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호기심에 역술인에게 생년월일시를 슬쩍 건네거나, 신문 속 '오늘의 운세'를 조용히 펼쳐본 적 있나요? 왜 우리는 '그런 거 안 믿어' '운명은 만들어가는 거야' 하면서도 미래를 궁금해하는 걸까요? 사주에 울고 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
얼마 전 친구가 사주 잘 보는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다. 뭔가 궁금한 게 있는 모양이다. 나는 우리 오빠를 추천했다. 우선 공짜여서 부담이 없기도 하고 내 사주뿐 아니라 가족들 사주도 족집게처럼 맞추니 내게는 오빠가 가장 용한 사주쟁이인 셈이다.
결국 오빠가 그녀의 사주를 봤다. 다행히 그녀의 사주는 앞으로 점점 좋아지고 있어서 전달하는 나도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친구는 마치 오빠가 자기를 아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자신의 성향과 처지가 너무 맞는다며 놀라워했다. 이어 그녀의 남편, 동생, 올케 그리고 그녀의 친구까지 줄줄이 소시지처럼 줄지어서 사주를 봤다. 싱크로율 95%. 그녀도 나도 놀라서 소름이 돋았다.
내 오빠는 비혼으로 부모님과 살고 있다. 그가 40대 전후가 되었을 무렵, 원하는 일들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 마치 누군가 자기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하는 일마다 쫓아와서 훼방 놓는 것 같았다. 하도 답답해서 시작한 사주 공부다. 원래도 독서를 좋아하고 공부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뛰어났던 오빠다.
오빠가 사주를 봐주는 이유
오빠가 본 자신의 사주는 그때 그가 느끼는 그대로였다. 안개가 잔뜩 끼어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 발걸음마다 돌부리가 솟아 있어 넘어질 수밖에 없는 상태. 10년마다 변한다는 대운이 오빠에게는 매우 좋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인 건 운이 주기적으로 변한다는 것. 숨 막히게 힘든 상황도 지나고 나면 다시 볕이 든다는 것. 오빠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꼭 내 노력이 부족하거나 나한테 문제가 있어서만은 아니구나 생각이드니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좀 더 긍정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힘이 생겼다. 이 점이 오빠가 다른 사람들의 사주를 봐주는 이유이다. 그렇게 위로받고 견디라고. 자기가 그런 것처럼.
오빠는 주변 사람들이 신세 한탄을 할 때마다 한두 명씩 그들의 사주를 봐주기 시작했다. 물론 재능기부(?)다. 묘하게 그들의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일이 많았다. 자신의 운명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현재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다.
특별한 걱정 없는 사람들은 사주에 관심이 없다.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 없이 바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남의 사주를 봐주면서 늘 오빠가 하는 말이 있다. 행여 지금 너무 힘들더라도 운은 항상 움직이고 바뀌니 묵묵히 하던 일 하면서 때를 기다려라.
최근, 간호사인 나는 보건소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쟁률이 만만치 않았지만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다. 오빠와 통화하던 중 슬쩍 물었다.
"내가 보건소에 합격할 것 같아요?" "안 돼. 너는 사주에 '정관(正官)'이 없어서, 흔히들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안 될 거 같아. 대신 '상관(傷官)'은 강해서 프리랜서로 글은 계속 쓰면서 살 수 있으니 글이나 열심히 써."뭔가 서운하고 오기가 생겼다. 내가 꼭 합격해서 인간이 사주대로만 사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었다. 서류합격하고 면접까지는 갔으나 결과는 탈락.
'멘붕'이 왔다. 진짜 사주팔자라는 게 있는 걸까. 오빠가 나를 떨어뜨린 것도 아닌데 심통이 나서 며칠간은 연락을 안 했다. 이럴 땐 오빠도 진짜 점쟁이처럼 내 맘을 잘 알고 잠잠하다. 며칠 후 엄마랑 통화를 하며 자연스럽게 오빠랑 다시 통화 했다. 오빠는 웃었다.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 그나마 그런 게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야. 안 되는 일로 안달복달하지 말고, 그래 봐야 몸만 상해."맞다. 지금 당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이미 지나간 버스 쳐다본다고 멈춰주지 않으니 뛰어가든지 택시를 타든지 내 길을 찾아가면 그뿐. 앞이 막히면 옆으로 돌아가면 되지 뭐.
