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박도 기자의 사진 근현대사' 27회부터 29회까지는 전란 중의 민간인 생활상으로 꾸며봤다. 서방 종군 기자들 카메라 앵글에 담긴 사진을 게재한다. 이에 곁들여 한국전쟁 중 서울대학교 사학과 조교수로 인공(人共) 치하 전란을 몸소 겪은 김성칠 선생의 6.25 일기(<역사 앞에서>)를 싣는다. 글과 사진으로 당시의 생활상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 기자 말
식량운반 돌격대[1950년 8월 14일] 쌀을 한 줌 넣고 거기다 호박이랑 호박순이랑 다른 푸성귀를 듬뿍 넣어서 머얼거니 쑨 죽이 이즈음 우리의 상식(常食, 늘 먹는 음식)처럼 되었다. 오늘내일로 양식이 동이 나는 것은 아니로되 앞길은 막연하고, 아이들은 식욕이 왕성하고, 하여 이러한 비상 조치를 취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거나마 끼니를 잇는 것이 마을 사람들에게 오히려 송구스러울 지경인데 아이들은 절박한 사정을 알 턱이 없다.
"정녕 쌀알을 넣긴 넣었는데 워낙 잡초가 무성하여 보이지가 않는구려" 하고 죽을 푸면서 아내는 서글픈 웃음을 짓는다. 처음 얼마 동안은 아이들이 다소곳하니 받아먹기에 "그놈들도 전쟁을 아는가 보다" 하고 한결 다행히 여겼더니 이즈음은 죽상을 대하면 외면한다. 그래도 잘 타이르면 봉아(아이 이름)는 그러려니 하고 술(숟가락)을 들지만 목아(아이 이름)는 아무리 말해도 본체만체다. 정 말하면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언제까지 이래야만 할는지 앞길을 생각하면 아득할 뿐이다. - 위의 책 163~164쪽
[1950년 8월 28일] 인민보(人民報)에 식량운반 돌격대에 관한 기사가 사진을 넣어서 실려 있다. 그 내용은...
"경기도 여주군의 농민들이 강도 미제와 그 주구인 이승만 매국도당들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서 그들을 하루바삐 격멸하려면 자기네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궁리한 결과 식량을 모아서 서울에 나르기로 하고, 70 노인이랑 열세 살 먹은 아이랑 젖먹이 어린이를 가진 여인이랑...이러한 사람들이 쌀 두 말 혹은 세 말씩을 혹은 지고 혹은 이고 이 8월의 불볕 아래 200리 길을 걸어서 서울에까지 가져왔다. 오는 도중에서 혹은 병들어 죽고 혹은 폭격에 희생이 되었으나 이 사람들은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더 침략자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서 맹세코 그들을 쳐 무찌르고야 말 결의를 새롭게 하고 있다고."이런 기사는 광적인 열성분자가 있어서 이거나마 자랑이라고 쓴 것인지, 또 혹은 반동 기자가 있어서 인공국의 내막을 폭로하려고 일부러 쓴 것인지 우리로선 분간할 길이 없다. 이러한 기사를 읽고도 인공국의 정치는 참 훌륭하다고 생각할 어수룩한 친구가 세상에 과연 있을 것인지?" - 위의 책 183~184쪽
덧붙이는 글 | 여기에 수록된 사진 이미지들은 눈빛출판사에서 발간한 박도 엮음 <한국전쟁 ‧ Ⅱ>에 수록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