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7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후속 조치가 발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정치는 물론 경제와 문화 분야까지 포함한 각계각층의 교류가 준비 중이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장성급 회담도 일정 조율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남과 북의 시간도 오는 5일부터 '통일'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난 날. 회담장에 걸린 시계는 각각 서울과 평양의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30분의 차이가 났다.
이를 본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은 같은 땅이며 불과 몇 m를 걸어 남한에 왔는데 시간은 왜 이렇게 다른가"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우리가 바꾼 것이니 곧 돌려놓겠다"는 김 위원장의 약속은 바로 지켜졌다.
정상회담 3일 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표준시를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하는 동경시에 맞출 것"이라고 발표했다. 동경시는 서울의 표준시와 동일하다. 이로써 서울과 평양, 남한과 북한의 '시차'는 사라지게 됐다. 작은 부분이지만 하나의 분야에서 통일이 이뤄진 것이다.
70년 이상 계속된 남과 북의 분단이 이질화시킨 건 시간만이 아니다. 풍속과 습관, 전통의 계승방식 등도 상당 부분 차이를 보이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남북은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청와대에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만났다. 임 실장이 "남한과 북한 말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데 그래도 알아들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오징어와 낙지는 정 반대"라고 말하자, 김여정 부부장이 웃으며 답했다고 한다. "그것부터 통일 해야겠군요." 실제로 북한에선 갑오징어를 '오징어'로, 오징어는 '낙지'라고 부른다.
오징어와 낙지를 부르는 명칭만 달라진 건 아니다. 북한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인 곱등어, 부루, 단고기, 살까기, 돌분, 위생실 등은 어렴풋이 의미는 짐작되지만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북한 사람들은 어떨까. 우리들 입에서 나오는 고딩, 불금, 브런치, 츤데레의 뜻을 알 수 있을까? 남한 젊은 세대의 줄임말과 은어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언어는 존재의 집"이란 진술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통일로 가는 길에서 남과 북의 언어 이질성 극복과 동질성 회복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임이 분명하다.
'시간 통일'에 이어 '언어 통일'까지 이뤄지는 시기 빨리 왔으면남북 관계가 '꽃 피는 봄날' 같았던 2005년. 운 좋게도 북한 개성으로 취재를 갈 기회를 얻었다. 남한과 북한의 언어학자 수십 명이 모여 남북한 통합국어사전이라 할 <겨레말 큰사전>을 만드는 편찬회의에 동행한 것이다.
그때 서울을 출발해 개성을 향하던 버스에서 본 구름의 색깔은 물론, 오찬장에서 먹었던 닭고기냉채와 백합(白蛤)찜, 새우구이와 평양냉면 등 북한 음식의 담백한 맛이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회담에 임한 양측 학자들은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로 토론과 논의를 이어갔다. '남북한 언어통일'을 위한 노력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남한 언어학자들은 "남과 북의 사전에 실리지 않은 어휘까지 문헌조사와 현장조사를 통해 남김없이 파악해 사전에 싣겠다"는 열정을 보였고, 북한 언어학자들 또한 "말과 글의 통일은 정신문화의 통일이다. 분열이 야기한 정신적․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길에 앞장서겠다"는 결의를 드러냈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가시적 성과를 보일 듯했던 <겨레말 큰사전> 편찬 작업은 이후로 답보 상태를 면치 못했다. 악화된 남북 관계 탓이었다. 남한과 북한 언어학자들의 교류와 회의도 수년간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바뀌었다.
다시 불기 시작한 남북 사이의 훈풍은 <겨레말 큰사전> 완성에 대한 기대감도 높이고 있다. 도종환 문체부장관은 사전 작업 재개를 위한 남북한 언어학자 회의를 북측에 요청했고, 북한 역시 도 장관의 제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변함없이 이어져 '시간 통일'과 함께 '언어 통일'의 고속도로도 시원스레 뚫리길 기대한다. 언어의 통일은 존재의 통합으로 가는 첫걸음이기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