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같다고 해서 동무일 수는 없습니다. 한국말에서 '동무·벗·또래'는 저마다 달리 씁니다. 요새는 이 세 낱말보다 '친구'라는 한자말을 흔히 쓰지만, 사람을 가리키는 자리에 쓰는 낱말을 찬찬히 살펴서 제대로 쓰도록 가누어야지 싶어요.
먼저 '동무'는 늘 가까이에 어울리거나 어떤 일을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벗'은 나이가 비슷하면서 가까이 어울리는 사람이에요. '또래'는 나이나 생각이나 마음이 비슷한 사람이지요. '친구'는 가까이 오래 사귄 사람입니다. 곧 '친구'는 '동무'하고 매우 닮기는 하되 '일동무·배움동무·놀이동무·책동무'처럼 쓰임새를 넓히기는 어렵습니다.
가만히 따지면 한자말 '동지'는 '동무'하고도 뜻이 맞물릴 만합니다. 나이가 달라도 가까이 어울리거나 일을 함께 할 적에 '동무'이니까요. 예부터 '어깨동무' 같은 말을 쓰는 까닭을 되돌아봅니다. 아무나 '어깨동무'이지 않아요. 나이가 비슷하면서 학교를 같이 다니면 '또래'일 뿐이고, 가까이 어울리면서 '동무'가 되고, 두고두고 사귀어 마음 깊이 나눌 적에 '벗'으로 거듭나는 셈입니다.
친구들은 무언가를 소개할 때 그것을 직접 보여주거나 말을 했지만,
데니스는 몸짓으로 나타냈어요. (11∼12쪽)
그림책 <친구 되기>(살리냐 윤/최용은 옮김, 키즈엠, 2016)를 읽습니다. 책이름은 "친구 되기"입니다만, 줄거리를 곰곰이 새기면 "동무 되기"를 다루는구나 싶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가 왜 여느 다른 아이들처럼 '말로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지 않'고 '몸짓으로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아주 어릴 적부터 이렇게 했다는데요, 그림책에서 이 대목을 굳이 더 파고들지는 않습니다만, '몸짓말로 생각을 나타내는 아이'는 말을 못 하는 아이일 수 있고, 이 아이 어버이가 말을 못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말을 썩 안 좋아하는 아이일 수 있어요. 또는 아이 어버이가 다른 나라로 옮겨서 사느라 아이한테는 모든 말이 낯설어서 도무지 아무 말도 못 쓸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대수롭지는 않습니다. '입말 아닌 몸짓말'을 꼭 말 못 하는 아이만 쓰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림책 <친구 되기>는 말을 못 하는 아이뿐 아니라, 애써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모든 아이 마음을 짚어 준다고 할 만하지 싶습니다.
친구들은 나무에 오르는 걸 좋아했지만,
데니스는 자신이 나무가 되는 걸 더 좋아했어요. (13∼14쪽)
참 마땅한데, 모든 아이가 똑같아야 하지 않습니다. 매우 조잘조잘 수다쟁이일 수 있고, 꼭 할 말만 할 수 있습니다. 자질구레한 데까지 말하기 좋아할 수 있고, 알맞게 말을 끊고 싶을 수 있습니다. 뒤나 곁에서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말이 무척 적을 수 있어요.
어떤 모습이든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우리는 서로 동무가 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어느 날 문득 외롭다고 느껴요. 말을 할 수 없거나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이 아이 곁에 찾아오는 또래가 없습니다. 또래가 없지요.
또래들 사이에서 외롭다고 여기면서 혼자 심심하던 아이는 속으로 바랍니다. '아, 나한테도 마음이 맞는 동무가 있으면!' 하고요. 이렇게 바라고 바라고 하루하루 지내던 어느 때에...
그러던 어느 날, 데니스가 상상의 공을 발로 뻥 찼어요.
그런데 누군가가 그 공을 덥석 잡았어요!
바로 조이였어요. (20∼22쪽)
또래는 온누리에 대단히 많습니다. 아이나 어른 모두 매한가지예요. 열 살 또래도 서른 살 또래는 대단히 많지요. 열두 살 또래라든지 마흔두 살 또래도 아주 많고요.
둘레를 보면 우리 또래는 많을 텐데, 이 가운데 동무가 될 사람은 몇일까요? 우리는 동무가 될 사람을 몇쯤 사귀면 즐거울까요? 모든 또래를 동무로 사귀어야 할까요? 숱한 또래 가운데 딱 한 사람이 동무가 되면 어떨까요?
그림책 <친구 되기>는 상냥하게 줄거리를 이끕니다. 몸짓말로 살아가는 아이한테 몸짓말로 다가온 또래 하나를 그려 줍니다. 몸짓말 아이 곁에 선 몸짓말 아이는 빙그레 웃으면서 함께 몸짓말을 합니다. 처음에는 혼자라고 여기던 몸짓말 아이는 새로운 몸짓말 아이를 만나면서 마음이 확 트인다고 느낍니다.
시나브로 부푼 마음이 되고, 어느 날 문득 새로운 길을 깨닫습니다. 바로 '몸짓말이란 무엇인가?'를 깨닫는데요. 아이가 몸짓말을 한대서 꼭 몸짓말로 마주할 동무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털어냅니다. 몸짓말로 다가온 아이를 만나서 마음으로 서로 즐거운 나날을 누린 뒤에, 다른 또래도, 입말을 하는 또래도, 얼마든지 마음을 열어 사귈 수 있는 사이인 줄 느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기로 해요.
동무란, 멀리 있지도 가까이 있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나이를 넘어 얼마든지 동무가 된다고 생각해요. 마을을 넘고 고장을 넘으며 나라를 넘어서도 얼마든지 동무가 된다고 생각해요. 지구라는 별을 넘어 온누리를 통틀어 '우주동무'도 사귈 수 있을 테고요. 아이들 가슴 한자락에도, 어른들 마음 한켠에도, 상냥하며 즐거운 웃음꽃이 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친구 되기>(살리냐 윤 / 최용은 옮김 / 키즈엠 / 2016.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