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남진 _ Still Life>전이 4월3일까지 J&C광주전남갤러리(02-725-0049)에서 열린다. 광주에서 활동해온 임남진 작가는 북경창작센터 6기 입주작가로 선정되어 북경 따산쯔 환티에에 1년을 머무르기도 했다. 꾸준히 민족미술인협회(회장 이종헌) 광주지회(지회장 김정환) 회원으로 활동을 하면서도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임남진 작가의 실력과 함께 광주시와 광주시립미술관의 열린 지원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광주시립미술관이 2010년부터 창작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올해로 10기를 맞이했다.
"아이고, 힘들어 죽갔네요잉. 4.3 70주년 기념 전시에 참여하느라 제주 갔다가 오프닝 보고 바로 올라와서 여기 전시 준비했더니 정신이 없네요."6월 25일까지 제주 4.3 평화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전시되는 제주 4.3 70주년 동아시아 평화인권전 <침묵에서 외침으로>에도 참여중이라며 입을 크게 벌리고 환하게 웃는다. 크고 환하게 웃는 모습은 임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다. 치열을 드러내고 함박웃음을 짓는 임 작가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따라 그렇게 웃음을 짓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 지난 2010년의 전시에는 그림의 주인공으로 아귀가 자주 등장했었는데 이번에는 상사화가 많이 등장 하네요."좀 바뀌었지라? 아귀는 가는 목구멍을 가지고 있는데 배는 불룩해요. 많이 먹어야 하는데 목구멍이 너무 작어서 음식이 많이 안넘어 가. 그러니 맨날 배가 고프겠죠.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는게 아귀라. 어쩌면 사람의 욕심이나 욕망도 그런 거 같아요, 사랑, 집, 돈, 큰 예술가가 되고 싶은 꿈…. 눈에 보이지 않는 욕망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그리게 된거죠."
거울에 비친 아귀라…. 그림을 들여다보니 내가 거울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잠시 빠진다.
"이번 전시 준비를 하면서보니 저 아귀가 상사화로 바뀌었더만요. 불화를 만나 사람 사는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특히 감로탱화를 마음에 뒀어요. 그때는 내용과 형식의 측면에서 그것들이 확 마음에 와닿았거든요. 풍속도 시리즈를 통해 이야기를 많이 그렸죠. 사람들은 제 풍속도 시리즈를 좋아하고, 계속 그리기를 원했지만 한 십년 쯤 그리다보니 재미도 없고, 매너리즘에 빠질 것 같아서 버렸죠. 버리는 과정에서 내가 그동안 엄청 건방졌구나하는 반성이 들었어요. 마음을 열고 보니까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소중해지더라구요. 원래는 꽃을 잘 안그렸는데 꽃 안에도 이야기가 있는 거예요. 사람의 고통이나 기쁨, 외로움, 욕망들이 꽃으로 상징되어 그려지기 시작했죠. 아귀를 버리고 상사화를 얻은 셈이에요."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서양회화를 전공한 임 작가는 불화를 다시 공부하면서 민화의 특성을 살려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요즘은 현대민화라고 하여 창작민화가 일반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미술의 저변확대라는 측면에서는 환영할 일이면서도 임모(글씨나 그림 따위를 본을 보고 그대로 옮겨 쓰거나 그림)나 길상의 구복적 의미라는 측면만 부각되는 게 아닌가 싶어 한편 아쉬움도 있었다.
민화의 재해석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임 작가의 그림이 가히 텍스트가 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풍속도Ⅱ'를 특히 좋아한 나로서는 당분간 아쉽게도 풍속도는 못보겠지만 대신 달과 상사화와 파랑새를 자주 만나게 될 듯하다.
- 북경창작지원센터에서는 어떠셨어요? 한국의 미술판과 중국이 어떻게 다르던가요?"좋았지라. 일단 작업실 천장이 높으니 큰 그림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고, 작업하기가 겁나게 좋죠잉. 나름대로 내 갈 길은 정하고 갔던 터라 중국 작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건 별로 없어요. 일단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나 자신과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죠.
무엇보다 부러웠던 건 중국은 화가를 키워내는 풍토더라고. 자기네들의 젊은 작가라도 그림이 괜찮으면 많은 돈을 주고 사요. 그래서 그 작가가 안정된 환경 속에서 더 좋은 작품을 하게 만들어주고, 더 좋은 작품이 나와 그림값이 올라가고. 선순환인거죠. 중국은 외국 작가에게는 인색해요. 우리 나라는 국내 작가에게는 인색하고 외국 작가에게는 후한 편이죠. 그러니까 우리 나라 화가들이 먹고 사느라고 작업에 집중 못하는 아쉬움도 커죠."
임 작가는 2013년 제19회 광주미술상을 받았다. 광주미술상은 어렵고 힘든 여건 속에서도 창작에 매진하는 지역의 청년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광주·전남에 연고를 둔 원로와 중진 선배미술인들이 1995년 광주미술상운영위원회를 결성하여 만든 상이다. 올해는 24번째 수상할 젊은 작가를 찾게 된다.
- 임남진 작가님, 올해 2018년은 무엇을 화두로 잡으셨는지 궁금합니다."Still Life. 내가 그 속에서 나한(일체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어 중생의 공양에 응할 만한 자격을 지닌 불교의 성자)의 스토리를 찾았다고 생각해요. 나한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이미 나는 나한을 그리고 있었더구먼. 그리고 있으면서도 자꾸 다른 데서 나한의 개념을 찾고 있었어요.
삶 자체가 나한이고, 삶은 어리석어서 끊임없이 실수를 반복하고, 후회도 하고, 비루해지기도 하면서 살아내는 게 인간이고, 인생이더라고요. 얼마나 고민하고 천착해서 깊어지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죠. 인간의 오만가지 인간의 마음들을 시처럼 풀어내보고 싶어요. 일단 중년을 들어서는 내 마음과 몸의 변화를 한 번 그려 보고 싶어요."
쉬운 일이 아니기에 해 볼만 하다는 임작가를 보면 제 빛깔과 향기에 맞는 이름을 얻어 제대로 익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고민할 것이 있고, 숙제처럼 주어지는 게 좋단다. 작업을 하면서 고민을 많이 하고, 기운을 많이 쏟은 작품은 관람객들도 발길을 멈추고 더 오래 바라보더라고 했다. 마음이 전하는 힘이다. 전깃줄에 조각난 달이 다시 돌아봐진다.
"내 자신을 들여다 보는 거.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디를 바라보고, 내 그림의 방향이 무엇을 향해 가는지가 제일 중요해요. 뭔가 하나를 형상화 해내고,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최소 10년이 걸리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임남진 = 풍속도' 했는데, 이제는 '임남진 = 달, 파랑새, 상사화' 그렇게 떠올려요. 시간이 흐르면 또 새로운 걸 찾겠죠. 나이가 듦에 따라 축적되는 경험이나 영혼이 변화되어가는 것을 그리고 싶으니까."
구도의 길을 찾는 '나한'과 '상사 - 꽃무릇'의 결합으로,
삶의 여정과 함께 욕망의 상징으로 바라본 '상사 - 꽃무릇'으로,
저마다 상사병으로 헤메는 저마다 꽃무릇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하고 싶다.
- 임남진 <4인4색 동행> 팸플릿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