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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가 '적폐 탐정단'을 꾸렸습니다. 이름 그대로 권력의 그늘 아래서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 부패, 비리가 추적 대상입니다. 그 첫 번째로 국회 사무처를 택했습니다. 시민 세금이 1년에 900억 원 넘게 쓰이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외부 감사는 없습니다. 국회의원들 또한 '집안 문제'라고 사실상 모른 척 합니다.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모두 공개하지 않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17년 9월부터 33건의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그 실태를 파고들었습니다. [편집자말]
 촛불 혁명의 핵심 요구 중 하나가 정치 개혁이다. 2017년 10월 2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된 촛불 집회 1주년 행사 '촛불은 계속된다' 당시 모습.
촛불 혁명의 핵심 요구 중 하나가 정치 개혁이다. 2017년 10월 2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된 촛불 집회 1주년 행사 '촛불은 계속된다' 당시 모습. ⓒ 이희훈

☞ '적폐탐정단 : 국회사무처 8편'에서 이어집니다.

"국회 수석 전문위원이 장충기에게 '내가 지배구조법 관련 처리할 때 공이 꽤 있다' 자랑하면서 민원을 넣습니다. 국회 전문위원들, 특히 수석전문위원들이나 입법 조사관들 경우에 검토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습니까? 로비에 의해 편향되게 작성되거나 일부 재벌들, 어떤 로비 대상들, 이익단체들에 의해 왜곡된 검토보고서가 올라갈 수 있다는 게 확인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강북 을)은 "기가 막히다"고 했다. 작년 8월 국회 운영위, <시사인>의 '장충기 문자' 보도를 두고 나온 말이었다. 이같은 발언에 3선 의원 출신의 당시 우윤근 국회 사무처 사무총장 역시 "저 역시도 전문위원의 도움을 받아서 입법활동을 한 바 있지만, '그걸 또 교묘하게 악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점들이 장충기 관련 문자 메시지에도 일종의 갑질 비슷하게 나오고 있다"는 말로 공감을 표시했다.

그 일종의 '갑질'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앞서 살펴봤었다. 박 의원이 "기가 막히다"고 지적한 장충기 문자의 주인공은 국회 정무위 수석 전문위원 시절, 전화 한 통으로 빚 21억 원을 탕감하는 힘을 보여줬다. 상장 폐지 위기에 처한 회사 대표의 청탁에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압박했으며, 현대증권 사장 또한 그의 전화 한 통에 이해 당사자인 업체 사장을 만나야 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지도위원, 증권선물거래소 사외이사 인사에 개입하려던 정황도 나타났다.

박정희가 만든 적폐, 국회법 제42조 제3항

 1963년 11월 23일자 <동아일보>에는 새 국회법 전문이 실려 있었다. 또 '마침' 그 날 최대 뉴스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피격 소식이었으며, 1면 하단에는 민주공화당의 이런 광고가 게재됐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두 수레바퀴가 균형이 잡히도록 해 줍시다", "민주공화당에 투표합시다".
1963년 11월 23일자 <동아일보>에는 새 국회법 전문이 실려 있었다. 또 '마침' 그 날 최대 뉴스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피격 소식이었으며, 1면 하단에는 민주공화당의 이런 광고가 게재됐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두 수레바퀴가 균형이 잡히도록 해 줍시다", "민주공화당에 투표합시다". ⓒ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이와 같은 국회 전문위원의 '힘'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사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국회 전문위원은 분명 '조력자'였다. 무엇보다 각 상임위에서 국회의원들이 추천한 사람을 국회의장이 임명하는 구조였다. 그랬기에 선출되지 않은 관료인 그들, 국회 전문위원들이 입법 행위에 개입할 여지는 그만큼 낮았다.

