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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10일 밤, 심한 비바람 속에서 정전을 겪었다. 늦은 귀가 길에 경비실을 지나던 중이었다. 사람들이 황급히 뛰어나와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갇혔다"고 신고하면서 정전을 알게 되었다. 당시 내 핸드폰은 방전되어 있었고, 어떤 것도 할 수 없어 잠시 그 상황을 관찰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두운 계단을 딛고 17층을 걸어 올라가기 보다 전기가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갈 생각이었다. 비상등도 꺼져 있는 것 같았다. 40여 분 간 지켜본 결과는 당혹스러웠다.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 나누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소위 '안전 대비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와 제천 화재를 겪었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거기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구청의 미흡한 조치도 한 몫 했다.

10일(화) 밤, 9시 30분경 정전사태 발생

위기상황에서 연락체계는 가동되지 않았다. 집단주거지인 아파트에서는 정전사태가 벌어지면 비상발전기가 가동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날은 비상발전기가 가동되지 않았다.

변전사고가 일어나 정전이 되었다면 한전만 책임이 있는 걸까.  사고가 있었고 그 사고에서 큰 인명피해가 없었다면 구청은 그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변전사고가 일어나 정전이 되었다면 한전만 책임이 있는 걸까. 사고가 있었고 그 사고에서 큰 인명피해가 없었다면 구청은 그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 픽사베이

재난사건에 총지휘자가 현장에는 어찌된 일인지 나타나지 않았다(그는 불이 들어오고서야 나타났다). 경비실에는 당직 경비 한 명만 있었다. 기관실 담당자로 보이는 경비 아저씨는 "석유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기관실 경비담당자가 스위치를 올리는 것을 몰라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고도 했다.

소방차가 왔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열쇠가 소방차의 것과 맞지 않아 구할 수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엘리베이터 열쇠를 복사해 위기에 대비해서 소방서에 비치해 놓으면 안 되냐고 문의하니, 그렇게 하면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중에 엘리베이터 담당 회사 직원이 왔다. 그는 승강기에 갇힌 주민들은 무사히 나왔다고 했다. 그 후 이 사태의 원인과 결과, 사과 말은 없었다.

불이 들어오고 나서 회장과 몇 사람이 경비실에서 마주쳤다.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과 관리소 직원들은 이렇게 말했다. "재수가 없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오늘 처음 근무를 한 기관실 직원이 기기 작동에 대해 숙지하지 못해 정전 사태를 막을 수 없었다는 변명이었다. 입주자인 '내가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죄송하다"는 말은 당시 상황에서는 못 들었고, 입주자 대표회의와 관리소의 입장에선 그저 "재수가 없는" 날이었던 것이다. 업무 파악도 제대로 안 된 상태로 인력이 배치되고 운영되는 관리 운영 실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전사태가 일어났지만 비상발전기는 가동되지 않았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 관리가 잘 되고 있지 않다. 관리소홀책임은 해당 구청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민들도 안전매뉴얼을 습득하고 실행하는 훈련이 필요해 보인다.
정전사태가 일어났지만 비상발전기는 가동되지 않았다.아파트 같은 공동주택 관리가 잘 되고 있지 않다. 관리소홀책임은 해당 구청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민들도 안전매뉴얼을 습득하고 실행하는 훈련이 필요해 보인다. ⓒ 픽사베이

주민들의 대응

'제사를 지내다가 불이 나가 황당하다'는 주민도 있었고, '이렇게 관리실에서 우왕좌왕하냐'는 우려섞인 항변도 나왔다. 그런데 젊은 청년 한 사람이 한전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한전에 전화가 안 된다며 계속 통화를 시도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어디로 전화를 해 달라고. '경비아저씨는 주민들의 전화를 받지 마시고, 연락망을 총동원해 구원을 요청해 달라'며, 그는 소위 '지휘' 역할을 자처했다.

그 청년이 고마웠다. 그는 관리소장과 구청을 믿기보다 우리가 우리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매뉴얼을 점검하자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그는 얼마 전에 겪은 이야기를 나에게 했다. 우리 아파트에서 소방수가 터져 엘리베이터에 물이 가득 차서 아주 위험한 상황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와 지금이 똑같다.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나는 안전 매뉴얼이 있는지, 행정기관과 아파트 관리소는 어떤 후속 조치를 취하는지를 지켜보고 알아보기로 했다.

