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1년, 각 정책분야의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국정 운영의 중심을 경제와 효율을 넘어 안전, 인권, 약자로 전환하겠다던 새 정부의 인권정책은 어떠할까. 지난달 20일, 법무부는 '우리 정부의 인권정책에 관한 기본계획'이라고 밝히며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tional Action Plans for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s, 이하 'NAP') 초안을 공개했다.
초안 공개 이후,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은 이것이 과연 새 정부가 작성한 국가인권정책기본정책인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등과 차별금지의 원칙'에서는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자를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언급이 사라지고, 유엔 인권조약기구의 권고 중 사회권위원회의 권고만 서론에서 누락되었으며, 박근혜 정부의 계획에서는 독립된 항목으로 존재했던 '병력자 및 성적소수자'는 아예 목차에서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유엔 인권조약기구 및 인권이사회가 수차례에 걸쳐 그 수립, 이행, 감시 및 평가에 국가인권위원회와 시민사회의 완전한 참여를 권고했던 NAP는 무엇이고, 3차 NAP 수립은 어떻게 진행되어 왔으며, 왜 인권시민사회단체는 정부가 내놓은 초안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는지 간략히 설명해보려 한다.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이란?
NAP의 개념은 1993년 비엔나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1993 World Conference on Human Rights)에서 생겨났다. 동 회의에서 채택된 문서인 "비엔나선언과 실행계획(Vienna Declaration and Programme of Action, 'VDPA')"은 의무적이지는 않으나 한국 정부를 포함하여 당시 참여한 모든 정부가 만장일치로 지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강력하고도 설득력이 있는 결의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실행계획에는 각 국가들의 인권의 증진과 보호를 위한 NAP 수립이 포함되었고, 이에 따라 많은 국가들이 NAP를 수립·이행하고 있다. NAP는 높은 수준의 이행 책임이 따르고, 한 국가의 5년 간 인권 관련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하는 계획이다. NAP수립에 있어서 자국의 상황에 맞게 정책을 마련해야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유엔으로 대표되는 국제사회의 인권기준을 자국에 적용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유엔조약기구, 국제노동기구, 유엔특별절차 등 국제사회의 권고 이행상황이 NAP에 포함되어야 하고, 인권의 상호의존성 및 불가분성을 인지하여 현재상황, 해결되어야 할 문제, 필요조치, 조치의 주체 및 구체적인 추진일정을 명시하고 모니터링과 평가 과정 등을 포함하여 계획의 구체적 실천의 원칙을 지향하여야 한다. NAP는 모든 단계에 있어서 인권단체, 시민사회, 국가인권기구와의 협력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 과정을 총괄적으로 이행할 책임은 국가에 있다.
대한민국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정부는 2006년 '국가인권정책협의회 규정' (대통령훈령 제340호, 2015.3.23., 일부개정)을 통해 법무부장관을 의장으로 하는 국가인권정책협의회를 구성하여, 정부의 주요 인권정책에대한 관계부처간 협의・조정을 통해 인권업무에 관한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효율적으로 수립・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07년부터 시작된 제1차 계획(2007-2011)에서부터 제2차 계획(2012-2016)을 거쳐, 현재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시민사회와 제대로 된 협의절차를 진행하지도 않았고 계획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사실상 NAP는 이름만 존재하는 문서였으며, 인권원칙과 한국사회의 인권현안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원래대로라면 2017년에 시작되었어야할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은 촛불혁명과 이어진 탄핵 및 정권 교체로 시행이 늦추어졌고, 2017년도에 유엔은 조약기구와 인권이사회 국가별 인권상황정기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UPR) 심의를 통해 한국정부에 시민사회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하여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하라는 권고를 하였다.
지난해 법무부는 NAP의 연내 수립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밝히며 제3차 NAP 수립을 위한 공청회를 2차례 개최하였다. 하지만 이 공청회들은 시민사회와 제대로 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이에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강력하게 항의를 표했다. 그 결과 정부는 제3차 NAP 수립 시기를 5월로 연기하며 전례 없이 18개 분야별 간담회를 실시하고 종합토론을 통해 시민사회의 의견을 NAP에 반영하겠다는 수정 계획을 알려왔다. 실제로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18번의 간담회가 실시되었으며,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은 이 기간 동안 간담회 참석 및 의견서, 참고자료 제출 등 모든 분야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였다.
해명이 필요한 문재인 정부의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그러나 지난달 20일 공개된 NAP 초안은 열여덟 차례 간담회 후 작성된 것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박근혜 정부의 초안과 비슷한 내용이거나 오히려 후퇴한 인권정책을 담고 있었다. 돌아보면 간담회 과정에 있어 각 정부부처의 NAP에 대한 몰이해와 비협조적 태도 역시 인권을 국정기조로 삼은 새 정부에 대한 실망을 안겨주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바라는 마음으로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모두 함께 촛불을 밝힌 것이고, 새 정부는 그 염원을 받아 모두의 인권이 존중되는 새로운 사회를 약속했었다. 그 약속의 결과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언급조차 사라진 NAP 초안이라면 정부는 왜 이런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없다면 지금 당장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제시한 의견을 수렴한 제대로 된 NAP 초안을 다시 수립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을 쓴 장보람 변호사는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