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고시원, 여인숙, 노숙인 시설 등 취약거처에 사는 이들에게 임대주택을 제공하도록 한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 정책이 서울시에서 실행되면서부터 오염되고 있다. 2016년 11월에 확보된 101호의 주택 중 절반이 넘는 66호가 지금까지 텅 비어있다는 사실은 문제의 심각성을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다. 이 글은 서울시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 정책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동안 면담과 자료요청을 통해 확보된 내용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짚어내기 위한 것이다.
임대료 도둑 골라내기서울시(자활지원과)는 SH공사(서울주택도시공사)에 요구하여 18개월분의 월 임대료를 보증금으로 하는 임대료를 책정하였다. LH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가 동일한 정책에 따른 임대 보증금을 50만 원으로 일괄 책정한 것과 전혀 다른 원리를 채택한 것이다. LH공사가 주거취약계층의 지불능력을 책정 근거로 삼은 반면, 서울시는 입주자의 월세 체납을 전제한 후 보험의 원리로 보증금을 정했기 때문이다. 즉, 서울시는 입주자가 임대료를 체납한 후 명도집행에 걸리는 기간을 18개월로 평균하였고, 그 기간 동안의 월세를 보증금으로 정했다.
서울시는 "장기체납이 10%가 넘고 전국 8개 기관이 체납 문제 때문에 사업을 포기"했다며, 주거취약계층의 임대료 체납이 높아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작년 국정감사에 따르면 전국 임대주택 입주자의 15%가 임대료를 체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학재 의원실, 2017. 10. 12). 임대료 체납이 주거취약계층만의 사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임대료조차 내지 못할 만큼 경제적 위기에 있는 입주자들이 높은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다 가정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물론, 임대료 체납은 서울시(SH공사)나 임차인 모두에게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그러나 공급자의 위험을 회피하는데 매몰되어 입주자가 접근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보증금을 높이는 서울시의 선택은 해법이 될 수 없다. 만약, 임대주택 운영이 어려울 만큼 임대료 체납이 심각하다면 그 원인이 되는 경제적 문제의 본질을 짚고, 임대료보조든 생계지원이든 자활지원이든 복지 정책적 개입을 할 일이다. 그리고 이런 개입은 입주 이후 단계에서 이루어질 것이지 신청 단계에서 예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낭비되는 예산, 방치되는 주거권위에서 언급했듯, 서울시는 철저히 경제논리에 입각하여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정책을 시행하였다. 셈에 충실한 정책을 편 것이다. 그러는 사이 사업시행 당시인 2016년 11월부터 현재까지 약 17개월 동안 66호의 임대주택이 빈집으로 방치되고 있다. 이렇게 빈집이 되어 낭비된 월세는 얼마일까? 101호 중 노숙인 시설에 지원주택으로 위탁한 20호(이 집들은 101호 중 보증금과 월세가 가장 싼 집들이었다)를 제외한 주택들의 평균 임대료인 23만789원을 단순 합산하면, 2억6천만 원에 달한다(23만789원×66호×17개월). 그리고 이 금액은 현재 빈집으로 방치되고 있는 66호의 보증금액과 유사한 수준이다(66호 보증금 평균액 416만759원×66호≒2억7천만 원). 결국 서울시는 월세 체납을 기정사실화 해 높게 책정한 보증금액, 꼭 그만큼의 손실을 본 것이다. 그리고 이 손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제 꾀에 자기가 속은 셈이고, 자기 편견에 자기가 갇힌 꼴이다.
셈에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서울시에만 쪽방, 고시원, 여인숙 등지에 거주하는 주거취약계층의 수가 12만 명(한국도시연구소, 2012, <주거취약계층 주거실태조사>)에 달한다. 열악한 주거환경 탓에 화재로 생명을 잃는 일은 해를 거르는 법이 없다. 열악한 만큼 월세가 비싸지는 역설은 이들을 평생 취약 거처에 묶어 놓는다. 이렇게 집 앓이를 하고 있는 이들이 허다함에도, 몇 호 되지도 않는 임대주택을 텅 비워 놓는다는 것은 적어도 그만큼의 주거권을 의도적으로 짓밟는 일이다.