사람이 간사한 게, 내가 뭔가 부족해서 떨어진 게 아니고 운명이 그렇다고 하니 아쉽기는 해도 위로가 되긴 했다. 마치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모든 걸 신의 뜻으로 돌리면 마음이 편해지듯이. 아... 이래서 사주를 보나 보다.
정해진 운명대로 사는 걸까며칠 전 고3인 둘째 아들이 해군사관학교를 지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해사를 다니는 선배들이 학교에 와서 설명회를 했단다. 아직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이나 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하던 차에 선배들의 방문에 귀가 솔깃한 모양이다. 다른 학교 선배들도 많이 왔는데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더니 이번에는 눈을 반짝이며 흥분해서 내게 말한다. 나는 진지한 아들의 표정을 살피며 응원의 목소리를 보탰다.
다음 날,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득달같이 오빠에게 전화했다. 벨이 울리는 동안 속으로 바랐다. '도사님, 이번에는 제발 좋은 점괘를 주세요.' 행여 부정 탈까 봐 경건한 마음으로 숨을 가다듬었다. 이러다가 뭔가 안 좋다고 하면 부적까지 쓸 기세이다. 오빠 도사님은 '합격'할 운이 강하다고 했다. 절대 복채를 안 받는 오빠지만, 이렇게 좋은 운세를 공짜로 받으면 운이 사라질까 봐 커피와 피자 쿠폰을 보냈다. 계약서에 도장을 '꽝' 찍어서 물릴 수 없게 만드는 심정으로.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이 좋은 소식을 전했다. 평소에 이런 말을 듣지도 믿지도 않는 아이였지만 입가에 미소가 스치는 걸 봤다. 아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선생님과 상담도 했다고 한다. 체력장을 대비해 운동 스케줄을 세우고 과목별 학습전략과 적절한 공부시간을 배분했다. 여태 본 적 없는 모습이다. 사주가 맞든 안 맞든 지금 아이에게는 이 점괘가 긍정의 에너지가 된 것 같다. 그것만도 사주가 '열일'했단 생각이다.
근데 모든 게 정해져 있다면 사는 게 너무 맥 빠진다. 어차피 운대로 돌아가는 거라면 열심히 살 필요도 없는 거 아닌가. 물어볼 사람은 오빠뿐. 사주에 대한 오빠의 생각은 이렇다.
"사주는 있는 것 같아. 그러나 운명이 나타나는 모습과 타이밍은 사람과 환경에 따라 각양각색, 천차만별이라 하나하나까지 정해진 건 아니라고 생각해. 내 능력 밖인 줄 모르겠지만 사주와 정반대인 삶을 사는 사람도 있고 전혀 안 맞는 사람도 있더라. 다만 내가 사주를 보는 이유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쉬울 수 있고, 받아들이면 편할 때도 있고, 때때로 자책감을 덜어주고, 무리한 기대를 합리적인 기대로 바꿀 수 있다는 점 때문이야."
인터넷을 찾아보니 생년월일시까지 같은 사람이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기사가 있다. 같은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두 사람은 입대일, 경찰 임용일, 결혼일, 승진일뿐만 아니라 아내의 나이도 똑같다고 한다(관련 기사 :
어찌 이런 일이... 생일.입대.결혼날까지 '데칼코마니' 두 경찰).
하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사람이 정해진 운명대로 사는 건지 어떤 건지. 정해져 있다면 자꾸만 거스르고 싶은 청개구리 같은 심보가 생긴다. 최근 주변 사람들의 사주를 전달 해주면서 마음으로 들리는 것들이 있다. 상대의 마음이 정리되는 소리, 한숨이 심호흡이 되는 평온해지는 소리, 앞으로의 길을 찾는 소리들. 어쩌면 이런 건지도 모르겠다. 사주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을 응시하고 위로받고 다시 힘을 내는 것 .
운명이 있거나 말거나 괘념치 않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간절히 바라는 게 있다.
내 아들의 사주가 이번에는 꼭 맞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