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일정 및 개최장소 발표를 미루더니 미국 내 강경파들이 대화 문턱을 높이는 모양새다.
우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4월 27일(현지시각) 나토 외무장관 회의에서 기자들에게 "우리는 항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프로그램을 지체 없이 폐기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전보좌관이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과 '북핵은 물론 미사일, 화학무기 등 대량파괴무기를 영구폐기할 것을 논의했다'고 7일 JTBC <뉴스룸>이 전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핵과 관련, 기존에 미국이 고수하던 '완전한' 핵폐기에서 '항구적인'으로 기준을 높였다면, 볼턴 보좌관은 범위를 핵에서 대량파괴무기로 확대한 셈이다.
손 내밀어도 박수칠 청중이 없다 지난 2015년 5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쿠바, 이란과 관계 개선을 모색하던 오마바 당시 행정부가 북한과 접촉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그의 인터뷰 내용은 이랬다.
손석희 앵커 : "다른 이야기로 좀 넘어가겠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에 대통령 취임 전에 쿠바와 이란, 북한을 언급하면서 적과의 악수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쿠바하고도 국교를 다시 또 복원시켰고요. 이란도 마찬가지고, 그러면 다음 차례는 북한이 될 수도 있다고 보십니까? 오바마의 임기 내에?"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 : "지금은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서 급진적인 전략을 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현재로서는 그와 같은 것에 대한 정치적인 지원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쿠바에 손을 내밀 수 있었던 이유는 교황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교황의 지원을 통해서 쿠바의 카스트로와 미국의 만남이 주선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1951년에 미국이 이란의 정권을 전복시킨 적이 있습니다. 또한 이란과의 관계를 개선시켜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노력에 있어 많은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스라엘과 관련된 문제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에 손을 내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을 내민다 하더라도 그 조치에 대해서 박수를 쳐줄 만한 청중이 없기 때문입니다.""손을 내민다 하더라도 그 조치에 대해서 박수를 쳐줄만한 청중이 없다"는 그레그 대사의 언급에 주목해 보자. 지금 미국의 대외정책, 특히 북미 정상회담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고위 관리들이 대화문턱을 높이는 건 미 정부가 북미 접촉에 회의적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7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무척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했다. 아래는 문 특보와 손석희 앵커가 주고받은 말이다.
손 앵커 : "워싱턴에 가셔서 한 일주일 동안 전문가들을 많이 만나셨습니다. 거기에는 예를 들면 흔히 얘기하는 '강경파'도 있을 수 있고 전반적으로 북미회담을 어떻게 전망들을 하고 있던가요? 들리는 얘기로는 좀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해서요."문 특보 : "비관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이 한 80% 이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손 앵커 : "그렇게 많습니까?"문 특보 : "상당히 많습니다."문 특보는 이 같은 미국내 분위기를 전하면서 북한에 대한 회의가 '과거의 행태로 봐서 북한을 믿기가 어렵다'는 불신에서 비롯됐다는 취지로 말했다.
사실 미국 정부의 북한에 대한 불신은 비단 현 트럼프 행정부나 전임 오바마 행정부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 정부는 북한을 늘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한국 정부라고 해서 책임이 없지 않다. 역대 한국 정부, 특히 보수 정부는 미국이 북한에 기우는 걸 극도로 경계했다. 한국 정부의 경계심은 1994년 북핵 위기 당시 절정으로 치달았다.
북미간 밀고 당기기... 우려할 수준 아냐 1994년 북한과 미국은 전쟁 일보직전까지 치달았다. 그러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이후 일촉즉발의 위기는 모면했고, 북미 양측은 간신히 협상 테이블을 차렸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북미 접촉을 내심 못마땅히 여겼다. 북핵 위기 당시 미국측 실무자로 참여했던 전 국무부 북한데스크 케네스 퀘노네스 박사는 자신의 회고록 <한반도 운명>에서 김영삼 정부의 방해공작을 상세히 적었다.
"워싱턴이 서울과 조심스럽고 철저하게 자문을 하느라 평양과의 회담 진전이 거북이 걸음처럼 느렸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고위층은 뉴욕의 이 과정에 대해 점점 더 언짢게 여겼다. (…) 김영삼 대통령은 이 과정을 깨도록 작심한 것 같았다. 김 대통령과 그의 안보보좌관 정종욱은 평양에 대해 남북대화 재개 문제와 관련, 서울의 요구조건을 무조건 따르라고 워싱턴에 주장함으로써 북미회담을 거듭 복잡하게 만들었다. (중략) 나는 김영삼 대통령이 북한과 미국 간의 관계 완화를 복잡하게 하고 지연시키는 것을 최우선과제로 삼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것이 핵문제 해결을 방해해도 상관이 없는 듯 보였다. 게다가 김 대통령은 평양이 미국과의 회담에서 조급하고 좌절감을 느끼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작정을 한 것 같았다."역사적인 북미회담 성사를 앞두고 미 정부 내 팽배한 북한에 대한 불신을 실감하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북한이 특유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부담스럽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6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을 통해 "미국이 우리의 평화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판 자체가 깨질 가능성은 낮다는 판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 클린턴, 부시, 오바마 행정부가 이뤄내지 못했던 북한 비핵화를 이뤄내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선 북한 측에 보다 분명한 의제를 제시하고 이를 명문화해야 한다.
북한의 입장은 다르다. 북한은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체제 보장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이란 선택지를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북한이 이토록 바라 마지않는 체제 보장의 당사자는 미국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최근 북미 정상회담 날짜와 장소 발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국과 북한의 신경전은 막판 양측의 의제조율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로서는 현 상황이 난감할 수 밖에 없다. 판문점 선언에 이어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진전을 갈망하는 남북의 국민들 역시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너무 가슴 졸이지 말자. 판은 반드시 성사될 것이라고 본다. 판문점 선언을 일궈낸 우리 민족의 역량을 믿자.
사족 하나 덧붙이자면, 차제에 한국 정부가 미국 내 팽배한 대북 불신을 해소하는 데 외교적 역량을 모아주기 바란다. 그래야 첨예한 북미 신경전에서 박수 쳐줄 청중이 나타날 테니 말이다.