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직원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시장님이 트렌드를 잘 모르셔서 그래요'라는 말을 듣곤 한다. 나름 노력한다고 했지만 그들에게는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 '잘 모르는 것들'을 제대로 알아보려고 한다. 젊은이들의 문화를 함께 즐기고, 청년 사업가의 고민을 더 가까이에서 듣고자 한다. 이들의 삶과 고민을 이해하고 이를 정책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작은 노력부터 시작해보려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아이돌 '지코'를 비롯한 아홉 명의 청년 샘에게 청춘수업을 받았다. 시장실로 불러 특별 과외를 받은 게 아니라 퇴근길에 직접 찾아다니면서 한 수 한 수 배웠다. 청년을 이해하고 이를 시정에 반영하기 위한 박 시장의 퇴근길 청춘수업은 작년 10월부터 올 1월까지 장장 4개월간 진행됐다. 결석 한 번 없이 청춘수업을 잘 마친 그에게 한 청년은 '어, 쇼를 하지 않는 정치인도 있네'라고 했다.
박 시장은 이 인터뷰를 카카오 <브런치>에서 4개월간 연재하면서 200만 뷰 이상을 달성했다. 그리고는 지난 2월 <몰라서 물어본다>(행복한책읽기)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책을 "청년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분투기"라면서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배워야 한다"라고 했다.
박 시장은 기자와의 26일 서면 인터뷰에서 "대다수 기성세대들은 자녀 혹은 후배들의 선택과 결정을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러나 내가 만난 9명의 청년들, 이제는 나의 선생님인 그들은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더 많은 경험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청년 샘들을 높이 평가했다.
서울시청 직원들에게 원순씨로 불리기를 원하는 박 시장은 "청년들이 어른들과 대화하기를 기피하는 이유 중의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내가 청년들과 인터뷰에 성공했다면 그것은 존중하고 경청했기 때문"이라며 청년을 이해하려면 말은 줄이고 귀는 열라고 귀띔했다.
박 시장은 "이 책은 젊은 세대들을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부모 세대를 위한 책"이라면서 "더 정확히 말하면 '꼰대 부모를 둔 자녀들이 부모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청년 자녀들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 읽어보라"고 부모 세대에게 권한 박 시장은 "책 홍보를 위해 과대 포장을 했다면 환불해 드리겠다"고 유모어를 한 방 날렸다.
박 시장과 인터뷰 한 아홉 명의 청년들은 ▲ 지코(아이돌 가수이자 음악감독) ▲ 씬님(뷰티크리에이터) ▲ 김시현(사진관 '시현하다'의 포토그래퍼) ▲ 진경환('72초'의 감독이자 배우) ▲ 아방(팬덤을 가진 일러스트레이터) ▲ 신상훈(데이팅 앱 '아만다'를 만든 청년 CEO) ▲ 기남해(패션 브랜드 '바스통'의 패션디자이너) ▲ DJ소울스케이프('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된 DJ 겸 프로듀서) ▲ 무적핑크(웹툰 작가)
청년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유쾌한 분투기
- 서울시장으로서 바쁠 텐데 오랜 시간을 들여 청년들을 만난 까닭은 무엇인가."작년 10월부터 올 1월까지 장장 4개월간 9명의 젊은 전문가들을 직접 인터뷰했다. 연말연시다 보니 만찬 일정이 많아 밤 시간대를 주로 이용했다. 보통 밤 9시쯤 시작해 11시 정도에 끝났다. 1시간 정도 예상했지만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청년 세계에 대한 호기심까지 발동하면서 인터뷰 시간이 길어졌다.
그들은 나보다 어린 사람이 아니라 스승이었다. 각 분야의 전문가로 발돋움한 지코를 시작으로 씬님, 김시현, 진경환, 아방, 신상훈, 기남해, DJ소울스케이프, 무적핑크 등 아홉 명의 선생들은 이 시대의 청춘들을 이해하는데 물꼬를 터준 소중한 선생님들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청년들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더 열심히 만나고 더 이야기를 들을 계획이다. 청년뿐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열린 자세로 이야기를 듣겠다."
- 박주민 의원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이 책을 "청년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유쾌한 분투기"라고 평했다. 가장 인상적인 인터뷰가 있다면."인터뷰를 하면서 놀랄 때가 꽤 많았다. 요즘 청년들의 문화와 유행을 잘 모르는 것은 당연했지만 직업관이나 인생관이 우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가령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보다는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일거리'를 통해 행복하고 싶다는 점은 우리 어른들의 생각과는 크게 다른 점이었다.
