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명칭의 사용 제한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 추천자 수가 5만 명에 육박하는 등 조현민 전무 갑질에 대한 공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치권까지 대한항공 명칭 사용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명칭 사용 제한을 요청하는 청원글은 이날 오후 5시 10분 현재 모두 5만 3513명의 동의를 받은 상태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갑질이 알려진 다음날(13일) 등록된 이 청원은 현재 최다청원글 목록에도 올라와 있다.
청원글 게시자는 "대한항공은 1969년 3월 민영화되어 운영되고 있는 민간 사기업이고, 오너 일가의 막가한 경영권과 지배구조의 틀을 갖고 운영된다"며 "그럼에도 '대한항공', 영문명 'korean air'와 같이 대한민국을 표현하는 표기법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오너 일가의 갑질 폭력이 수시로 일어나고 사회 이슈가 되고있는 개인기업 때문에 해당 뉴스를 접하게 되는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그와 같다고 인식될 수 있는 소지가 너무나 크다"며 명칭 사용 금지를 요청하는 배경을 밝혔다.
국영 항공사로 출발한 대한항공, 적자로 민간에 매각조양호 회장 일가가 실질적으로 소유한 대한항공은 원래 국영 항공사로 출발했다. 정부는 지난 1962년 민관 합동으로 초기 자본금 50억 원을 투입해, 국영항공사인 대한항공을 설립한다. 당시 '대한항공'이라는 이름에는 독점권이 부여됐다.
당시 대한항공공사법안에 적시된 제7조 유사명칭사용금지 조항에 따르면, 공사가 아닌 다른 회사가 '대한항공'이나 유사한 명칭은 쓰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대한'이라는 이름을 아무나 쓰지 못하게 했던 것.
하지만 계속된 운영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지분 소유 규정 등을 바꿔 대한항공을 민간에 매각한다. 지난 1969년 2월 정부와 산업은행은 대한항공 지분 96.3%(145만3000주)를 14억 5300만원에 수의계약으로 한진상사에 넘긴다. 그러면서 대한항공은 민간 소유가 됐다. 대한항공과 관련된 명칭을 쓰지 못하도록 한 대한항공공사법안은 같은 해 4월 폐지됐다. 하지만 당시 한진 상사는 대한항공이란 회사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고, 정부도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다.
현재도 대한항공이란 명칭은 주식회사 '대한항공'에 의해 공식 등록된 상표다. 16일 특허정보넷에 따르면, '대한항공'이라는 이름으로 45건의 상표가 출원돼 있다. 모두 주식회사 대한항공이 출원한 상표로 상표권법상 보호를 받는다.
따라서 정부가 이를 임의로 회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4년 땅콩 회항 당시에도 관련 내용에 대한 검토가 이뤄졌지만, 마땅한 근거가 없었다는 게 정부 쪽 결론이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지난 2014년 땅콩회항 사건 때도 같은 검토가 있었지만, 민간 기업 사명에 관한 거라서 (회수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면서 "현재 사건 관련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국토부 차원에서 제재가 들어갈 부분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정치권 "국적기 명예를 부여하는 게 맞는지 검토해야"... 경찰도 내사 착수
한편 민주당 등 정치권도 대한항공의 명칭 사용 논란 문제를 짚고 나섰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재벌 2세·3세들의 갑질 논란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조현민 전무의 갑질은 국민들에게 또 다른 충격을 줬다"라며 "정부는 조양호 일가에 대해 국적기의 명예를 부여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 검토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대한항공이 나라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브랜드 가치를 스스로 훼손시켜 주주들에게 피해를 준 행위를 반성한다면 조씨 형제의 경영 퇴진이라는 근본적 쇄신책을 내놔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난 14일 <오마이뉴스>가 욕설 음성파일을 공개하면서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에 대한 사퇴 여론은 커지고 있다. 대한항공 3개 노조가 조 전무의 퇴진을 요구했고, 경찰도 지난주 물뿌리기 갑질과 관련한 내사에 착수했다.
대한항공노동조합과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 대한항공조종사새노동조합 등 3개 노조는 '대한항공 경영층 갑질 논란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조 전무의 사퇴를 요구했다. 3개 노조가 동시에 한 목소리를 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대한항공 3개 노조는 "한목소리로 작금의 사태에 심히 우려를 표명하는 바이다"라며 조현민 전무의 경영일선 즉각 사퇴와 국민들을 포함한 모든 직원에 대한 조 전무의 진심 어린 사과, 경영층의 재발 방지 약속을 촉구했다.
경찰도 "업무상 지위에 관한 갑질 행위에 대해 엄정히 수사할 것"이라며 지난 13일부터 조 전무 사건에 대한 내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조 전무의 행동이 폭행이나 업무방해에 해당하는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사 결과 경찰이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면 정식 수사로 전환하고, 조 전무는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을 수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물을 뿌리는 행위 자체도 폭행죄로 처벌이 가능하다"면서 "통상 내사를 하면 피해자 등을 상대로 사실 관계 확인 작업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