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미투는 불이 붙었는데 과거의 미투는 묻혀버렸잖아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서..."추혜선 정의당 대변인이 21일 고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하는 국회 브리핑을 마친 뒤 건넨 말이다. 정의당도 진상규명에 힘을 싣겠다고 했다. 추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가해자 중 누구도 죄값을 치르지 않았다"라며 "사건의 진상을 재조사하고 가해자를 엄중히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고 장자연 사건은 지난 2009년 3월 7일 신인 배우였던 장자연씨가 자살하며 남긴 유서가 보도되며 시작됐다. 유서에 따르면 장씨는 방송·연예계는 물론 언론계와 재계 인사 수십 명으로부터 접대와 성상납을 강요 받은 것으로 전해져 파문이 일었다. 당시 사회적 파장은 오늘의 미투 운동(metoo, 나도 고발한다)처럼 컸지만 여론이 점차 사그라들면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은 흐지부지됐다. 검찰은 성착취를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은 이들에 대해선 기소조차 하지 않았고 성폭행이 아닌 폭행과 명예훼손죄만으로 일선 기획사 대표와 매니저만 기소하고 징역형을 받아내 '봐주기 수사' 논란도 일었다.
이후 2011년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을 '장자연 리스트' 중 한 명으로 지목하고 이에 조선일보 측이 이 의원과 일부 언론매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하면서 논란이 재점화되는 듯했지만, 이렇다 할 추가 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채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여성계가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았다"라며 최근 다시 고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사법당국에 촉구하고 나선 이유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고 장자연씨의 한 맺힌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21일 현재 17만 3천명이 서명에 동참하고 있다.
추미애 "장자연 사건은 미투 운동의 시발...검찰, 즉각 수사하라"추혜선 대변인의 논평처럼 정치권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고 장자연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에 응답하는 모양새다. 최근 공식석상에서 이 사건을 가장 많이 언급한 이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추 대표는 지난 1월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장자연씨의 죽음이)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란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검찰은 부실 수사에 대한 반성과 함께 즉각 재수사를 착수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다음은 당시 발언 내용이다.
"고 장자연 사건에 대한 검경의 부실수사 의혹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09년 장자연 양은 기획사 대표로부터 재벌기업인과 언론인, 문화계 인사들에 대한 술 접대와 성상납을 수시로 강요 받았다고 했다. 이러한 강요와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장자연양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검찰은 장자연 양의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만 기소하고, 유서에 언급된 9명의 유력 인사들은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자신의 죽음으로 억울함을 알리려 했지만 비정한 우리 사회와 사법당국은 끝내 이를 외면한 것이다. 당시 거론된 유력 인사들이 권력과 재력을 이용해 법망을 피해갔다면 이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적폐의 또 다른 형태라 할 것이다. 검찰은 지난날 부실 수사에 대한 반성과 함께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해 재수사에 즉각 착수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연예계뿐만 아니라 그림자처럼 존재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성폭력에 대해 '미투' 운동이 제대로 진행되길 바란다. 민주당이 일상의 성폭력, 성희롱과 맞서 싸우는 여러분의 편이 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추 대표는 지난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한 번 더 장자연 사건을 언급했다.
"어제 3.8 여성대회에서 '미투 운동이 지속돼야 한다. 또 정치권도 여야 모두 이에 호응해서 지지하겠다. 명예훼손죄나 무고죄, 성범죄에 대해 사실적시에 대한 잘못된 조항을 개선하겠다'라고 모두 입을 모아서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바란다. 검찰은 고 장자연양 사건에 대해 하루빨리 신속하게 수사를 해야 될 것이다. 추악한 권력의 타락을 온몸으로 막아내고자 했으나 끝내 숨진 고 장자연양에 대해 미투 운동이 대한민국에서 호응을 얻었던 것도 장자연 양의 숨은 사연 때문이었다. 검찰은 미투 운동에 시발이 된 장자연 양 사건에 대해서 여지를 두지 말고 과감하게 수사해주기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추 대표는 검찰의 재수사를 거듭 촉구하며 장자연 사건을 "미투 운동의 시발"이라고 표현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김갑배 위원장)가 발족돼 재수사의 현실적 여건도 조성됐다. 다음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한 시민이 올린 글귀다.
"어디선가 또 다른 '장자연'이 고통을 느끼고 있지 않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까. 진실을 밝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