또 다른 점은 우리가 청년이었던 시절에는 정답이 하나였지만 지금은 정답 하나로는 문제를 풀 수 없는 사회라는 점이다. 다양한 답을 가진 청년들을 보면서 청년들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내가 가진 틀 안에 억지로 끼워 맞춘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청년들을 섣불리 단정 짓기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더 자주 듣고, 더 많은 기회를 주면서 그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의 역할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인터뷰가 인상적이었고 소중했다. 인터뷰이마다 내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고 그들의 눈을 통해 새로운 시선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인상을 남긴 인터뷰를 꼽으라면 DJ소울스케이프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느냐'라는 질문과 답변이었다. 후배 DJ들이 그를 존경한다고 해서 이런 질문을 했는데 그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그는 자신을 기억해주기 보다는 자신이 소개해준 음악을 기억해 달라고 했다. 개인의 유명세가 아니라 'DJ소울스케이프가 한 작업'을 남기고 싶다는 말로 이해했다. 사실 나를 포함한 정치인들은 본인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을 다 잡는 계기가 됐다. 나는 어떤 서울시장이 될 것인가? 어떤 정치인이 될 것인가? 과연 무엇을 남길 것인가? 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박원순이란 이름이 아닌 정책으로서, 또는 결과물로서 기억되고 싶다.
평소 입버릇처럼 하고 다니는 말이 있다. 청혼할 때도 썼던 말인데 '세상의 매듭을 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다.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고 이 마음을 지켜나가고 싶다."
"어, 쇼하지 않는 정치인도 있네...한 방보다는 공동체 복원이 더 중요"
- 청년들은 박 시장을 어떤 정치인으로 이해하고 있었나."직원들에게도 '원순씨'로 불리길 원할 정도로 친근하고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젊은이들에게 나는 '높은' 사람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당신에게 박원순이란?'과 같은 질문을 했는데 예상과 다른 답변을 들었다. 아직은 열정을 갖고 뛰어다니는 청춘이라고 생각했는데 청년들에게 나는 유명 정치인이고 최장수 서울시장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이미 기득권이고 기성세대였다.
그래도 인터뷰를 마친 청년들은 '실제 대화를 해보니 이런 분이 서울시장이라서 안심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정치인의 소탈함은 쇼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등의 소감을 밝혔다. 이런 평가를 들으면서 더 낮은 자세와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나눈다면 청년들과 소통하고 교감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란 자신감이 들었다."
- 선거를 앞두고 열리는 대다수 정치인들의 북콘서트는 세 과시용이다. 그런데 박 시장은 지난 3월 11일 연 <몰라서 물어본다> 북 콘서트에 청년 40여 명만 초청했다. 왜 그렇게 조촐하게 진행했나."반문을 하고 싶다. 원래 출판기념회는 새로 나온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아닌가? 본질에 충실한 북콘서트를 진행하고 싶었다. 지난겨울 청년들을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그들과 나눈 소중한 이야기를 청년들과 나누고 싶어서 조촐한 자리를 만들었다.
물론 더 많은 분들을 모시고 내가 얻은 배움과 깨달음을 나누고 싶었지만 시기가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시기여서 주의를 기울였다. 나중에라도 기회가 된다면 부모 세대와 함께 이 책을 읽으면서 청년들의 꿈과 희망, 아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 요즘 정치인들은 연예인처럼 인기를 얻기 위해 방송 출연을 한다. 그런 점에서 박 시장은 인기를 소홀히 한다는 인상이 짙다. '정치인으로서 임팩트 또는 한방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나도 꽤 열심히 활동하는데…. 기자가 나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지난 1월에는 MBC-TV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빵빵 터트렸고 그로 인해 초등학생들이 사인해달라고 할 정도였다. 사실, 나는 인기 발언 혹은 정치 발언을 잘하지 않는 편이어서 언론과 방송의 주목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앞서 말했지만 '박원순'이라는 이름을 남기기보다는 서울시민의 삶을 바꾼 시장으로 남고 싶다. 시민의 삶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정책을 만들고 실현시키는 것이 박원순 개인의 이름보다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문제들로 가득 차 있다. 인기 발언과 정치적 발언으로는 이런 난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나의 고민은 공동체 복원에 맞춰져 있다.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살벌한 삶을 '사회적 우정'을 나누며 사는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우리의 삶과 사회가 한 방으로 바뀔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한 방을 터트리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기 때문에 정치적인 임팩트보다는 서울 시민의 삶을 변화시키는, 작지만 소중한 변화가 일렁이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청년들이 '사회적 우정'을 나누며 사는 서울로 만들고 싶다
