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과 조기대선 후 처음 치러지는 지방선거. 새판을 짤 수 있을까요? 다양한 배경과 정당에서 6.13 지방선거에 도전하는 청년 정치인들의 삶과 포부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
"사회문제에 관심 있나? 우리 같이 사회현상에 대해 공부해보지 않을래?"낡은 수법이었다. 선배는 똘똘해 보이는 신입생에게 '이 세상에 대해 고민해보자'를 속삭였다. 그러나 그 신입생은 광주 출신. 어릴 적부터 5.18, 민주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그렇지만 800명이나 하나의 학부로 묶여 있는 대학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선배의 존재는 소중했다.
덜컥 선배가 이끈 동아리에 들었다. 열심히는 안했다. 식당, 치킨집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용돈을 벌기에도 바빴다. 그러다 어느날, 동아리에서 준비한 후원주점이 '화학공학도'였던 그의 꿈을 '사회운동가'로 바꿔 놓았다. 삼성전자 공장에서 백혈병에 걸려버린, 황유미씨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반올림'의 후원주점이었다.
"우리 학교가 '삼성학교'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학교에서 후원주점을 못 열게 했어요. 전기선도 다 끊어 버리고 학생들 사진 찍어 가고. 그래도 학생들이 와서 술 마시면 옆에서 시비 걸고... 분명 피해자가 있고, 피해자를 돕기 위한 상식적인 주점인데... '아,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 많았구나' 싶었어요. 제가 알고 있던 세계관이 깨져 버린 느낌이었어요."알고 있던 세계관이 깨지는 것을 목격한 청년은 자기가 몰랐던, 상식과는 거리가 있었던 세상 속으로 다시 깊숙이 발을 내딛었다. 경기도의원 예비후보로 나선 김광원(25세. 노동당)씨 이야기다.
상식이 사라진 시대, 운동과 현실 사이반올림 주점 사건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상식과 현실 사이는 너무도 컸다. 공부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됐다. 달라진 눈으로 세상을 보니 부조리가 보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띤 것은 자신이 살고 있던 대학 기숙사.
당시 기숙사에서는 학생들에게 식권을 매달 60장씩 강매하고 있었다. 하루 3끼를 기숙사에서만 먹을 수는 없으니 당연히 식권은 남아 돌았다. 기숙사는 환불대신 식권 1장에 400원짜리 음료수 1개를 교환해줬다. 김광원씨는 친구들과 도서관 앞에 텐트를 치고 소송을 걸었다. 그리고 이겼다.
"기숙사 앞에 텐트를 치고 음료수로 탑을 쌓았어요. 어차피 잘 먹지도 않는 음료수라 학생들이 많이 기부해줬어요. 쌓아 놓고 보니 제 키 만큼 쌓아 지더라고요. 호응이 좋아서 소송을 걸었는데 이겼어요. 식권 강매가 없어지고 선택제로 바뀌었죠."현실에 맞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첫 경험. 이후 그는 밀양 송전탑을 비롯해 사회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이해는 깊어졌지만, 그래도 어김없이 다가오는 현실의 벽은 어쩔 수 없었다. 군대를 다녀온 후 일 년 동안 광주에 머물면서 방황했다. 다시 운동을 할 수 있을까? 취업해서 돈을 벌어야 하지 않을까?
"광주에서 1년 동안 화장품 가게에서 일했어요. 제가 원래 남성성하고는 좀 거리가 멀었고 또래 남자들 문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요. 화장도 하고 다녔고요. 그러다보니 '내가 취직해서 지금의 기업문화,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남성 문화에 적응할 수 있을까? 생명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거대기업에서 일할 수 있을까? 다시 화학공학자의 꿈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곰곰이 고민을 해보니까 결론은 '못 하겠다'로 나더군요. '운동을 계속하면 돈은 많이 벌지 못하겠지만, 위로와 힘은 되겠다.' 이게 결론이었어요."위로와 삶의 힘을 찾아 다시 운동의 길로 돌아왔다. 어차피 할 것이라면 제대로 하고 싶었다. 조금은 수동적인 태도가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그랬더니 세상이 또 다르게 보였다.
