영하는 민박집으로 옮기면서 근처에 이런 곳이 많다는 말을 들었다. 이층 침대에서 남녀가 따로, 한 방에 4명씩 묵을 수 있도록 하고 아침과 저녁을 제공하면서 하루 25유로를 받았다. 조용한 안주인의 안내를 받아 따뜻한 물로 씻고 나니 몸은 풀렸지만 자정이 이미 지났다. 쓰러지듯 누워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새벽 4시 50분, 인터넷이 되어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한국으로 몇 군데 보내고 6시 즈음 좁은 계단을 빙글빙글 돌아서 건물 바깥으로 나가 돌아보니 어젯밤에 들어갈 땐 잘 보이지 않았던 숙소의 오래된 외양이 눈에 들어온다.
두껍고 오래된 나무대문의 묵직하게 닫혀진 모습은 건물의 연륜을 말없이 짐작하게 했다. 길은 좀 어수선한 느낌이 있었지만 그 양 옆의 주욱 이어진 나지막한 건물들은 정돈되고 위압적이지 않아 편안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처음 간 민박집 아파트는 이 동네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가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34층인 그 아파트는 47년 정도 된 건물이란다. 매우 튼튼하게 만들어지고 또 잘 사용된 고층 아파트였다.
쌀쌀하지만 기분 좋은 아침공기를 마시며 거리를 슬슬 걷기 시작하니 아파트 벽면을 꽉 채운 화려한 옷의 멋진 흑인 남자가 그려진 그림, 청소부들, 재활용품 통에서 쓸 만한 천이나 옷을 찾는 여인, 아침 일찍 뭔가를 하기 위해 서두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 나왔던 지하철역 쪽으로 가니 Presse라 쓰여진 가판대가 보여 다가갔다.
주인은 나에게 "Bonjour!" 웃으며 인사를 한다. 나도 "좋은 날입니다(Bon jour)!"를 기운을 내어 고개로도 인사하며 답했다.
불어는 모르지만 그림이라도 볼 요량으로 제일 눈에 띄는 곳에 놓여있는 Le Parisien과 Le Mond 그리고 파리 3D 지도를 샀다. 각각 2.6, 2.6, 5 Euro.
혹시 낭트의 신공항 관련된 기사나 내용을 다룬 신문이나 책이 있을까 영어로 물었더니 다시 말해달라 부탁한다. 낭트, 뉴 그랑 에로포르트, 자드, 노트르담 드 랑드 등 내가 주워들은 단어들을 가능한 한 불어식(?) 발음으로 말하면서 설명하니 "아하!" 이해했다면서 저 행복한 여자를 보라며 문 안쪽에 붙여진 낭트공항 백지화 소식에 흥겹게 춤을 추는 여성이 그려져 있는 포스터를 가리킨다. 아, Voila! 찾았다!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흔쾌한 허락을 받고 좋아서 이리저리 찍다보니 설명해야 할 필요가 느껴진다. 나는 프랑스 낭트의 신공항건설계획이 금년 1월에 폐지되었다는 소식에 대해 알고있으며 그곳의 자연과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지난밤에 한국의 제주도에서 왔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 마을에도 역시 제2공항 건설이 계획되어 있어 걱정이 많고 파리에서 며칠 묵은 후 바로 낭트로 갈 예정이라 했다.
결과에 대한 의견을 물으니 그는 낭트는 매우 아름다운 곳이며 그곳의 신공항건설이 백지화가 된 것은 아주 잘된 일이라고 프랑스식 몸짓과 표정을 곁들여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은 파트릭이고 환경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무정부주의자라 소개하면서 아까보다 더 환하게 웃는다. 나는 속으로 다시 외쳤다. 오, 또 찾았다!
참고: 하영 - '많다'는 제주도 말소개: 본명 조찬묵, 2004년 고향 청주를 떠나 제주시 화북에서 3년 동안 거주한 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로 옮김, 2013년부터 유기농사를 준비하다가 잠시 접고 관광통역안내사(영어)로 일하면서 생태, 다크투어리즘에 관심을 둠. 2015년 제주 제2공항 발표 이후 마을 주민을 위한 대화와 정보소통의 장이 제대로 만들어지 않음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역할을 찾다가 2017년 8월 제주영상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성산지역 마을신문교육을 실시하여 마을미디어강사 2명(부산민언련)과 함께 지역주민으로 이뤄진 수강생 12명의 일원으로 '성산포소도리' 창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마을신문 ‘성산포소도리’의 수강생들과 성산지역의 제2공항에 대한 건강한 담론을 위해 만들어진 모임인 ‘성산소도리(https://www.facebook.com/JejuSSSodori/)’를 통해 배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