한국도 가입한 유엔 사회권 규약은 사회권 보장을 위해 "자국의 가용 자원이 허용되는 최대한도까지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국토부 훈령 제983호)은 "3월 이상 공가로 관리되는 경우" 입주 대상 자격을 확대하도록 해, 임대주택이 오랫동안 빈집으로 방치되는 일을 막도록 하고 있다. 가용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라는 일관된 주문인 것이다.
꼼수로 대응하기지난 3월 12일, 서울시는 "알코올 의존 쪽방주민, 노숙인을 위한 지원주택형 공동생활가정 운영기관 모집공고"를 냈다. '지원주택'은 사회복지서비스와 주택이 통합적으로 제공되는 주거복지 유형으로 요구가 높지만, 아직 제도적 근거는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4월 6일 '서울특별시 지원주택 공급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이 서울시의회 상임위를 통과, 13일 본회의 상정 예정이다). 그렇기에 2016년 10월, 서울시는 '노숙인 지원주택 시범사업 운영 지원계획'을 세워 그해 11월부터 38호(남 20호, 여 18호)의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올해 서울시 자활지원과(주무부서)의 연간사업계획에도, 서울시의 예산 계획에도 없던 지원주택 운영기관 모집공고가 돌발 시행된 것이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해당 주택 48호가 공가로 방치되던 66호의 일부라는 것, 해당 사업을 위한 예산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2016년 10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지원주택 시범사업에 서울시는 올해 8천 만 원의 예산을 편성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장애인복지정책과에서 시행하는 '지원주택 주거서비스'에도 약 5억 원의 예산이 편성 돼 있다.
유독, 이번에 공고된 사업만 비(非) 예산 사업인 것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민간 기관들이 과연 자기 돈 들여 노동자를 고용하고 운영비를 써 가며 제도에도 없는 지원주택을 운영할까? 공익을 위해 선의로? 당연히 서울시의 공고는 유찰되었다. 그런데 서울시는 3월 30일, 동일한 내용으로 2차 공고를 냈다. 66호가 공가로 방치되는 것은 서울시가 보기에도 문제이지만, 입주자들이 월세를 연체할 것이라는 믿음 역시 굳건하기에 '지원주택'으로 변형시키는 꼼수로 공가를 털어버리려는 것이다.
꼼수는 또 있다. 서울시는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으로 확보한 101호 중 15호를 작년 3월,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철거당한 남대문 지역 고시원 주민들에게 공급하였다. 역시 월 임대료의 18배에 이르는, 300~400만 원의 보증금을 걸었다. 그렇다면 입주민들은 스스로 보증금을 마련했을까? 그들에게 그런 여윳돈이 있을 리가 없다. 서울시 담당자는 철거민들을 빨리 이주시켜주겠다고 시행사를 "압박해서", "후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철거민들을 이유로 받아 낸 그 돈은 임대주택에 입주한 이들의 소유가 아니다. 서울시가 "쪽방상담소에 귀속" 시켰기 때문이다. 시행사로부터 서울시가 받은 후원금은 어떤 이름을 붙이든 고시원 주민들이 내쫓긴 대가이자, 상당한 기간을 고시원에 살며 일궈온 권리에 대한 보상이다. 서울시가 쪽방상담소에 귀속시키고 말고 할 권한이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300~400만 원 하는 보증금을 받는 게 제일 중요했던 서울시는 철거된 고시원 주민들 몰래 이와 같은 꼼수를 부렸다.
주먹구구, 제멋대로 행정서울시는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 정책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파이가 작은 게 문제"라고 한다.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제17조)은 주거취약계층용 임대주택을 기존주택 매입임대·전세임대주택 공급물량의 15% 범위로 공급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따라 국토부(LH공사)는 매년 6750호(매해 전체공급량 약 4만5000호의 15%)를 공급했어야 하나 실제로는 1000호 가량에 머물고 있다.
