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의 불법 자금 수수 과정은 아주 치밀하고도 조직적이었다.
검찰이 지난 19일 청구한 구속영장에 따르면, 110억 원대 뇌물 수수 혐의를 받는 이 전 대통령이 '불법 모금'을 계획한 건 대선 후보 시절이었다. 지난 2007년 8월, 박근혜 후보를 따돌리고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그는 이때부터 당선이 확실시 되는 유력 후보 지위에 올랐다. 자연스럽게 각종 대가를 바라고 줄을 대려는 사람이 늘어났고, 이 전 대통령은 이들이 건네는 돈을 안전하게 수수할 '시스템'을 갖추기로 한다.
직계가족 동원... '뒤탈' 없도록 사전 검증도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최측근 그룹과 역할을 나눈다. 자신이 자금 수수를 총괄 감독하고 친형 이상득 전 의원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 회장, 송정호 전 법무부 장관에게 제공자 '물색'을 맡겼다. 이렇게 연결된 대상으로부터 돈을 받아오는 '수금자'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었다. 모인 돈은 '금고지기'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이 관리했다. 대상은 대기업보다는 뒤탈이 없는 개인이나 중소기업에서 선별하기로 했다. 지난 2003년 불법 대선 자금 수사 때 여러 정치인이 형사 처벌 받은 전례를 참고한 기준이었다.
그렇게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부터 인사 청탁 등 명목으로 22억 6230만 원을, 레미콘 회사를 운영한 김소남 전 의원으로부터 공천 대가로 4억 원을, 건설사 등을 가진 최등규 대보그룹 회장으로부터 4대강 관급 공사 수주 대가로 5억 원을 건네받았다. 강연 등을 이유로 몇 차례 방문해 안면이 있던 능인선원 주지 지광스님에게도 불교대학 설립에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3억 원을 받았다. 산업형 바닥재 생산 업체를 운영 중인 손병문 ABC상사 회장에게는 해외 사업 진출 등에 도움을 주는 명목으로 2억 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총무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과 전혀 인적 관계가 없는 손 회장이 돈을 받아도 탈이 안 날 사람인지 확인하려고 주변을 탐문하기도 했다. 평소 알고 지낸 전경련 임원에게 손 회장의 사업 내용과 인적 성향 등을 조사해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돈을 받아도 좋다는 승인이 떨어지자 자금을 수수했다.
불법 자금 수수에 직계 가족이 동원된 것도 특징이었다. 이팔성 회장이 건넨 금품 중에는 1230만 원 상당의 의복도 포함됐다. 대통령 취임을 앞둔 2008년 1월, 이 회장이 삼청동 공관으로 디자이너를 데려가 가봉, 제작해 김윤옥 여사에게 전달한 것이다. 이 전 대통령 양복 5벌과 코트 1벌, 사위 2명에게 줄 양복 2벌이다. 우리금융지주 회장 연임을 위해 건넨 돈 중 1억 원은 241만 원짜리 루이비통 가방에 5만 원권 현금으로 담아 전달했다. 맏사위 이상주 삼성전자 전무(변호사)가 받아와 큰딸 주연씨를 거쳐 김 여사에게 최종 전달되는 경로였다.
이 전 대통령은 자금 제공자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한편, 빼놓지 않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먼저 이팔성 회장에게는 당선인 사무실에서 만나 각종 현안에 대해 "내게 복안이 있다" "기다려달라"라고 화답했다. 검찰은 그가 대통령 당선인을 3차례 독대한 건 대단히 이례적이라고 봤다. 비슷한 시기 지광스님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접니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취임 이후인 2008년 12월에는 손병문 회장의 차남 결혼식에 대통령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