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018 퀴어여성게임즈(2018 Queer Women Games) <게임은 이미 시작됐다>가 개최된다. 2017년 동대문구체육관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성소수자 행사라는 이유로 동대문구가 대관을 취소하여 한 차례 연기되었던 자리이다. 퀴어여성네트워크는 퀴어여성게임즈를 개최하면서 다양한 여성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한다. 여성성소수자에게 있어 스포츠는 어떤 의미인가, 스포츠에 있어 성평등과 성소수자 인권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기자말['게임은 이미 시작됐다' 이전 기사]① "남자애가 왜 이렇게 운동을 못 하냐"고?② "선수 말고 매니저나 해" 거 참, 여자도 운동 좀 합시다 ③ "다이어트 하지 마라, 더 먹어라" 이런 트레이너가 있다니
올림픽 메달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선수도 아닌 내가 평생 메달을 만져볼 일이 있겠나 싶어 나도 모르게 쫓아가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게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사진을 찍었을까? 그랬을 것 같진 않았다.
프라이드하우스에 방문한 캐나다 피겨선수 에릭 레드포드는 기꺼이 자신의 금메달과 동메달을 내어주며 함께 사진을 찍어주었다. 커밍아웃한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레드포드는 인터뷰에서 "제 성정체성은 제가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을 가로막지 못한다"며 "자신의 성공을 보여주고 자신이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함께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뻔한 이야기였지만, 그 뻔한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 그가 성소수자 선수로서 자신을 알리기 위해 정말 온몸으로 노력하고 있는 그 장면이 계속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프라이드하우스 평창을 열기까지지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은 국가가 성적소수자를 "금지"하는 것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너무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2013년 러시아는 '비전통적 성관계에 관한 선전 금지법'을 제정하며 성소수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 탄압은 법이 제정된 다음해에 진행된 동계 올림픽에도 영향을 미쳤다. 올림픽 기간 동안 참가한 성소수자 선수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금지 당한 것이다.
이에 전 세계 인권활동가들은 소치 올림픽을 보이콧하고 비판했으며, 몇몇 나라 정상들은 개막식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항의의 목소리를 대신하기도 했다. 이는 스포츠 경기, 특히 올림픽에서의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자는 운동인 '프린서플(principle) 6'로 이어졌고, 마침내 2014년 12월
국제올림픽위원회 헌장 제6조에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금지가 명문화되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소치 이후 첫 번째로 열리는 동계 올림픽이었다. 그리고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아래 조직위)는 평창올림픽 윤리헌장에 "올림픽 대회운영 전 과정에서 장애인, 여성, 노인, 이주외국인, 성소수자 등 소수자의 참여 기회를 확대해야 하며, 참여에 있어서 어떠한 형태의 차별과 불이익을 허용해서는 안됩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성소수자를 포함, 모든 사람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헌장을 만든 것 외에, 조직위는 어떠한 적극적 조치도 행하지 않았다. 프라이드하우스 준비위원회는 조직위에 프라이드하우스 설치에 대한 입장을 물었지만, 긍정적인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결국 평창올림픽 기간 프라이드하우스는 자체 재원을 마련하고 추가로 캐나다 올림픽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캐나다하우스에서 프라이드하우스 행사를 꾸렸다.
무지개가 함께 한다는 것이 주는 믿음이렇게 어렵게 꾸려진 프라이드하우스는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올림픽 참가자들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마주친 성소수자를 환영한다는 메시지에 반가워했고, 프라이드하우스의 존재 자체에 기뻐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기꺼이 프라이드하우스를 지지하는 인증샷을 찍었고, 응원용 무지개 키트를 받아 자긍심의 무지개 깃발을 흔들었다.
가장 감사했던 무지개 키트 수령자는 올림픽 자원 활동가들이었다. 자원활동가 중 어떤 이들에게는 무지개 배지를 달고, 깃발을 드는 정말 큰 용기이고 도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성소수자의 상징인 6색 무지개 깃발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누군가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 우리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자원 활동가들은 프라이드하우스 밖에서 깃발을 수령해 갔고, 또 어떤 이들은 우편물로 수령을 받기도 했다. 올림픽 기간 동안 평창과 강릉 어디인가엔 틀림없이 무지개가 존재했고, 그 무지개를 보았을 성소수자들이 존재했다.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더라도, 서로 응원하지 못했더라도, 6색 무지개에 힘 받을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이 곧 프라이드하우스이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그런 믿음의 캠페인들은 이미 예전부터 진행되고 있다.
영국의 축구 리그인 프리미어리그는 2013년부터 성소수자 인권 단체인 스톤월과 함께
'무지개 신발끈(rainbow lace)' 캠페인을 진행한다. 리그 동안 보드 판 바탕은 무지개색이 되고 선수들은 무지개색 끈을 맨 축구화를 신는다. 각 팀의 주장들은 무지개색 완장을 차기도 한다.
영국 축구 팬의 72%가 경기에서 동성애 혐오적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는
설문에서 시작된 이 캠페인은, 축구의 스포츠 정신은 차별과 혐오가 아니라 평등과 포용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이 캠페인이 시작된 이후 스포츠팬들 사이에서 성소수자 혐오적 발언을 수용하는 비율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시작된
YOU CAN PLAY Project는 선수들 교육에 집중을 한다. 전국하키리그(NHL)와 협약을 맺고, 라커룸 안에서의 동성애 혐오를 없애기 위한 교육을 진행한다. NHL의 선수들은 모든 운동선수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관계없이 평등하고 존중받으며 경기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실천한다.
실제로 캐나다 하키 국가대표 골리(골키퍼)인 벤 스크리븐스는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때 무지개 테이프로 감싼 하키스틱을 프라이드하우스에 기증하며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기도 했다.
세상을 바꾸어 갈 더 많은 목소리를 바라며사실 한국의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도 다양한 종목의 많은 스포츠 동호회들이 존재하고 있다. 매주 모여 수영을 하고, 매달 마라톤을 하고, 야구와 축구를 하는 성소수자 동호회들이 있다. 하지만 많은 동호회들이 자신들이 '성소수자' 동호회임을 숨기며 다른 동호회와 교류하거나 혹은 아예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이유는 심플하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다른 시선을 받고, 차별받고, 혐오당하고 배제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는 전국체전에, 혹은 전국 생활체육대축전에 무지개 깃발이 휘날리길 기대한다. 혐오와 배제, 차별의 광풍에서도 누군가는 스포츠라는 이름아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꼭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면, 그 한 개의 무지개 깃발이 언젠가는 수십 개, 수백 개가 되어 서로를 단단하게 응원하고 지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은 바뀌어 갈 것이다.
<프라이드하우스란> |
국제적인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동안 방문하는 성소수자 선수, 코치, 팬 등을 환대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행사 또는 공간을 통칭한다. 2010년 캐나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시작되었으며, 프라이드하우스 평창은 아시아 최초로 개최되었다. 한국의 프라이드하우스는 환대의 의미 이외에도 성소수자 차별이 없는 모두에게 평등한 스포츠 문화를 만들기 위한 캠페인으로도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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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윤다림씨는 프라이드하우스 평창 조직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