그랬던 국회 전문위원 제도가 5·16 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 체질이 바뀌기 시작한다. 1963년 11월 새로운 국회법이 등장하면서 상임위에 일반직 국가공무원이 들어갈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고, 그로부터 2개월 후에는 전문위원 자격 전형 규정이 바뀐다. 1964년 1월 13일자 <경향신문>은 그 자격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대학부 교수, 초급 대학 교수로서 1년 이상 재직한 자
▲국회 전문위원 또는 최고회의 전문위원으로서 재직한 자
▲2급 이상의 국가공무원으로서 2년 이상 재직한 자
▲판·검사, 변호사로서 5년 이상 그 직에 있던 자
▲육·해·공·해병대 장성급 장교로서 2년 이상 재직한 자

박정희 장군을 위해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일했던 이들이, 박정희 장군을 따르는 장성급 장교들이 국회 전문위원을 할 수 있도록 바뀐 것이었다. 국회를 장악하려는 음모가 이미 그 때부터 시작됐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유신 체제가 들어선 1973년, 박 전 대통령은 국회 전문위원 임용 권한을 각 상임위, 사실상 국회의원들에게서 제거한다.

"전문위원은 사무총장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한다."

바로 지금의 국회법 42조 제3항이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전문위원을 뽑도록 한 제도를 아예 지워버린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사실상 국회 사무총장을 임명하는 시대였으니, 그 의도가 무엇이었을지는 자명하다. 3권 분립의 파괴, 문제는 관료들로 하여금 입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한 이와 같은 구조가 개선되기는커녕 더 심각하게 왜곡됐다는 점이다. 전두환씨가 등장할 차례다. 현재 국회법 제58조 제1항은 다음과 같다.

전두환씨 역시 국가보위입법회의 출신들을...

 1980년 10월 30일자 <경향신문> 1면에는 이호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이 전두환씨를 접견하는 모습과 함께 국회 전문위원 61명을 새로 임명했다는 소식이 함께 실렸다.
1980년 10월 30일자 <경향신문> 1면에는 이호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이 전두환씨를 접견하는 모습과 함께 국회 전문위원 61명을 새로 임명했다는 소식이 함께 실렸다. ⓒ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위원회는 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과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 대체토론과 축조심사 및 찬반 토론을 거쳐 표결한다."

그 전까지는 일종의 관행처럼 존재했던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였다. 하지만 국가보위입법회의 1981년 1월 국회법을 이렇게 바꾸면서 검토보고는 '반드시' 지켜야 할 법적 절차가 됐다. 박정희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전두환씨 역시 쿠데타 이후 국회법을 고쳐 국회를 더 강력하게 장악하려 했던 것이다.

또한 신군부 세력은 박정희 정권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인사들을 국회 전문위원으로 투입시켰듯, 국보위 출신들을 대거 국회 전문위원 자리에 앉혔다. 1992년 7월 31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기존 전문위원 33명 중 25명이 옷을 벗었다고 한다. 대신 그 자리에 투입돼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이도 물론 있었다.

김용균 전 한나라당 의원(법무법인 정론 대표 변호사)이 대표적이다. 1980년 군법무관으로 있다가 신군부가 만든 임시 입법기구 '국가보위입법회의' 법사위 전문위원으로 차출됐고, 1981년 4월 입법회의 해체 이후 문공위 전문위원, 국회 사무처 행정차장 등으로 국회에서 1987년까지 일했다. 1988년 민정당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했으나, 6공 시절 체육부 차관(1990년), 헌법재판소 사무처장(1992년) 등을 역임했다. 1980년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았다.

이와 반대로 우병규 전 헌정회 이사(2018년 2월 사망)는 국회 전문위원 '옷'을 벗고 전두환 정권에서 출세의 길을 걸은 경우다. 1980년 7월까지 국회 전문위원으로 16년 동안 일하다가 신군부에 발탁돼 5공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과 국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고, 1985년에는 민정당 후보로 경남 마산에 출마해 제12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특이할 만한 점은 그의 국회 전문위원 이력이 5·16 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전문위원으로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국회 전문위원 경력을 바탕으로 출세의 길을 걸은 사람들은 많다. 독재 정권이 국회 전문위원을 사실상 3권 분립을 흔드는 '조력자'로 이용할 여지 역시 그만큼 컸다는 말이 된다. 물론 오래 전 일이다.