서울시(SH공사)는 더욱 문제인데 매년 225호(매해 전체공급량 약 1500호의 15%)를 공급했어야하나 정책 자체를 시행하지 않았다. 2016년 11월이 되어서야 뒤늦게 시행하겠다고 나섰고, 지금 지적하고 있듯 이마저도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따라서 공급물량이 부족한 게 문제라는 서울시의 지적은 옳다. 하지만 해법이 틀렸다. 서울시는 101호를 "쪽방촌 주민"에게만 공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 업무지침(국토부 훈령)에 따르면 '주거취약계층'은 "1.쪽방, 2.고시원, 여인숙, 3.비닐하우스, 4.노숙인 시설, 5.컨테이너, 움막 등"에 거주하는 이들이다. 서울시가 "쪽방촌 주민"으로 지원대상을 임의 축소할 근거는 없다. 물량이 부족하니 주거취약계층 중 일부를 임의 선택해 입주기회를 주겠다는 것은 월권이다. 제도는 주거취약계층이란 범주로 입주대상을 정하고 있을 뿐, 별도로 우선순위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선별은 지원의 시급성 면에서도 맞지 않다. 서울시가 거리홈리스들을 주 대상으로 임시 거처를 제공하는 '임시주거지원'을 받은 이들은 작년 총 1045명인데, 이들 중 861명이 고시원·여인숙에 들어갔다(서울시 보도자료, 2018. 2. 7). 즉, 서울시의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은 이렇게 거리노숙에서 막 벗어난 이들 조차 배제하는 것이다.
당장 할 일은 미루고...2014년 9월 1일, 국토부(LH공사)는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의 보증금을 기존 100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내렸다. 보증금이 임대주택의 진입장벽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보증금 100만 원 중 50만 원을 LH공사의 사회공헌기금이 담당하면서 입주자는 결과적으로 50만 원만 부담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 서울시(SH공사)가 공가로 방치하고 있는 임대주택의 보증금은 평균 410만 원이다. 동일한 제도의 적용을 받음에도 LH공사의 주택보다 보증금이 8배 이상 비싸다. 비율의 문제만도 아니다. 주거취약계층의 경제력에 비출 때 400만 원이 넘는 보증금은 절대 액수에 있어 가닿기 어려운 수준이다(서울지역 쪽방 주민의 약 60%가 기초생활수급자다. '2017년 노숙인 근로능력 평가 결과 보고' - 서울시, 2017. 3. 27).
'공공주택 업무처리지침'(제53조 2항)은 "동일한 사업대상지역 내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지방공사가 모두 사업에 참여할 경우 유사한 수준의 임대료가 부과될 수 있도록 양 기관이 협의하여 임대료를 결정한다"고 정하고 있다. 사업시행자가 다르다고 해서 동일한 제도에 따른 사업의 통일성이 무너지고, 그에 따라 입주대상자 간 유·불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서울시는 즉각 LH공사 수준으로 임대보증금을 내려야 한다. LH공사가 사회공헌기금을 활용하여 보증금을 현실화시켰다면, 서울시 역시 사회복지기금을 활용할 수 있다.
실제, 주무부서인 서울시 자활지원과는 작년 38억 원의 사회복지기금 '자활계정'을 활용하여 "노숙인 등 임대주택 임차보증금 융자지원"을 실시하였다. 임대주택에 입주한 이들에게 보증금을 낮은 이율(연리 2%)로 대출하여 월세를 줄이도록 한 것으로, 1인당 평균 약 2천만 원이 소요되었다. 그런데 서울시(SH공사)의 보증금을 LH공사 수준으로 균일하게 하기 위해서는 2억4천만 원[(410만 원-50만 원)×66호≒2억 4천만 원]이면 족하다. 그리고 위 임차보증금 융자지원이 주거안정을 목적으로 한 '주거지원계정(주택건축국 소관)'이 아닌, 자활사업을 목적으로 한 '자활계정(복지본부 소관)'을 활용한 파격이었음을 환기하면 지금 당장의 시행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오로지 늑장이다. 비싼 임대료를 책정해 아까운 임대주택을 장기공가로 방치한 것은 잘못이고, 임대료 수준을 낮추겠다고 하면서도 조금만 참아달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권한은 우리한테 없다.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홈리스들이 허다함에도 임대주택이 장기간 빈집으로 방치되는 현실은 이해될 수도, 참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하루 속히 종결시켜야 할 일일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와 실질적 조건은 이미 다 구비되어 있다. 서울시가 쓸데 없는 고집과 주거취약계층이 임대료 도둑이라는 망상에서만 빠져 나오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