"페미니즘, 평등한 관계에 대한 것"2016년 4월, 복학을 하자마자 강남역 화장실에서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터졌다. 그동안 페미니즘을 공부하긴 했지만, 그냥 아는 것과 실제 목격한 것이 주는 충격은 너무 달랐다.
"그 전에도 페미니즘 공부를 하긴 했었어요. 그런데 글로 공부하는 것하고 실제로 직접 보는 건 너무 다르더라고요. 강남역 앞 추모와 자유발언대에서 여성들이 경험했던 성폭력 사례, 차별 사례를 들으니까 '내가 너무 걱정없이 살고 있었구나' 싶은 거예요. 전에는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면, 강남역 사건으로 내 주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고 있는 폭력을 직시하게 됐어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학교에서 페미니즘 공부모임인 '모여'(모두를 위한 여성주의)를 만들었다. 왜 공부모임 이름이 '여성'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여성주의일까?
"페미니즘은 성별을 넘어 평등한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공동체와 서로 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실천하는 것이 페미니즘이에요. 우리 사회가 위계적인 남성문화에서 벗어나서 모두가 서로를 보살피고 돌볼 수 있는 관계로 만드는 거죠."조금 짓궂은 질문. 페미니즘이 모두의 평등한 관계를 실천하는 것이라면, 이 반대편의 남성혐오에 대한 비판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평범한 남성들도 혐오하는 표현을 미러링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주는 것이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길일까?
"미러링에 대해서 불편하고 폭력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단순히 어떤 표현에 집중하지 않고 그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혐오나 폭력을 직접 경험하거나 들었다면, 누구라도 분노가 했을거예요. 페미니즘운동만이 아니라 다른 투쟁을 할 때도 보면 친절한 말로 구호 외치지는 않잖아요? 그런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조금 과도한 표현이 있더라도, 그건 그동안 억압되어 있던 분노가 표출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소수정당 예비후보,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은데..."김광원씨는 지난 3월 2일, 노동당 경기도의원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이름도 많이 모르는 소수정당에 가진 것 없는 청년 후보라 당선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 달 동안, 얼마나 자신을 알릴 수 있었을까?
"예비후보로 출마하면서 사람들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그런데 원외 소수정당으로써 사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명함 나눠 주는 것밖에 없어요. 미디어 주목도도 적고, 재정 여건상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요. '평등한 수원을 만들겠습니다. 노동당 김광원입니다' 딱 두 문장 말하면 사람들이 지나가요. 제가 후보라고 생각 안하고 '누구 아들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고. 청년들은 정치에 대한 불신이 커서 청년후보인데도 명함도 잘 안 받아 줘요. 다가가고 싶은데..."어렵다. 그래서 지방선거는 후보가 누군지도 모르고 정당 이름만 보고 뽑는다. 그런데도 기성정당들은 3~4인 기초의원 선거구를 쪼개 2인 선거구로 만들기 바쁘다. 이런 구조에서 김광원씨 같은 소수정당 청년후보가 당선되는 건 말 그대로 천지개벽할 일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선거에 나가려는 것일까?
"제가 후보지만 저 혼자만 하는 선거는 아니에요. 같이 준비하는 사람들, 우리 당의 좋은 정책으로 새로운 시도와 이야기,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고 있는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선거를 해보고 싶어요. 내가 후보니까 나 혼자만 하고 싶은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저를 통해 할 수 있는 선거를 하고 싶은데, 꿈일까요?(웃음)"그렇다. 무릇 선거는 우리의 목소리가 울러 퍼져야 하는 공간이다. 소수정당 후보는 큰 정당에서 담아내지 않는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 후보의 입을 빌려, 후보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수원에서 김광원씨를 만나면 명함만 받고 지나치지 말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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