"국회 주인은 관료다"

 국회 개혁을 위해서는 국회 내 관료 집단에 대한 개혁 역시 필요하다. 2016년 9월 2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 현장 모습.
국회 개혁을 위해서는 국회 내 관료 집단에 대한 개혁 역시 필요하다. 2016년 9월 2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 현장 모습. ⓒ 이희훈

그러니 이상한 일이다. 참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놓은 '국회법 42조 제3항', 전두환 정권의 작품 '국회법 제58조 제1항'이 지금도 통한다는 것이 말이다. 이 이상한 상황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이가 소준섭 국회 도서관 국외자료과 조사관(국제관계학 박사)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국회 수석 전문위원이 초선의원 6∼7명보다 힘이 세다고 합니다. 국회의원 20명이 발의한 법안이 관료 조직에 넘어가는 구조예요. 검토 순서가 늦어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회기 넘어갈 수도 있어요. 게다가 또 검토보고가 반드시 들어야 하잖아요. 국회의원이 평가를 받고 심사를 받아야 하는 겁니다. 박주민 의원이 열심히 해 봤자, 검토보고 과정에서 '이러이러해서 부적합하다', '법리에 맞지 않다', 그럼 걸리는 겁니다."

국회 내부자임에도 그의 비판에는 거침이 없었다. 소 조사관은 이렇게 표현했다. "국회 주인은 관료"라고, "아전이 권력을 쥐고 있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통제가 안 되는 권력을 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소 조사관이 "상임위원장이야 1년에서 2년 하다 떠나지 않냐"며 국회 수석 전문위원에 대한 로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도 그래서였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은 이 이상한 상황을 바꾸는데 왜 이렇게 소극적인 걸까. 선출되지 않은 관료들이 선출된 헌법 기관인 자신들의 입법 행위에 간섭하는 상황을 왜 5공화국 시절에 계속 묶어두는 것일까.

"사실상 입법부 쥐락펴락하는 비선실세 파헤쳐야"

 추석 연휴를 앞둔 12일 오전 서울 국회 정문 앞에서 티브로드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해고자 복직과 고용승계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둔 12일 오전 서울 국회 정문 앞에서 티브로드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해고자 복직과 고용승계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소 조사관은 일종의 관성 또는 타성을 이유로 들었다. "원래 룰이 그렇게 돼 있으니까" 또는 "너무 편하니까"라고 했다. 초선 의원 시절이야 이에 대한 문제 의식이 낮을 수 있고, 또 입법 행위에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의원들로서는 전문가인 그들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 조사관은 "너무 편하니까 중독된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국회가 가장 불신 받는 집단이라고 하잖아요? 국회가 개혁 대상이라고 모든 국민들이 인식을 하고 있는데, 그럼 과연 무엇을 포인트로 삼아야 할까요. 흔히 일하지 않는 국회라고 하는데, 그러면서도 '입법은 어느 정도 하겠지', 아마 이렇게들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그건 반만 보시는 거라 생각해요. 입법 행위에 관료들이 개입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와 같은 말을 그저 '오버'로 치부하기만은 어렵다. 실제 드러난 사실도 있다. 앞서 소개했듯 국회에 있으면서 전화 한 통의 힘을 보여주다 감옥까지 다녀 온 국회 수석 전문위원은 그 후에도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에게 "내가 지배구조법 관련 처리할 때 공이 꽤 있다"며 생색을 냈다. 소 조사관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사실상 입법부를 쥐락펴락하는 비선 실세, 국민들이 잘 모르는 이 문제를 파헤쳐야 국회 개혁의 전기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지난 기획 기사]
① 국회 용역 19억원 왜 '눈 먼 돈' 됐나
② 국회도서관 사무실 7년 동안 '공짜'로 쓴 비결은?
③ 성매매 해도 '감봉 2개월'...음주운전-폭행에도 국회사무처 '물징계'
④ 박원순 고깃집 8만원 지출도 공개, 국회는 "공개하면 업무수행에 지장"
⑤ 적폐의 시작이자 끝, 세상에 이런 기관이 있다니
⑥ 5건만 검증했을 뿐인데... 나머지 43건은 과연?
⑦ "영수증 공개도 거부... 감시 안 받는 괴물됐다"
⑧ 전화 한 통으로 빚 21억 털어 준 그 이름, 장충기 문자로 돌아오다

* '적폐탐정단 : 국회사무처 10편'으로 이어집니다.


#장충기#소준섭#국회법#국회전문위원#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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