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삼성서초사옥 진입은 실패로 끝났다. 삼성그룹사 4개 노동조합은 '노조 할 권리'를 외치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면담요청서를 전달하려 했지만, 철제 펜스에 막혔다. 삼성에스원 소속 직원 10여 명이 철제 펜스를 지키고 섰기 때문이다.
20여 명의 노조 조합원들이 펜스를 사옥쪽으로 밀며 진입을 시도하자, 에스원 노동자들은 도로쪽으로 밀며 진입을 막았다. 그 과정에서 펜스가 어깨 위쪽으로 들렸다. 30여 명의 사람들이 허공에서 펜스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면서 펜스는 본사쪽으로 진입했다가, 도로쪽으로 나오기를 반복했다. 펜스가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주변에 있던 기자들은 물론 펜스를 들고 있던 사람들이 펜스에 맞을 뻔했으나 부상자는 없었다.
실랑이 도중 나두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대표지회장이 비어있는 공간으로 진입을 시도했지만, 2~3명의 에스원 직원에 의해 펜스 밖으로 밀려나갔다. 그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 면담요청서'는 땅에 떨어졌다. 구둣발에 밟혔다.
결국 노조의 삼성서초사옥 입성은 불가능했다. 면담요청서도 전해지지 못 했다.
검찰이 삼성그룹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삼성의 '노조 와해' 전략이 담긴 6천여 건의 문건이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삼성 노동자들이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라"라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면담을 촉구했다.
3일 오전 11시 서울 삼성전자 서초본관 앞에서 금속노조 소속 삼성전자서비스지회·삼성지회·삼성웰스토리지회와 서비스산업노조 소속 삼성에스원노동조합 등 삼성그룹사 4개 노동조합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노조는 삼성의 무노조 전략이 문건에 머문 것이 아닌 현실에서 그대로 실행됐다고 주장했다. 임원위 금속노조 삼성웰스토리 지회장은 "사측은 지속적으로 노조원을 색출하며 부당한 방법으로 탄압과 퇴사를 유도하고 있다"라며 "조합원을 정기인사이동이라는 명목으로 기존 출퇴근 거리의 2~3배 걸리는 곳으로 발령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임 지회장은 "조합원이 힘들다고 하면 명퇴를 유도하는 식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노조 간부에게 노조 탈퇴를 회유하고 간부를 승진에서 누락하는 것은 물론 간부의 컴퓨터를 원격에서 사찰하고 주변에 감시자를 배치한 정황들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장봉렬 삼성에스원노조 위원장은 "노사 교섭 자리에 대표이사가 참석하지 않는 등 노조를 무시하고 교섭 해태를 일삼고 있다"라며 "노조 업무 관련해서 사내 메일을 사용하면 즉각 경고 메일을 보내고 있다"라고 했다. 이어 장 위원장은 "에스원 공식 모바일 커뮤니티인 '에스원두잉두잉'에는 노조 관련 소식과 회사에 비판적인 내용이 게재되자마자 (사측은) 24시간 검열하고 삭제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나두식 대표지회장은 "이 자리에서 43일간 전체 조합원이 생활을 포기하고 노조 인정을 받으려 싸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라며 "무노조 경영을 당장 폐기하고 이재용 부회장이 중심이 아닌, 이 빌딩을 세운 노동자들이 중심에 서는 삼성그룹으로 탈바꿈 했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4년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노조활동 보장과 기본급 지급'을 요구하며 43일 동안 삼성전자 서초사옥 근처에서 노숙 농성을 벌였다. 당시 노숙하던 장소와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약 4년이 흐른 이날도 그는 '노조 할 권리'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나 대표지회장은 "오늘 기자회견의 취지와 기조는 이재용 부회장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결자해지하라는 것이다"라며 ▲무노조 경영 폐기 ▲비정규직·간접고용의 직고용 문제 해결 ▲반도체 등 직업병 피해자 산재인정 등 3가지를 요구했다.
그는 "선대 회장이 남겼던 무노조 경영이 폐기돼야 한다. 중단이 아니라 폐기돼서 쓰레기통에 처박혀야 한다"라며 "삼성전자라는 그룹이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수많은 간접고용과 비정규직·하청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다"라고 밝혔다.
곽형수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대표수석부지회장은 "삼성에서 노동조합하기 정말 힘든 것 같다"라며 "목숨을 버려야 하고, 가족을 두고 거리로 나와서 농성을 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어 곽 수석부지회장은 "이제는 바뀌어야 할 것 같다"라며 "남북에게 봄이 오듯, 노동자에게도 봄이 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삼성그룹 4개사 노조는 '무노조 경영 폐기', '노조 할 권리 보장' 등을 이야기하며 이재용 부회장에게 면담을 요청하려 했으나, 진입을 거부당했다. 노조는 면담요청서를 내용증명으로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엄중 수사·처벌해라"...검찰에 촉구이날 노조는 검찰에게도 쓴소리를 했다. 박원우 금속노조 삼성지회 지회장은 "우리가 2011년 삼성그룹 최초로 삼성노동조합을 설립하려하자,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노조 파괴를 일삼았다"라며 "2013년에 나온 문건을 바탕으로 민변과 고소고발을 진행했지만,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라고 했다.
이어 박 지회장은 "꼬리 자르기식으로 삼성물산과 에버랜드 소속 임원·간부 4명을 500만 원에서 1000만 원 약식기소하는 것에 불과했다"라며 "검찰과 노동부는 삼성 수뇌부인 미래전략실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승열 금속노조 부위원장도 "2013년 처음 문제가 제기됐을 때, 검찰이 제대로 된 수사와 엄중한 처벌을 했으면 삼성의 노조파괴를 막아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됐을 것이다"라며 "사법 당국도 같이 책임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법당국이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을 해주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삼성그룹사 4개 노동조합은 공동성명을 통해 "검찰이 얼토당토않은 결론에 이르렀던 이유는 피해당사자를 외면했기 때문이다"라며 "통렬하게 반성하고 재조사에서는 피해자인 노조와 긴밀하게 연계하라"라고 밝혔다. 이어 노조는 "삼성의 노조 와해 기획은 현재진행형이다"라며 성역 없는 수사를 요구했다.
또 노조는 "삼성이 노조를 인정했다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지 않았다"라며 "발뺌이 아닌 진정한 사과를 할 것을, 껍데기 쇄신안이 아닌 진짜 쇄신안을 제출할 것을 삼성에 촉구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