11일(수), 공지 및 설명 요구

다음 날, 오전 9시 KBS 라디오 뉴스 첫 보도는 서대문구 홍제동 일대 정전 사태였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후 5시가 될 때까지 아파트 관리소에서는 어제 있었던 정전사태에 대한 원인과 과정, 결과에 대해서 알릴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서대문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한 결과 정전 사태에 대해서 알리는 소식을 접할 수 없었다. 일단 전후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구청 조직도의 상위 의사결정자로 보이는 감사담당관실에 전화를 걸었다. 물론 민원 접수를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민원실로 전화를 해 보았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말단 공무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조직도의 상위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확인했다. 답변은 "모른다"였다. 전화한 민원인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해달라는 요구였다. 다시 내가 물었다. 구청에서는 기본적인 뉴스 검색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침 뉴스에도 나온 서대문구의 정전사고에 대해 파악하라는 말과 함께 공지사항으로 어제 일어난 사건의 원인과 과정, 사과 말씀도 공식적으로 듣고 싶다고 요청했다. 그러나 16일 오전까지도 서대문구청 홈페이지 공지 사항에는 그 사태에 대한 설명이 공식적으로 게재돼 있지 않다.

부탁한 일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감사담당관실로 전화를 했다. 담당관실에서는 관련 부서에 민원을 전달했으며, 해당 사태를 확인하여 관련 아파트 등에 사건에 대해 고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식적으로 통보를 못 받아서 발생한 일임을 강조했다. 공식적이라는 게 무엇인가를 되물었더니, 행정라인인 동사무소를 통해서 보고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아파트의 후속조치

우리 아파트에서도 어제 그 사태에 대해서 설명하는 방송과 안내가 전무했다. 하는 수 없이 관리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 사태의 원인과 결과 등에 대해 설명할 것을 요청했다. 나는 흔쾌히 사과를 받았고, 관리소가 곧바로 방송하고 사과문을 게시한 것을 확인했다. 나는 매뉴얼에 '설명 책임'사항도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또 그날 사태를 보면, 주차 시설이 매우 부족한 우리 아파트의 사정상 소방차가 들어올 공간이 거의 없어보였다. 이중 주차된 차들을 치울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위기 상황에서는 1분 1초도 늦어져선 안 된다. 주차공간 확보가 시급해 보인다. 입주자 대표회의에서는 주변의 유휴지를 검토해 주차 공간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위기 상황에 필요한 비상공간확보에 구청의 의지가 요구된다.

13일 금요일 오후

이후 구청 주택관리과 실무담당 직원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 사과하는 말을 전했다. 이어서 안전치수과 과장이 다시 전화를 해서 신고가 안 들어왔다고 말했다. "소방차도 다녀갔는데 왜 구청에 신고가 안 들어갔느냐?"고 내가 묻자, 어쨌든 신고를 못 받았다고 말했다.

나는 신고한 주민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해 안전치수과 과장에게 전했다(행정체계에서 동주민센터 당직자에게 확인하지 않은 것 같았다). 주민이 첫 신고한 행정기관은 동 주민자치센터 당직 담당자였다. 구청은 행정동사무소의 신고만 신고로 인정하는 듯했다. 구청은 소방차가 출동해도 동에서 신고가 안 되면 그것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나는 우리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신고만이 아니라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묻는 일을 자주 하는 편이다. 물론 공적인 제안도 요구한 적이 여러 번 있다. 구청에 요구사항이 많은 것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요구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둘째는 공적인 책임을 묻는 요구사항이 있을 수 있다. 적어도 내가 구청에 요구한 것은 공적인 필요를 위한 요구사항이었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요구사항보다는 그것을 요구하는 '어떤 사람'에 주목한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소방차가 와도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을 구할 수 없는 현실  소방차가 출동했으나 엘리베이터의 문은 열수 없었다. 엘리베이터 업체 담당자가 와서 겨우 문을 열어 줬다고 한다.
소방차가 와도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을 구할 수 없는 현실 소방차가 출동했으나 엘리베이터의 문은 열수 없었다. 엘리베이터 업체 담당자가 와서 겨우 문을 열어 줬다고 한다. ⓒ 픽사베이

당부컨대, 만약 민원 내용이 아니라 민원인에 집중하고 있다면, 그런 태도는 고쳐 가면 좋겠다. 물론 내가 요청하는 사항들이 모두 옳지는 않을 것이고 부당한 요구도 있을 수 있다. 물론 그런 것들을 다 들어줄수도 없을 것이고 그것을 요구에 따라 실행하는 것도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공무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만히 두면 좋겠는데 요구사항이 많으면 싫을 법하다. 그러나 나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요청하는 것은 아니다. 공적 시스템의 문제, 공적책임을 다하라는 요구다.

