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 놓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는 관대하지 않다. 그런 이유로 감정에 관한 적합한 학습 없이 우리는 그저 감정은 꾹 누르며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지난해 9월에 <아들러의 감정 수업>은 국내에 번역 출간된 이후, 그해 12월 5쇄가 발행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여전히 서점에서 꾸준히 독자의 손길이 닿고 있다. 책을 찾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감정 토로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는 <에티카>에 48가지 감정표를 만들었다. 비루함, 자긍심, 경탄, 경쟁심, 야심 등이 그렇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을 48가지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는가. 과학자들의 일설에 따르면 하루 평균 사람이 하는 생각이 5만에서 7만개 사이라고 하니, 그 생각에 따른 감정 역시 그만한 개수이지 않을까 추측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많은 감정을 해석하는데 서툴렀다. 책을 읽기 전에는 감정에 목적이 있다는 말 그리고 그 감정은 새로운 감정으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책은 1.감정은 선택할 수 있다. 2.다양한 감정과 마주하기. 3.스트레스 조절과 긍정적인 자기 발견 4.감정의 진지한 소통 이라는 큰 주제로 묶여 있다. 그리고 마치 실제 강의를 듣는 것처럼 각각의 큰 주제 아래는 더 잘게 쪼갠 소주제를 바탕으로 예행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독자에게 과제를 제시했다. 올바른 감정 소통법을 알려주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야기되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분노 속에 내재된 혐오는 어디에서부터 발원하는가. 게시판 댓글에 가득 쌓인 감정의 표출은 이미 정도를 넘어섰다. '악 감정의 배설물'이라 표현할 이러한 잘못된 감정 표출은 비단 하루 이틀의 문제는 아니었다. 건강하지 못한 감정 그리고 표현 방법 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국내에 사이코드라마를 최초로 도입한 예술심리 치료사가 있다. 바로 책을 번역한 사람이다. 김유광 정신과 전문의는 이 책의 미덕을 책의 '옮긴이의 말'을 통해 서술했다.
"이 책이 가진 미덕은 각각의 수많은 감정의 목적과 특징을 친절히 설명하고, 그 문제점과 해결방법을 자상하게 제시해준다는 점이다. 특히 31개에 도달하는 '오늘의 감정 수업'은 책 속의 이론들을 직접 실천하도록 돕는다. 책 속의 과제들을 충실히 이행하다 보면 불쾌한 감정을 다스리고 감정의 주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6쪽)
우리의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감정의 주인공이 된다는 말은 무엇일까. 언제는 감정이 내 것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던가. 특히, 우리의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두려운 상황을 마주하면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가.
안달복달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경험의 한 사례로 이 책은 상사가 말을 건네지 않으면 불안한 이유를 뽑았다.
"상사가 말을 건네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해고의 전조가 아닐까 불안해한다. 침묵의 의미를 과장한 탓이다. 불안은 불쾌한 정신적 긴장 상태뿐 아니라 신체적 증상까지 동반하는데, 불안한 사람은 대개 육체적 정신적으로 탈진하고 긴장하게 된다."(168쪽)
뇌를 연구하는 인지 과학자는 우리 뇌가 공포나 불안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을 비교했을 때, 우리 뇌는 긍정의 신호보다는 부정의 신호를 좀 더 오래 기억한다는 근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부정적 생각은 바로 우리의 안전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원시 시대 우리는 사자의 발톱 같은 무기가 없었다. 태어나서 보행을 하기까지 다른 동물에 비해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고 한다면 생존을 위해 위협에 대처하는 자기 보호에 관한 기억은 매우 오랫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불안과 공포는 물리적 시간으로 따진다면 매우 찰나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은 매우 뚜렷하여 종종 우리의 꿈, 생활 속 불안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육체적으로는 수면 장애, 식욕 부진, 고혈압, 두통의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면에서 책은 긍정적 감정의 비중보다는 부정적 감정을 어떻게 전환시킬 것인가에 대해 주목했다. 감정에 압사 당하지 않기 위해 감정이라는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가 과연 감정을 선택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먼저 시도해 볼 것인가 등을 자문답한다.
프로이트는 감정을 과거의 사건 때문에 일어났다는 '원인론'을 주장했다. 이러한 감정은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는 있지만, 그만 둘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러는 '생활 양식' 속에서 감정을 생각했다. 인간의 행동과 감정은 저마다의 고유한 목적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아들러의 목적론'이라 부른다.
"불안감의 목적은 무엇일까?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경계심을 갖추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위험한 상황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불안감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극도의 불안감이 심리적으로 힘들게 하고 상습적인 지각을 유발하는 등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므로 경계심을 갖추되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27쪽)
감정을 마주 볼 용기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감정을 마주 볼 용기다. 실제로 하루에 일어나 다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우리는 수만 가지의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에 대해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손바닥에 땀이 나고 입이 마르고 근육이 긴장하는 생리적 반응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아, 지금 내가 이런 상태구나'라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지 상태가 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책은 현실에 집중할 것을 독자에게 권유한다. 머릿속 현실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 말이다. 상상은 상상을 불러온다고 했다. 가지처럼 퍼져나가는 상상을 '그만'이라 말하고 오로지 일어난 상황에 대해서만 몰입하는 것이다. 지금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고, 차근차근 계단을 오르듯 한 발씩 걷는 감각부터 느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은 자신에게만 국한할 문제가 아니다. 자신을 마주볼 용기가 있는 자는 타인을 바라보는 마음의 그릇 역시 커진다. 편견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의 말만 되집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비언어라 부르는 표정, 제스처, 말투 등을 눈여겨 볼 눈을 얻게 된다.
아, 그렇구나. 저 사람 역시 저것에 아프구나.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야.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은 갈등 상황을 잘 이해하고 해결했을 때 사용하는 속담이다. '내 말대로 하란 말이야'가 아니라, 감정 문제에 얽혀진 갈등 상황 속에 드러난 분노, 상심, 불안감등을 관찰해야만 대안 역시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감정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사람이라면 이제 화법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책은 내 감정의 원인을 보통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며, 'YOU-메시지'의 그릇됨을 지적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네 탓이야' 하는 말이 그것이다.
"YOU-메시지는 남을 판단하고, 배려하지 않으며, 상대에게 자기의 뜻을 강요하려는 태도가 담겨있다. 당신이 이런 태도를 보였다면, 곧바로 자기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I-메시지로 화법을 전환해야 한다." (282쪽)
차이점이 아닌 공통점을 찾고 판단이 아닌 생각의 공유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라 말하는 책. 어쩌면 우리 모두 지극히 이 사실을 알고는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실천에서 우리는 결정을 혼자만 하려고 했다.
결정 역시 독단이나 남에게 미루는 것이 아닌 같이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얘기하고 그가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관점을 파악한다. 협력하여 갈등을 해결한다'는 역할 바꾸기는 이제는 보편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어렵게 느껴졌을까. 문제는 익숙하게 우리가 훈련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기 모습 그리기는 마음속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림으로써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스스로 통제하는 방법이다. 즉, 텔레비전을 보듯 마음속에서 현실을 간접 경험하는 방식이다. (중략) 이 방법의 핵심 열쇠는 상황을 마음속으로 그리는 데 있다. 이 방법을 활용하면 지나간 상황에 매달려 고심하거나 자책할 필요가 없다. 좀 더 적절하게 대응했더라면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상상하면 된다. 이 '마음의 스크린'을 통해 당신은 믿음과 감정, 그리고 태도를 통제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스스로 책임지는 태도를 길러주고, 불쾌한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미리 연습까지 할 수 있다." (309~3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