- 청년에게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 그리고 어떤 도시로 만들고 싶은가."혼자 잘 사는 도시가 아니라 '사회적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도시로 만들고 싶다. 경쟁이 아닌 사회적 우정을 나누기 위해서는 청년들에게 여유와 기회를 주어야한다.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의 태도를 일방적으로 매도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도전하고 실패 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조성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 길을 택했다. 청년수당 뿐만 아니라 2030 역세권 청년주택, 캠퍼스타운, 혁신파크, 서울창업허브 등 청년들에게 한숨 돌릴 여유를 주고, 스스로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인프라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 민주당 서울시장 경선 후보들이 '3선 피로감'이란 프레임을 사용하고 있고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가는 것 같다. 대중들은 성실하고 정직한 정치인을 원하지만 동시에 열광할 수 있는 무엇인가 보여주기를 원한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인기를 얻기 위한 정치를 하지 않았다.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왔다. 그리고 박원순의 정치적 이익과 진로가 아닌 우리 사회에 얽혀있는 여러 가지 매듭을 풀면서 시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정책 실현에 최선을 두고 있다.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는 대형 프로젝트를 펼쳐야 한다. 그러면 치적도 쌓이고 인기도 얻을 수 있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길은 나의 길이 아니다.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으면 좋겠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인기와 치적이 아니라 시민들의 소중한 삶이다.'3선 피로감'이란 프레임이 등장했지만 거기에 신경쓰기 보다는 시민들의 조용한 지지와 성원을 무겁게 느끼고 있다. 그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나의 길을 갈 뿐이다.
얼마 전에 젊은 비서관이 내게 물어왔다. 그는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로서의 나의 행적을 찾아봤다면서 어떻게 그런 희생의 삶을 살아왔냐고 물었다. 그래서 '희생한다고 생각했다면 그런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했고 즐거웠다. 내가 고민하고 실천해 온 삶의 결과로 누군가가 행복해진다면 그것조차도 내겐 행복이다.'라고 답했다."
꼰대로 살 것인가? 인생 선배로 살 것인가?
- 기자에게도 20대 아들과 30대 딸이 있다. 나름 아들딸을 이해한다고 노력하지만 아빠를 종종 꼰대 취급한다. 사실, 우리 아버지들은 살아온 삶과 고지식함을 강요한다. 자녀 혹은 청년들에게 꼰대가 아닌 인생 선배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인생 궤적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방식을 후배들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을 꼰대라고 한다. 꼰대 짓의 핵심은 결국 '강요'일 텐데, 자녀나 청년들에게 자신의 경험담과 노하우를 전달하되 강요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들의 방식을 함부로 평가하기 보다는 존중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다양성을 인정할 때 우리는 꼰대가 아닌 선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말은 그렇지만 사실 나도 참 쉽지 않더라. 대개의 부모와 어른들은 자녀와 청년들과 의견이 다를 경우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지위를 이용해 강요하고 결국엔 대화가 중단되면서 자녀와의 갈등이 깊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게 바로 갑질이 아닐까. 자신의 생각이 옳다면 더 이해를 구하고 그래도 반대하면 왜 반대하는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청년들이 어른들과 대화하기를 기피하는 이유 중의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청년들과 인터뷰에 성공했다면 그것은 존중하는 자세로 경청했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어떻게 서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다른 시대를 살아오면서 다른 가치와 신념을 가진 세대가 서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통의 양을 늘리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다음카카오의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에서 지난 4개월간 이 책 인터뷰 연재를 통해 200만 뷰 이상을 달성했지만 책은 베스트셀러에 들지 못했다. "원래 내가 유명한 초판클럽 멤버다. 시장으로서 인기는 괜찮은 편인데 작가로서 인기는 별로다. '노잼'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럴까. 책을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젊은 세대들을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부모 세대를 위한 책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꼰대 부모를 둔 자녀들이 부모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 청년 자녀들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면 좋겠다. 책 홍보를 위해 과대 포장했다면 환불해 드리겠다~^^."
- 우리 어른들은 청년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청년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청년들을 이해하는 척, 위로하는 척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귀 기울이면서 공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통은 경청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기회와 권한을 주어야 한다. 청년을 수혜의 대상으로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 스스로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주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성세대들은 자녀 혹은 후배들의 선택과 결정을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내가 만난 9명의 청년들, 이제는 나의 선생님인 그들은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더 많은 경험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인정하고 보다 많은 기회와 권한을 줄 수 있을 때 청년들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청년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는 것은 우리 기성세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