우리 동에는 동네 사람들이 소소한 일들을 나누는 밴드가 있다. 나도 그 곳에서 동네 일들을 접한다. 최근 이 사태에 대해서 알리고 싶은 마음에 밴드에 올렸더니 한 구 의원이 댓글로 이렇게 답했다. 주요 내용을 옮겨 싣는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18조에는 구청장은 재난정보의 수집, 전파, 상황관리, 재난 발생 시 초동조치 및 지휘 등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재난안전상황실을 두도록 하고 있습니다"라며, "이에 따라 우리 구에서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 조례를 제정하고 상황실을 운영하며, 안전사고의 상황접수 및 보고, 전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구청장은 구청 홈페이지나 동주민센터 홈페이지에 관련 내용을 공지해야 함에도 그러지 않은 것입니다"고 알려왔다. 곧 본회의에 이 사건에 대해 개선 요구를 의회에서 요구하겠다고 했다. 해당 의원의 답변에 의하면 '전파하도록 규정'했다면 알릴 책임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홈페이지 등에 공개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도 어떤 이유인지 그 사건에 대한 공적 매체를 통한 설명은 없다. 나에게 개별적으로 전화해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고 말한다. 내가 건의한 내용, 즉 공적 설명책임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개인의 민원으로 축소하려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왜 공지가 안 되는 것인지 더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 결과를 지켜봐야겠다.

앞으로는 어떻게?

첫째, 매뉴얼이 작동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고가 안 되었던 것 같다. 동주민센터의 당직 직원은 왜 신고를 하지 않았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동장에게 설명을 듣진 못했다. 신고를 안 했던 동 직원과 관리 책임을 다하지 못한 동장, 구청장의 책임을 묻고, 그런 일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우리 아파트의 매뉴얼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언제나 확인하고 숙지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이행 훈련도 필요해 보인다.

둘째, 설명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공공성은 공익에서 시작된다. 알리는 것은 더 잘하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서대문구청장은 4.10일 정전사태에 대해서 많은 주민들이 잘 모를 수 있으므로 공식적인 매체를 통해서 알려야 할 것이다. 그 원인과 과정, 결과에 대해서 알릴 것은 알리고 미흡한 부분은 사과하고 다음 조치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재난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주민들도 경각심을 갖는 태도를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주민들은 정기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해 보인다. 관련 위원회에서는 이런 일들에 대해서 회의를 통해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소위 각종 위원회에는 대표성을 가진 주민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서대문구청 홈페이지의 98개나 되는 위원회목록에는 위원회 이름을 볼 수 있으나 그 내용은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공적으로 열리는 위원회 활동을 주민들에게 알리지 못할 무슨 이유가 있는 걸까. 수차례 위원회회의록 공개를 요청했으나 해를 넘겨도 그것은 알 수 없다. 이것은 각 위원회 의원들이 공개를 요구하지 않은 때문으로도 보이고, 구청 담당자들도 '주민들이 요구하지도 않는데 굳이 공개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주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 별도의 정보공개청구 요청을 하지 않아도 이 위원회 회의록은 공개되어야 한다. 구의회 홈페이지에 회의록이 공개되듯이 각 위원회 회의도록 공개되어야 마땅하다. 더 널리 알려서 주민들이 더 많이 관심을 기울이게 안내하는 것, 곧 '참여' 민주주의의 방안이라 생각한다.

구청에 대한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다.

하나. 4.10일 정전사태에 대해 공식적인 통로를 이용해 원인과 대응책, 결과를 상세히 밝혀야 한다. 그것이 공공기관의 '설명책임'이다.

하나. 안전매뉴얼을 구비하고 공식적인 교육기회를 통해 알려야 한다. 주민들은 실생활에서 그 매뉴얼이 익숙해 질때까지 훈련을 거듭해야 한다.

하나. 정전사태와 같은 비상사태에 비상연락을 제대로 하지 않은 직무유기자들에게는 적합한 조치를 취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하나. 구청은 안전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지 정기적으로 관리감독 해야할 책임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안전한 일상은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안전대비를 위한 구청의 책무는 위기상황에서 확인된다. 최근 겪은 일을 통해 안전한 사회를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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