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은 시간의 기록이다. 순간순간의 식욕이 한 킬로그램씩 살덩이를 붙여간다. 워너비 몸매를 꿈꾸는 이들은 체중계에 발을 올리며 긴장감에 침을 삼킨다. 특히 여성들은 대형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비춰보며 한숨을 푹 쉰다.
"올 여름에 비키니 입으려면, 다이어트 진짜 해야겠다."이른바 완벽한 마네킹 몸매, 바비인형 몸매가 되기 위해서 하루에 한끼를 먹고, 먹은 것을 토해내고, 정체불명의 약을 먹는다. 다시말해, 많은 여자들에게 다이어트란 평생의 숙명이다.
그것은 타인의 평가와 시선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보편화된 미의 기준이 그녀들을 다이어트를 하도록 떠민다. 그녀들에게 살은 곧 '게으름'이며, 몸을 칭칭 감은 무거운 족쇄이며 '아름다운 여성다움'을 가로막는 돌덩이이다.
심사가 꼬인 이들은 인격의 가치를 뚱뚱하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첫 인상부터 야금야금 깎아내린다. 꽤 비대한 몸의 한 남자사원이 회사에 입사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우선 인상부터 찡그리며 "분명 게을러서 일을 잘 못할 거야. 자기 관리는 안 하는가 보지? 원래 뚱뚱한 사람들이 짜증이나 화도 쉽게 낸대"라고 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유머스러운 성격에 베스트 사원으로 손꼽히면 어쭙잖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외모하고 능력은 역시 다른가 봐" 살과 업무 처리 능력은 애초부터 상관 관계가 없다. 우리는 외모에 대해 너무 많은 편견이 뿌리박혀 있다.
"당신이 무슨 말과 행동을 하는지에 상관없이, 오직 당신의 몸만이 공적담론의 대상이 된다. 이런 비평들은 '염려'라는 말로 포장이 된다."
그들은 너무나 쉽게 '나태함'이라 말한다
책 <헝거> 저자 록산 게이는 12살에 끔찍한 성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는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아이와 그의 친구들이었다. 그녀는 숲 속 오두막에서 벌어진 그 일을 회고하며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그때 죽었다."
어린 그녀는 스스로를 따뜻하게 안아 줄 여유가 없었다. 배신감조차 느낄 새도 없이 밀려오는 죄책감은 록산을 집어삼켰다. '성폭력'이 뭔지도 모를 나이였다. 소문이 퍼지자 그녀는 학교에서 '걸레'라 조롱받았다. 그 일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마음으로 믿은 것이 죄라면 죄였을까. 자존감이 완전히 곤두박질쳐 버린 그 끝 자락은 '폭식'이었다.
"상처를 메우기 위해 머리를 비워서 음식을 먹었다. 대학생 때 시작한 식탐은 나를 더 안전하게 만들었다. 나에게 감히 접근하려는 사람이 오지 못하게 확실한 선을 그었다." - <헝거> 중
책에는 자신의 몸을 '감옥'으로, 혹은 '성벽'이라 표현한다. 매일 들끓는 식욕은 매 순간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을 탐하게 했다. 자신을 둘러싼 살집이 두꺼워질수록, 그녀는 갑옷을 입은 마냥 안정되고 보다 만족했다. 아무도 록산과 접촉하려 하지 않았다. 즉, 성폭력을 당할 위험성이 없을 거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당시 록산의 살찐 몸은 곧 그녀에게 믿을만한 방어막이었다. 어쩌다 홀쭉하게 살이 빠지면 "나는 약해졌고, 위험대상이 될 것이다"라는 공포와 절망에 휩싸였다. 성폭력의 트라우마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녀가 살이 찌도록 명령했다. 더 안전해지기 위해, 더 안심할 수 있게.
그것은 '나태함'이나 '게으름'같은 게 아니었다. 즉, '살이 찌게 된 이유'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살찐 몸 속의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의 록산은 "여성이 자신의 몸을 편안히 여기는 것"을 보다 중요히 여긴다.
타인이 당신의 몸에 형편없는 가치를 평가하고, 불편한 시선을 내비친다고 해서, 스스로 편하고 안정됨을 느끼는 자신의 몸을 되려 비난할 필요가 없다. 시시각각 관리의 대상으로 여기며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이 편하게 느끼면 충분하다. 있는 그대로 스스로 받아들이면 된다. 어디까지나 '내 몸'이니까.
