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덩샤오핑 이래로 격대지정(隔代指定)의 후계자 지명 방식을 유지해왔다. 이는 쉽게 말해 다음 후계자를 선정할 때 다다음 후계자까지 함께 결정하는 제도를 뜻한다. 중국은 분명 공산당 일당독재로 통치되는 국가이지만, 당 안에도 여러 파벌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어느 한 파벌이 연속적으로 권력을 쥘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제도가 고안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장쩌민은 자신의 계파가 아닌 덩샤오핑이 지목했던 후진타오에게 주석 자리를 물려주었고, 후진타오 역시 자신이 지지하던 리커창이 아닌 후진타오가 지원한 시진핑에게 주석직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런 관례에 따라 시진핑의 뒤를 이을 인물은 후진타오 계열이 지지하는 후춘화 광둥성 서기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그런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지난 3월 11일 열린 제 13기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국가 주석의 임기 제한을 2회로 하는 규정이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의 최고지도자 그룹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되어 후계자 연습을 이어갈 것으로 보였던 후춘화는 원하는 직함을 얻는 데에 실패하였다.
이런 놀라운 결과에 세계의 언론들은 기민하게 반응했다. 중국의 권력지형에 나타난 큰 변화에 주목하며, 시진핑이 '21세기의 황제'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쏟아내었다. 유상철 기자의 <2035 황제의 길>은 이러한 의구심에 대한 훌륭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시진핑이 어떤 인물이며, 그가 지난 집권 1기 동안 행한 일련의 정책들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상세한 답변이 담겨있다.
시진핑이 꾸는 꿈과 중화주의의 부활저자가 주목하는 시진핑의 단어는 '중국몽'이다. 여기서 몽은 꿈 몽(夢)자로, 즉 중국의 꿈을 뜻한다. 저자가 이 단어에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시진핑이 집권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그리고 여러 영역에서 내뱉어 온 단어가 바로 이 중국몽이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이전의 지도자들과 확연히 다르다. 덩샤오핑은 모든 측면에서 서방에 뒤쳐져 있던 당시의 중국 현실을 인식하고서는 경제발전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며 다른 국제정치 문제에서는 침묵하는 '도광양회'를 내걸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이어받은 장쩌민과 후진타오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은 걸음을 걸었다. 그러나 시진핑은 이들과 달리 국제정치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 책의 분석이다.
세계무대를 향한 시진핑의 야심은 오늘날 중국이 내세우는 일대일로 정책으로 대표된다. 중국이 말하는 일대일로 정책은 인류 사회 공동의 경제적 번영을 위한 발전 방법이다. 하지만 저자가 보는 관점은 다르다. 여기에는 미국에 대항하려는 정치적 의도 역시 짙게 깔려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일본과 한국, 혹은 호주 등과 연대를 공고히 하자, 과거와 달리 이를 방관하기보다는 다른 국가들에서 길을 찾아 돌파해 내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분석이다.
시진핑이 말하는 중국의 꿈은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 나라를 넘어 다시금 과거 청나라 시절처럼 아시아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정치경제적 패권을 공고히 하는 국가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가 내세우는 중국몽의 구체적 내용으로서의 강한 군대의 건설과 중국의 핵심 이익에 대한 강조 등에서 이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은 '사드 갈등'을 겪으며 이를 어느 나라보다 직접적으로 경험했다.
정적을 제거하고 우뚝 서다대내외적 강경책을 펼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도자 본인의 권력일 것이다. 책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시진핑이 결코 단순히 꽃가마를 탄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집권 이전에는 혁명 원로의 자식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문화대혁명 등을 겪으며 밀려나는 바람에 힘든 세월을 보내야 했고, 정치에 발을 들인 이후 수십 년간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내기 위해 바람 질 날 없이 노력해왔다.
물론 권력은 단순히 노력만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을 잡은 이후의 시진핑은 한 손에는 부패 척결이라는 칼을 들고 자신의 정적이 될 만한 이들을 정리해 나갔고 다른 한 손에는 학연, 지연, 관연 등으로 얽힌 지지 집단을 통해 나라를 운영해 나가고 있다.
그가 처리한 정적들은 이전 정권에서의 부패 시정처럼 시범 케이스 몇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수만의 하급 부패 관료들을 처벌하였을 뿐 아니라 '처벌받지 않는다'는 불문율의 대상이던 정치국 상무위원 출신의 저우융캉까지 영어의 몸으로 만들었다. 이어 이전에는 쉬이 손대지 못했던 국외 도피 관료들까지 체포해 들여오고 있다.
반면 이 과정에서 시진핑을 열렬하게 찬송하는 집단이 있으니 바로 그와 같은 혁명 원로 자제들을 통칭하는 홍이대(紅二代)다. 같은 과거를 공유하는 그들의 공고한 호응은 시진핑에게 하나의 큰 정치적 자산이 되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책에 등장하는 정치인 시진핑의 모습은 후진타오 전 주석과는 전혀 다르다. 전혀 나이브하지 않고 도리어 고대 황제에 비견될만한 야심과 정치력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시진핑의 면모 때문에 본래 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으로 이어지는 형태의 정치구도를 이야기하던 세간이 어느새 마오쩌둥-덩샤오핑-시진핑으로 이어지는 구도를 이야기하는 모양새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만큼 시진핑은 이전 20년간의 중국 지도자들과는 결을 달리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만큼 몰라보게 달라진 중국의 파워도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중국은 급속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시진핑 1인을 중심으로 강한 권력이 모이고 있으며 외부적으로는 거침없이 중국의 이익과 더 큰 영향력을 추구해 나가고 있다.
중국과 근접한 위치에 있는, 사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중국과 역사와 문화를 깊게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한국은 그렇다면 앞으로의 미래에 중국과, 그리고 시진핑과 어떤 방식의 관계를 맺어나가야 할까. 책을 덮으며 생겨나는 또 다른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