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을 머금은 언덕에 보라색 제비꽃이 화려하게 유혹한다. 보통은 제비가 돌아올 무렵에 꽃핀다고 제비꽃이라 불리지만 강원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오랑캐꽃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고 어느 만큼 커서야 표준말이 제비꽃이라는 걸 알았다. 제비꽃이 필 무렵에 오랑캐들이 자주 쳐들어왔다고 오랑캐꽃이라 불린다고 한다.
강원도 산 중의 제비꽃 피는 이맘때면 건조한 날씨에 콧속이 자주 헐었고, 먹을 것이 부족해 영양실조로 인한 버짐을 얼굴에 허옇게 달고 다녔다. 그래도 봄엔 비쩍 마른 몸에도 생기가 돌아 제비꽃과 진달래꽃을 따 먹고 찔레를 꺾어 먹었다.
제비꽃 지고 나면 씨주머니가 달리고 그 안에 쌀알 같은 씨가 가득 들어 있다. 그게 쌀밥이나 되는 양 톡톡 터트리며 입속에 넣었고 작은 알갱이들이 입속에서 떼굴떼굴 굴러다녔지만 그래도 오래 씹으면 달착지근했다.
중년이 된 지금 그때 생각이나 입속에 넣어봤지만, 곧 뱉어버렸다. 나이가, 세월이 그때의 맛을 앗아가 버렸나 보다.
제비꽃 옆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탁탁 소리가 들린다. 제비꽃씨주머니가 저절로 터지는 소리이며 봄이 깊어 가고 뭇 생명이 살아가는 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