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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장수'라는 말을 아시나요?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일과 스트레스로 각종 질병을 안고 살아야 하는 '웃픈' 현실을 뜻합니다.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애환을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중이 절이 싫어서 떠나는 게 아니라, 중이 중이 싫어서 떠나는 거야."

아는 언니는 이 말을 남기고 퇴사를 했다. 명언이었다. 곱씹어 보니 회사가 싫어서 그만두고 싶은 게 아니라, 사람이 싫어서 그만두고 싶은 거였다. 회사는 일면식도 없다. 회장님은 내 직장 상사나 동료가 아니다. 중은 중이 싫어 절을 떠난다.

대학교를 졸업한 24살부터 삼십 대 중반까지 총 8번의 이직 이력이 있는 나. 생각해 보니 회사가 싫어서 사표를 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 안 하는 선배, 이기적인 동료, 강압적인 상사를 견디지 못해 자발적으로 그만두었다.

이직이 잦아지자 나를 자책하기도 했지만 명백한 이유는 중이 싫어서, 정확히 말하면 회사를 함께 다니는 '사람'에게 질려서였다. 함께 일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랬던 건 아니지만 마음이 틀어지는 대는 딱 한 가지 이유면 충분하다.

약으로 버틴 지난 날

 몸이 버텨준 게 아니라 몸에 털어 넣은 약과 주사가 일시적으로 버티게 하는 거였다.
몸이 버텨준 게 아니라 몸에 털어 넣은 약과 주사가 일시적으로 버티게 하는 거였다. ⓒ unsplash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에 일이 쌓이니 아프기 일쑤였다. 두통부터 몸살, 소화불량에 피부병까지 온갖 종류의 잔병치레란 치레는 다 치르고 살았다. 과한 업무로 몸이 피곤한 건 주말 이틀 푹 자고 나면 좀 괜찮아졌지만, 상한 감정으로 마음이 아픈 건 주말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몸은 피곤했고 마음은 지쳐갔다.

자연스럽게 월요병이 왔고 그 월요병은 일요일부터 전조증상이 왔다. 약을 먹어도 잠을 자도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월요일마다 도졌던 병. 그렇게 매주 월요일마다 앓았다. 월요일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월요병은 회사원에게만 온다. 월요일엔 월요병, 화요일엔 화병, 수·목·금엔 잔병... 그렇게 직장 생활 내내 그 병들의 치레가 반복됐다.

10년 가까이 회사에 다닐 동안 밥과 몸을 챙겼던 기억이 없다. 회사원의 1순위는 일. 당연히 밥과 몸은 밀려나기 십상이었다. 끼니를 거르고 몸을 해쳐 월급을 받았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난 무슨 짓을 한 걸까? 식사는 배가 고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끝나고 시간이 남으면 할 수 있는 거였고, 그마저도 잠에 밀려 거르기 일쑤였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그저 눕고만 싶었다.

나는 나를 위해 몸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일을 위해 몸을 혹사시켰다. 참 미련했다. 감기와 몸살, 두통은 일상이었고 그 아픈 일상은 반복됐다. 아침에는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피곤했고, 점심에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했고, 저녁에는 퇴근해도 피곤했다. 직장생활 10년 차. 대상포진이 왔다.

생각해 보면 회사에 다니면서 나는 어떻게든 일을 잘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어떻게든 건강해지려고 노력한 적은 없었다. 젊었고 의욕은 넘쳤고 몸은 자연스레 버텨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이 버텨준 게 아니라 몸에 털어 넣은 약과 주사가 일시적으로 버티게 하는 거였다. 10년 가까이 그렇게 버텼다니. 정말 미련했다.

하지만 대상포진이 오기까지 그 원인을 단순히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과한 업무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내가 돌보지 않은 몸이 있었다. 그동안의 잔병치레들이 다 몸이 보내는 신호였는데 무시했고 결국 대상포진이라는 사고가 난 것이다. 대형 사고가 나고 나니 그제 서야 몸을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호부터 잘 지킬걸.

'내 안에 건강함이 없다면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것이거나 무언가를 안 한 것이다.' - 아서 프랭크 <아픈 몸을 살다>


책 한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 맞다. 난 잘못 했고 안 하기도 했다. 회사원의 1순위가 일이라면 0순위는 몸일 텐데, 직장생활을 했던 내내 나는 건강했던 기억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건강해지려고 하지도 않았다. 일에 치여 몸은 항상 뒷전이었다.

10년 만에 내 몸을 돌보다

십년 만에 내 몸을 돌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제일 처음 수영을 등록했다. 운동이란 것을 해야겠다 마음먹었고, 운동 효과도 효과지만 수영을 하고 나면 내가 내 몸을 돌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마저 시원해졌다. 운동을 하면 육체적인 효과 전에 심리적 효과가 먼저 나타난다.

그리고 식사시간이 되면 메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내가 먹고 싶은 것 동시에 몸에 좋은 것으로 '육해공'을 번갈아 가며, 시간과 피곤함 쫓겨 밥이 밀려나지 않도록. 시간이 남았을 때 먹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어 밥을 먹었다. 무엇보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내 마음을 돌볼 수가 있었다. 보여질 필요 없는 감정에 집중했고, 가식 없는 의식에 머물렀다.

과한 업무만큼이나 과한 감정이 원인이었던 직장생활. 나는 항상 싹싹한 신입사원, 솔선수범하는 동기, 말 잘 듣는 후배, 일 잘하는 직원이고자 했다. 무리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고, 더 무리한 업무를 분배할 줄 몰랐다. 회사 사람들에게 웃고 순응하는 만큼 나의 감정이 버겁고 힘겨웠다. 질렸고 퇴사했고 반복됐다.

이제야 안다. 그것은 욕심이었고 잘못이었다. 몸만큼이나 마음도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나는 이제 나의 몸에 솔선수범하는 내가 되기로 한다. 중이 싫어 절을 떠난 중은, 이제 다른 중도 싫어하고 싶지 않고 그 어떤 절도 떠나고 싶지 않다.

 죽어라 일하다 진짜 죽을 수도 있고 맨날 골골대다 골로 갈 수 있는 인생. 챙기자 내 몸, 돌보자 내 맘.
죽어라 일하다 진짜 죽을 수도 있고 맨날 골골대다 골로 갈 수 있는 인생. 챙기자 내 몸, 돌보자 내 맘. ⓒ unsplash

사실 이것들은 회사에 다닐 때 진작 했어야 하는 것들이다. 적어도 끼니라도 잘 챙기고 몸을 살펴야 했는데 거르고 무시했으니 건강함이 없는 건 당연했다. 사표까지 내고 몸을 챙기기엔 내가 운동선수를 할 것도 아니고 미리미리 좀 했다면 좋았을 것을. 십 년을 미뤘으니 몸은 망가졌고 운동이 아니라 요양을 해야 할 판이다. 또 밑줄을 긋는다.

'한 사람이 살아온 역사는 몸에 기록된다.' - 아서 프랭크 <아픈 몸을 살다>


두통, 감기, 몸살, 만성피로를 비롯한 수많은 잔병치레와 대상포진까지. 그동안 내가 새긴 역사들이다. 말 그대로 흑역사. 앞으로의 역사는 잘 새겨봐야지 다짐한다. 회사는 바꿀 수 있어도 몸은 바꿀 수 없는 거니까. 죽어라 일하다 진짜 죽을 수도 있고 맨날 골골대다 골로 갈 수 있는 인생. 챙기자 내 몸, 돌보자 내 맘.

시간 내서 밥 먹고, 마음 내서 몸 챙기자. 건강해지자.


#건강#회사원#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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