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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를 뿐 틀린 사람은 없어요."슈퍼주니어의 맴버 김희철이 지난 17일 방영된 KBS <1%의 우정>에서 한 말이다. 프로그램은 상반된 성향의 두 사람이 만나 함께 하루를 보내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돈독해지는 우정을 다룬다. 이날 방송에서는 희철과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가 출연해 헤어숍에서 두피케어를 받고, 실내 양궁장에서 양보 없는 시합을 벌였다.
예능인과 탐사보도 기자의 만남. 언뜻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 기자는 경찰서 출입과 인터뷰를 위해 몇 시간 동안 밖에서 취재원을 기다리는 일명 '뻗치기' 등 기자 생활로 겪은 갖가지 에피소드를 전했다.
프로그램은 '소통'에 방점을 뒀다. 아무리 성격이 모난 사람이라도 혼자 살 수 없다. '인간(人間)'이라는 한자만 보더라도 사람은 개인 그 자체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 말하고 듣고, 의견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평가하고, 관계를 이어나갈 지 판가름 한다.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심리학에서 자주 쓰이는 '초두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진실 된 마음과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선 소통만큼 긴요한 수단은 없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피터 드러커가 "모든 문제의 60%는 부실하거나 잘못된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라고 말했듯 소통은 개인을 넘어 조직의 성과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학계에서도 소통은 관심의 대상이다. 논문 검색 사이트 '디비피아(dbpia)'에서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했더니 1만 5000여 개가 넘는 자료가 쏟아졌다. 정치와 경제, 언론, 심리 등 전통 학문은 물론 북한과 여성, 소비자학에 이르기까지 분야별로 주제만 다를 뿐 강조하는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책 담당자 간 합리적 의사결정을 한다면~'. '시민들(수용자 혹은 대중)이 원활하게 소통한다면~' 등의 전제를 세운 논문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만큼 소통은 우리 삶과 뗄 수 없으며, 의미 있는 학술적 자원이다.
그러나 주변에는 소통의 부재를 겪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언제·어디서든 사람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대화가 통하지 않은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지난해 8월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475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세대차이'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92.2%가 '직장 내 세대 차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무려 10명 중 9명이 직장 내 세대 차이를 겪고 있고, 그 중 가장 많은 어려움을 토로하는 부분이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고 한다. '이윤 창출'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두고서도 각자 소통하는 방식이 달라 갈등이 유발될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
의견 양극화 낳은 'SNS'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전 세계를 하나로 잇는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신문과 방송 등 기존 미디어처럼 일방적인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정보의 공급과 소비의 구분이 없어 인간관계도 폭넓게 만들어 줬다. 이용자들이 사회적 문제에 다양한 견해를 접하고, 개입함으로써 숙의민주주의를 실현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은 인스턴트메시징(IM: Instant Messaging)서비스로 무료로 문자를 주고받고, 통화도 가능하다. 플러스 친구, 뉴스 콘텐츠 등 다채로운 서비스를 선보여 대표적인 온라인 커뮤니티로 부각되고 있다.
홍원식 동덕여자대학교 교영학부 교수는 '인터넷 공론장 돌아보기'라는 논문에서 "2000년대 후반부터 빠르게 자리 잡고 있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는 기존의 댓글 중심의 공론장에 대한 기대를 더욱 확장시켜 연대와 참여의 정치주체를 형성하는 감성적 문화 정치 공간으로까지 해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전후로 한국사회는 기존의 댓글과 SNS에 대한 평가를 다시 살펴야 하는 새로운 상황을 맞았다고 지적했다. 당시 국정원과 국방부, 국가보훈처 등의 국가기관들이 '대북 심리전'의 이름으로 댓글과 트위터 등의 인터넷 공간을 활용해 우리 사회의 정치적 여론형성에 밀접하게 개입해온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찰 수사 결과, 국정원은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기 위해 수 십 만 건 이상의 정치적 성향의 댓글을 썼고,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비방과 반값 등록금 문제에 대해 여론을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홍 교수는 "대안적 공간으로 이상적 공론장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평가하고 있던 댓글과 SNS와 같은 인터넷 토론 공간이 사회 권력체계의 조직적 개입으로 왜곡되고 있는 것을 확인한 것은 충격이었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는다는 통념과 달리 SNS는 의견 양극화를 가속화시켰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적 이슈를 놓고 열띤 공방을 벌이는 일이 일상이 됐지만 오히려 '불통의 화신'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운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박사가 쓴 '왜 SNS에서 정치 양극화가 지속되는가'라는 연구를 보면,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비슷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 비해 의견 극화의 평균이 0.40575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SNS사용자들이 자신과 동질적인 사람들과 대화를 할수록 의견 대립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자는 "SNS에서는 자신과 동일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만 관계를 맺고, 다른 의견을 접하려 하지 않아 갈등이 증폭된다"며 "특히 기존 매체인 TV, 라디오에 비해 우연히 정보에 노출되기보다 선택적 노출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시민들 간 의견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통을 방해하는 '한국적' 특징들'한국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소통을 가로막는 요소를 좀 더 맥락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소통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논문에서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국의 정치와 문화적 상황 등을 고려해 소통을 방해하는 요소로 '일극주의'와 '승자독식주의', '속도주의', '연고주의', '미디어 당파주의' 5가지를 제시했다. 대부분 일상과 밀접한 것으로, 한국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 중 한 곳으로 집중화된 대중매체와 통신·교통 시스템은 커뮤니케이션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다원적인 지역 간 소통보다 서울과의 빠른 소통 위주로 이루어졌고, 선거에서 후보들은 '줄'을 과시했다. 이는 사람들이 중앙을 향해 달려가는 역동성을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가치의 획일화'를 촉진시키고, 불통을 야기했다는 게 강 교수의 설명이다.
'빨리빨리' 문화도 문제다. 인터넷 접속 시간이 단 몇 초만 느려도 울화통이 터지는 걸 보면 '속도주의'는 한국 사회의 기본 모델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소통은 시간이 조금 걸린다. 상대방이 어느 정도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이 돼야 소통이 가능하다.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는 소통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 낭비로 취급될 수 있고, 조직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동돼 수직적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하게 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군사독재 등 엄혹한 현대사는 불확실성이 점철된 시대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감을 갖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교와 위계질서, 신분증 문화가 발달하게 됐고, 연고를 가진 사람들이 결속력을 높임으로써 소통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있다.
강 교수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승자독식으로부터 자유로운 '비무장지대'의 영역을 넓혀 나가야 한다"며 "대통령부터 기초자치단체장 등 지도자들이 직접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분야를 투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소통은 최근 불거진 개헌 논의에서도 적용된다. 강 교수의 지적대로라면 개헌은 국민 통합과 소통을 위한 절호의 기회다. 정부가 지난 26일 발의한 개헌안을 보면 크게 ▲ 지방분권 ▲ 국회의원 소환제 ▲ 감사원 독립성 강화 등이 눈에 띈다. 권력을 분산시키고, 견제와 균형을 높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승자독식 구조를 약화시킴으로써 소수자를 배려하고, 권력관계를 보다 수평적으로 개선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당파성이 짙은 국회의원들에게 개헌의 칼자루가 쥐어지다보니 정부발(發) 개헌이 실제 합의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걸리거나 국회통과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1%의 우정'에서 살폈듯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당별 당론을 무시할 수 없지만 국회의원들은 각자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소상히 밝히는 게 중요하다. 개헌 논의가 밀실 야합이 아닌 투명성이 보장되고, 아래로부터 소통이 강화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합의가 도출 될 것이다. 개헌 논의를 통해 진정한 소통 사회가 되길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