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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27일 오전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첫 만남을 하고 있다.
▲ 남-북 정상, 군사분계선 사이에 두고 첫만남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27일 오전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첫 만남을 하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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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도 보수매체가 있고 진보매체가 있다. 당연히 미국 지식인 가운데도 진보가 있고, 보수가 있다. 하지만 하나의 이슈에 이르면 정치적 차이는 순식간에 녹아 사라진다. 이 '대통합'의 주체는 바로 북한이다. 

얼마전 미국의 뉴스채널 씨엔엔(CNN)에 '북한 전문가'라는 사람이 나와서 인터뷰하는 것을 봤다.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강의한다는 이 미국인 교수의 말은 놀라웠다. 꽤 긴 인터뷰였지만, 답변은 시종 두 문장을 반복할 뿐이었다. 

"모두 쇼다."
"믿어선 안 된다."


'저러면서도 교수를 할 수 있구나.'  냉전적 사고는 위험하지만 매우 편리하다. 무제한의 나태와 게으름이 용인되기 때문이다. 사실 '용인'되는 정도가 아니라 열렬히 환영받기까지 한다. 이쪽 '업계'에서는 북한을 누가 더 정교하게 분석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신나게 때리느냐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어디 미국 교수뿐인가. 한국의 보수정당은 '빨갱이' 하나로 반세기 넘게 집권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집권을 못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모두 쇼다."
"믿어선 안 된다."


새봄, 이 화해의 분위기에 그들은 왜 흥분하는 것일까? '흥분'보다는 '당황'이라는 단어가 그들의 상황을 더 정확히 짚어주는 말일것이다. 잘못하면 '빨갱이' 하나로 집권할 수 없는 사태가 올 수있기 때문이다.

한국민 75.3%가 '좌파'라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4.27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홍준표 "남북합의 결코 수용못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4.27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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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남북 정상의 만남을 기대와 설렘으로 기다리고 있을 때,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난데없이 일본의 텔레비전에 출연했다.

"김정은의 위장 평화쇼를 나는 믿지 않는다."
"한국 여론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계층은 좌파뿐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세 이상 남녀의 75.3%가 정상회담을 지지했다. 그러니까, 홍준표 계산법에 따르면 10명 가운데 거의 8명이 좌파인 셈이다. 그런데 적은 내부에도 있었다. 자유한국당의 조대원 당협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환영 이번엔 꼭! 북핵 폐기 가즈아~"라는 현수막을 내건 것이다.

이렇듯 좌파가 사회 곳곳에 도사린 탓에 '75.3% 찬성'이라는 경이로운 지지율이 나온 모양이다. 게다가 이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정상회담이 끝난 후, 일본의 아베 총리마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면밀하게 많은 노력을 했다"라고 치하했을 뿐 아니라, "문 대통령의 노력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끝난 것을 축하한다"라고까지 말했기 때문이다. 아베는 홍준표 대표가 '굴욕외교'라는 욕까지 먹어가며 기를 쓰고 만난 사람 아닌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해 12월 14일 도쿄에서 일본 아베 총리와 만나 인사하고 있는 모습.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해 12월 14일 도쿄에서 일본 아베 총리와 만나 인사하고 있는 모습.
ⓒ 일본내각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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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홍 대표가 벤치마킹해 온 트럼프 미국 대통령 또한 좌파였던 모양이다. 65년만에 전쟁 종식을 선언한 판문점 선언을 보며, 트럼프는 느낌표 잔뜩 붙은 특유의 트윗을 날렸다. 정상회담이 마무리되기도 전의 일이었다. 

"한국전쟁 종식! 미합중국과 이 나라의 위대한 국민들은 지금 한국에서 펼쳐지는 상황에 깊은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국 국민 홍준표는 제 나라에서 펼쳐지는 상황이 별로 탐탁스럽지 않았나 보다. 판문점 선언을 "김정은과 우리 측 주사파들의 숨은 합의"라고 맹비난한 것이다. 홍대표가 좌파와 주사파를 찬양고무하는 일본과 미국에 맞서 항일·항미 투쟁의 선봉에라도 선 것일까?

누가 평화를 두려워하나

"북핵 문제와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해선 보다 전향적인 입장이 필요하다. 남북관계의 본질적인 문제는 북핵과 체제보장의 문제로 귀착된다고 나는 본다. 북한이 북미대화에 집착하는 이유는 북한 체제보장에 현실적인 위협이 되는 나라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으로 보는 것에 기인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 홍준표 대표의 말이다. 그는 9년도 채 안 된 2009년 8월에 자서전 <변방>에서 이런 '좌파스러운' 주장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는 책의 머리말에서 "가진 자가 좀 더 양보하는 세상! 가지지 못한 자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주는 세상!"을 외치면서 이렇게 글을 맺었다.

"그리하여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바른 세상, 세계 중심국가를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

이것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8월 사회주의 혁명? 홍준표가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세계중심국가'란 "내 자식들에게도 굴종을 강요하는 변방국가 시대"를 벗어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주체적 국가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러줘야 할까?

2018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손을 잡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 손 잡고 군사분계선 넘는 남-북 정상 2018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손을 잡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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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남북 정상이 손을 잡은 채 군사분계선을 넘는 것을 지켜보며 트위터에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강행하던 혼란스러운 해를 넘어, 이 시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다"라고 썼다. 트럼프는 하늘로 솟던 미사일과 땅을 울리던 핵실험을 정겨운 대화와 따뜻한 포옹과 대비시켰지만, 달라진 것은 한반도 상황만이 아니다. 트럼프 자신의 태도 역시 밤과 낮처럼 바뀌었다.

불과 몇달 전만 해도 , 트럼프는 "전쟁이 나도 여기(미국)가 아니라 거기(한국)서 나는 것이고, 수천 명이 죽어도 여기가 아니라 거기서 죽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놓고 "핵전쟁"을 입에 올리기도 했다. 여기에 <포린폴리시> 같은 '진보 성향'의 매체에 까지 '지금이 북한을 폭격할 때'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무엇이 이런 호전적 분위기를 바꿔놨을까.

제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긴 채 굴종으로 일관하던 '변방'을 벗어나, 스스로 평화의 길을 열기 위해 고군분투한 탓이다. 평창올림픽에서 남북의 선수가 함께 어울리는 장면이 늘 수록 미국에서 '전쟁'을 말하는 사람이 줄었고, 남북회담에서 두 지도자가 함께 웃는 모습이 전파를 타는 시간이 늘 수록 북미 회담에 대한 회의의 목소리도 사라져갔다. 

홍준표의 기괴한 '백투더퓨처'

놀랍게도, 11년 만에 만난 두 정상이 한반도 평화를 논하고 있을 때, 일부 보수세력은 인공기를 불 태우며 문재인 정부를 비난했다. 시위대 손에는 "지금이 북한을 폭격할 떄"라는 푯말이 들려 있었다. 이들에게는 전쟁보다 평화가 두려운 모양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북핵 문제는 북한의 체제보장이 선행되어야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로서는 미국과 협력하여 북한을 안심시킬 수 있는 국제적 보장을 해 주고 북핵폐기를 유도하는 방안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홍준표의 소망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이고, 곧 다가올 북미정상회담이다. 그가 그때 알았던 것을 지금 모르는 이 '백투더퓨처'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과거를 까마득히 잊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쇼'를 하고 있을 뿐일까?


태그:#남북정상회담, #판문점선언, #홍준표, #트럼프,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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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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