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4일 끔찍한 범죄가 발생했다. 인천 부평역 인근 건물 1층 여자화장실에서 김아무개(47ㆍ남)씨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A(20ㆍ여)씨의 머리 등을 둔기로 수차례 폭행하고 흉기로 찌른 뒤 달아난 것이다. 검거된 김씨는 수사 과정에서 "현찰이 모자라 담배를 사야하나 편의점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데, A씨가 나를 무시하는 눈으로 쳐다봤다"며 "A씨가 화장실 가는 걸 보고 혼내주려고 따라갔다가 반항해, 둔기로 때렸다"고 말했다. 재판에서 모든 혐의를 인정한 김씨의 결심 공판은 5월 24일로 예정돼있다.
피해자 A씨 어머니, "생계비 부담으로 집안 휘청"<시사인천>은 지난 25일 피해자 A씨의 어머니(50)를 만났다. A씨는 내리치는 둔기를 막다 다친 손가락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A씨는 두개골이 골절되고 손가락뼈가 부서지는 부상을 당했다. 세 번에 걸쳐 머리와 손가락 수술을 받고 퇴원했는데, 아직도 어지럼증을 호소한다. 신경을 다친 손가락을 사용하기 힘들어 이틀에 한 번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A씨는 지적장애 2급인 남동생(15)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의대에 진학하겠다며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다 참변을 당했다. 이젠 입시 준비는커녕 기약 없는 회복만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정신적 상처도 깊게 남았다. A씨의 어머니는 "사건 이후 낯선 사람, 특히 남자를 무서워해 같은 공간에 있기 힘들어한다. 심지어 혼자 바깥에 나가는 것도 겁을 낸다"며 "함몰된 두개골 모양을 잡으려고 철 보정물을 영구 이식했는데, 딸이 '내가 영원히 로봇으로 살아야하는 것처럼 느껴져 두렵다'고 말할 때마다 너무 괴롭다"고 토로했다.
경제적 부담도 이 가족을 짓누르고 있다. 산업재해보험과 범죄 피해자 지원금 등 여러 도움을 받았지만,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머리카락 이식, 정신과 그림치료 등)의 치료는 엄두도 못 낸다. 치료비보다 더 부담이 되는 건 가족 생계비다. A씨의 어머니는 "딸이 신체적ㆍ정신적으로 힘들다보니 계속 옆에서 보살펴야한다. 돈이 많이 나가는데도 일을 하지 못해 집안 사정이 힘들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서 "딸이 의사가 되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려는 의지가 강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안쓰럽다"며 "경찰과 검찰,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해줘 큰 도움이 되긴 했으나, 지원체계를 잘 알지도 못하고 앞으로 어떻게 감당해야할지 막막하다"고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A씨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고 나서 시민단체들을 주축으로 모금을 하고 있지만, 민간이 주도하는 모금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조선희 인천여성회 젠더생활정치위원장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무 이유 없이 폭력을 당하는 세상에서 피해자가 개인적으로 운이 나빴다고 여길 문제가 아니다"라며 "민간에 맡길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시민의 안전 보장을 위해 국가의 촘촘한 시스템 마련과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범죄피해자 지원 절차 복잡하고 오래 걸려현행 범죄피해자지원제도를 살펴보면, 법률ㆍ경제ㆍ의료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원하게 돼있다. 피해자 유형에 따라 법무부ㆍ경찰(강력범죄 피해자), 여성가족부(성폭력ㆍ가정폭력), 보건복지부(아동관련 범죄) 등, 담당 부처가 세분화돼있다.
또, 강력 범죄로 인해 사망ㆍ장해(신체장해 1~10등급)ㆍ중(重)상해를 입은 피해자와 유족에게 범죄피해자구조금 명목으로 재정적 지원을 한다. 피해자가 5주 이상 치료를 요하는 부상을 입은 경우 치료비를 연 1500만 원, 총 5000만 원 한도 내에서 실비 지급한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에도 불구하고 범죄피해자 지원 주체가 분산돼있다 보니 빠르고 효율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지속돼왔다. 범죄피해자 보호가 적절하게 이뤄지려면 범죄 발생 직후 현장에서부터 지원절차가 가동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피해자를 가장 먼저 만나는 경찰에 지원 업무도 집중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지난 17일부터 시행된 개정 '경찰법ㆍ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라 경찰 임무와 경찰관 직무 범위에 '범죄피해자 보호'를 명시하면서 경찰의 피해자 보호 의무가 더욱 커졌다. 개정된 '경찰법'은 피해자와 가깝게 접촉하는 업무 특성상 경찰의 피해자 보호 업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했다.
하지만 의무만 강조됐지, 경찰의 실질적 권한은 많지 않다. 현행 범죄피해자지원제도상 절차와 재정 문제 때문에 경찰의 역할은 피해자들을 지자체나 범죄피해자지원센터(법무부가 업무 위탁)에 연결해주는 것에 그친다.
예를 들어 상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이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치료비ㆍ주거이전비 등을 신청하면, 범죄피해구조심의회에서 심의해 법무부가 내려 보낸 예산 범위 내에서 지원을 결정한다. 부평역 여성폭력 사건의 경우, 관할 경찰서 피해자 보호 담당관이 부평구에 긴급지원을 요청해 생활비 명목으로 지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범죄피해자는 시시각각 생기므로 지원 절차가 최대한 빠르게 진행돼야하는데, 현행 지원체계상 절차가 복잡하고 심의 기간이 길어 적절한 시기에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국민적 관심을 받고 공론화된 사건에 대해선 특별 심의를 거쳐 빠른 지원이 가능하지만, 일반적인 심의 절차를 거치는 대다수 피해자는 신속한 수혜가 힘들다.
또한, 피해자보호기금을 법무부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가 나눠서 사용하기 때문에 정작 경찰에는 전체 기금의 약 1%인 연 10여억 원만 할당되고 있다. 이로 인해 경찰은 검찰이나 지자체에 요청해 우회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심의절차 간소화, 경찰 권한 확대 필요"이러한 한계를 극복해보고자 인천지방경찰청은 지난 2012년 8월 전국 최초로 범죄피해자보호협의회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 협의회는 범죄피해자 지원예산과는 별도로 기금을 마련해 자체 심의를 거쳐 선정한 범죄피해자에게 전달하고, 협의회 소속 전문가들이 의료ㆍ경제 등 관련 분야에서 조언해준다. 그러나 협의회의 지원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천경찰청 관계자는 "공적 차원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피해 당사자들이 느끼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고, 사각지대는 분명히 존재한다"며 "경찰 나름대로 효율적이고 빠른 피해자 지원이 가능하게 절차와 예산 집행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한 번에 바꾸는 것은 어렵겠지만, 검찰에 편중된 피해자 지원 심의 권한 일부를 가져와 경찰 내에서 자체 심의하는 방식으로 절차를 간소화하고 예산도 더 끌어오는 등, 검찰을 거치지 않고 경찰이 바로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김망규 (사)한국피해자지원협회 인천지부장은 "지원 여부가 빠르게 결정돼야 범죄피해자지원제도가 실효성이 있는데, 절차가 복잡하고 기준도 까다로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며 "탁상행정이 아닌 피해자 중심의 지원이 이뤄지기 위해 예산 일부를 경찰청에 편성해야한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