'뚱뚱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현실에선 록산 게이가 '뚱뚱하다는' 것과 더불어 '성폭력' 사실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공감해 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온라인 속에서 익명으로 그녀의 몸에 대해, 그리고 같은 피해자들과 그날의 일에 대해 공유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을 알아주는 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록산 게이는 비만인들의 고달픈 세상살이를 사실적으로 풀어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혐오를 극심하고도 담담하게 표현했다. 하루는 자신을 아껴준 지인이 손톱에 예쁜 매니큐어를 발라주자, 그녀는 내심 좋아하면서 금세 손을 움켜쥐며 가렸다. 자신에게 '이런 건'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였다. 그녀는 사회가 비만인들을, 특히 비만인 여성을 어떤 혐오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비행기를 탑승한 작은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그녀의 좌석이 통로 쪽으로 배정이 되어 착석했는데, 옆에 탄 중년 남성이 불안한 마음으로 흘깃거리며 승무원에게 말했다. "위험상항이 발생하면 그녀때문에 도망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 순간 그녀는 사람이 아닌 생존의 '걸림돌'이었다. 단지 옆에 탑승하기만 해도 사람들은 '답답하다는' 속내를 드러내며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그 후로 록산은 좌석 두 자리씩 예매하는 최선의 배려를 선택했다.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는 존재, 그들은 그렇게 매일 매 순간을 평가받는다.
"내가 성폭력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 <헝거> 중
결국 그녀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살을 빼려 노력했다. 소량의 음식 섭취를 하거나, 손가락을 목구멍에 욱여넣으며 토해냈고, 스파르타식 헬스에 온 몸을 맡겼다. 살이 빠질 때마다, 성폭력 당할 당시 느꼈던 트라우마가 되살아났다. 190cm에 261kg. 사람들은 그녀를 그녀 자체가 아닌 숫자로 가치평가할 뿐이었다.
그 시선 속에서 그녀는 끊임없는 자기혐오에 절망하고 잘못없이 상처받아야만 했다. 성폭력 당했던 그날의 어린 소녀도 '록산 게이'였고, 지금의 살찐 그녀도 '록산 게이'이다. 조금도 그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사회는 그녀 스스로를 혐오하도록 부추겼다. 단지 살찐 그 자체로는 존중받을 수 없다는 듯이. "뚱뚱함"은 여성이라는 가치마저도 훼손해 버린듯이.
다이어트 프로그램은 날씬한 몸매만을 행복과 성공으로 여긴다. 반면에 뚱뚱한 몸매를 지닌 여성들은 우울한 표정 투성이로 묘사된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몸은 충분치 않으며, 수선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체중감량에 대한 욕망을 여성 정체성의 기본적인 요소로 바라본다.
비만을 표현하는 "돼지", "비곗덩어리", "멧돼지" 등의 노골적인 속어와 모욕적인 언어도 만연하게 방송에 나온다. 록산은 이를 "뚱뚱한 사람들의 몸이 비정상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라 질타했다. 뚱뚱한 몸은 언제나 언론에서 개그를 위한 웃음 거리로 이용될 뿐이다.
록산 게이는 "여성들이 천편일률적인 비이상적 기준에 밀어 넣지 않기를 바란다"라며 "다양한 체형을 포함하는 더 넓은 의미의 미의 정의가 있기를"이라고 바란다. 어린 아이들조차 살이 쪘다는 이유로 자기혐오에 빠지고 놀림을 당하는 사회에 던지는 일침이 아닐 수 없다.
자기 혐오를 넘어 극복하기까지그녀는 이제, 숲 속 오두막의 작은 소녀에게 따스한 위로를 건넬 수 있다. 여전히 당시의 참혹했던 느낌은 불현듯 떠오르지만 그녀는 결국 이겨냈고, 세상에 당당히 걸어나왔다. 아픔을 꺼내 놓고 피해자들과 연대하며 공감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또 스스로 편해지는 것을 우선시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녀의 성공을, '뚱뚱한 흑인 여성'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며 "결국 별 수 없다"고 깎아내리는 이들이 많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며, 그 존재의 가치를 세상에 실현해 나가는 중이다.
뚱뚱하다는 이유가 사람의 가치까지 떨어뜨릴 수 없다고. 이미 뿌리박힌 혐오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아이들까지 살이 쪘다는 비난으로 소중한 자존심을 떨어뜨리지 말자고. 절대로 너희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어른들의 시선이 변해야 한다. 어른들이 포용으로 감싸안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야한다. 자기 몸에 대한 솔직하고 강렬한 고백 <헝거>.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또 하나의 편견과 관점을 바꾸어 나갈 것이라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세계적으로 화제가 베스트셀러 <나쁜 페미니스트> 작가 록산 게이의 새로운 신작 <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